어렸을 때 본 인상적인 영화 중에 [나 홀로 사막에 Lost In The Desert]라는 작품이 있다. 1980년대 TV에서도 여러 차례 방영된 바 있는 이 작품은 여덟 살짜리 소년이 요양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시골로 가던 중 불시착해 사막 한 가운데서 조난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서 소년은 하이에나와 싸워가며 사막의 혹독한 환경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데, 그 생존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해 어린 나이에 본 영화지만 몇몇 장면들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사자성어가 유독 마음 속 깊이 와 닿는 요즘,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이것이 시대적인 흐름인지는 몰라도 개인의 생존 문제를 다룬 1인 조난극이 속속 제작되고 있다. 대니 보일의 [127시간]이나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고립된 인간의 삶에 대한 투지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들은 흔히 초호화 캐스팅으로 규모있게 완성된 재난영화의 군상극과는 또다른 묘미와 서스펜스를 전달한다.
2013년 부산영화제 초정작에 선정된 [올 이즈 로스트] 역시 미니멀한 1인 조난극의 형식을 지닌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같은 해에 개봉된 [그래비티]와 많은 면에서 비교 대상이 되곤 했는데, 두 작품 모두 한계를 초월한 불가항력의 자연 앞에 온갖 역경을 견디며 구원에 이른다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비티]가 극사실주의적인 표현 양식을 바탕으로 우주 공간에서의 짜릿한 시공간적 체험을 관객에게 안겼다면, [올 이즈 로스트]는 주어진 상황을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노인의 느릿한 시선이 격랑의 바다와 대조되어 더욱 긴박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 Before The Door Pictures, Washington Square Films, Black Bear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홀로 항해를 하던 노인의 보트가 바다에 유실된 컨테이너 박스에 부딪혀 파손되고 만다. 하필 자는 도중에 생긴 사고라 자고 있는 사이에 물이 차 올라 통신장비가 물에 젖어 버려서 구조 요청을 보내지도 못한다. 아쉬운 대로 응급 수리를 통해 부서진 구멍을 막기는 했지만 통신 장비와 네비게이션 등 항해를 위한 설비를 모두 잃은 노인은 급기야 망망대해에서 폭풍우를 만나 극한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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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스토리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건 바로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의 존재감이다. 전성기 때에 비해 꽃미남 같은 미모가 많이 퇴색되긴 했으나 연륜과 노신사의 풍미가 더해진 그는 대자연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활로를 찾아나서는 현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초반의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열 마디가 채 안 되는 대사만을 가지고도 –심지어 극중에서 이름 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100분의 시간을 홀로 이끌어 가는 노배우의 투혼에 다시금 박수를 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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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올 이즈 로스트]가 대중성을 확보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연출을 맡은 J.C. 챈더 감독은 의도적으로 감정선을 절제한 듯 보이며, 따라서 안쓰러울 정도로 고생하는 노인을 보면서도 동정이나 연민보다는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삶과 현실이 고통과 도전으로 가득 찬 생존의 지루한 레이스이듯이 말이다. 영화는 조용하고 차분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울림은 묵직하다.
ⓒ Before The Door Pictures, Washington Square Films, Black Bear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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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의 화면비에 AVC로 인코딩 된 본 작품은 Arri Alexa로 촬영되었는데, 디지털 화면 특유의 선명한 디테일과 선예도를 자랑한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팔뚝에 난 털이나 얼굴의 자글자글한 주름이 너무 선명하게 표현되어 되려 무안할 정도다. 특히 광활한 바다를 비추는 시퀀스는 다양한 시각적 쾌감을 제공하지 않지만, 푸른 하늘과 바다의 선명한 단색 계열을 부각시키며 주인공이 절박한 상황과는 대조되는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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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fore The Door Pictures, Washington Square Films, Black Bear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카데미 음향 편집상에 노미네이트된 만큼 [올 이즈 로스트]는 사운드 디자인이 특히 중요한 작품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이얼로그가 거의 전무한 가운데 효과음과 사운드트랙만으로 내러티브의 빈 곳을 채워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밀한 부분까지 사운드 디자인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한데, 적막함이 감도는 고요한 바다의 소리와 잠든 주인공을 깨우는 침수된 물의 파동음, 보트를 잡아먹을 듯이 휘몰아치는 거신 폭풍우의 굉음까지 실로 다양하고도 다이나믹한 음량이 현장감을 배가시킨다.
아쉽지만 서플먼트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All is Lost: The Story"는 작품의 제작 의도 및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담겨있는 코멘터리 영상이다. 일반적인 영화의 기승전결이 느껴지지 않고 생존의 행위에만 극단적인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다보니 [올 이즈 로스트]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지점은 관객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본 부가영상에서는 영화에 참여한 제작진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올 이즈 로스트]에 대해 저마다 느끼는 점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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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lmmaker: JC Chandor"는 영화의 감독인 J.C. 챈더의 연출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다. 스토리보드 아티스트와 함께 영화의 거의 전 장면을 스토리보드로 만드는 열의를 보인 그는 제한된 예산으로도 결코 값싸보이지 않는 영화를 만들어냈는데, 영화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그걸 구체화 시키는 치밀한 감독이라는 면에서 장래에 촉망되는 연출가이기도 하다. 배우이기 전에 감독이기도 한 로버트 레드포드가 일절 연출에 간섭하지 않고 배우로서만 전념했을 정도로 촬영장에서의 신임도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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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The Actor: Robert Redford"는 명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를 조명한다. 영상이 시작되면 “제 소개를 하라고요? 요즘 사람들은 절 못알아보나 보네요”라며 멋적은 웃음을 짓는 레드포드의 모습을 보여준다.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로서 영화 인생의 중반부에 연출에도 재능을 보여 [보통 사람들]이나 [흐르는 강물처럼]과 같은 수작 드라마를 완성시킨 바 있는 그가 노년에 다시금 연기로 돌아오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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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이즈 로스트]는 작년 한 해 가장 많은 찬사를 받은 [그래비티]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흡인력 강한 조난영화다. 다른 걸 다 떠나서 로버트 레드포드의 혼신을 다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올 이즈 로스트]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최근 [컴퍼니 유 킵],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등으로 다시금 왕성한 연기생활을 재개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여전히 현역배우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한다. 더불어 J.C. 챈더 감독의 연출력도 간과할 수 없다. 이제 막 두번째 상업영화를 내놓은 신예이지만 노배우의 1인극을 통해 이 시대의 '노인과 바다'를 한편의 영상소설로 완성시킨 그의 범상찮은 내공에 놀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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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올 이즈 로스트 - J.C. 챈더 감독, 로버트 레드포드 출연/유니버설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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