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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게임 - 소년과 게임, 그리고 전쟁

페니웨이™ 2014. 1.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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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을 장식한 마지막 블록버스터 [엔더스 게임]은 원래대로라면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급의 기대를 모아야 했던 작품입니다. 영화에 투입된 1억 1천만 달러의 제작비도 그렇지만 원작 자체가 거의 20년 넘게 골수팬을 확보한 작품이다보니 당연히 많은 관심을 받았어야 하는 작품이지요. 하지만 북미를 비롯한 전세계 성적은 매우 저조합니다. 이는 유독 한국에서만 힘을 못쓰는 [헝거게임] 시리즈와는 또다른 양상입니다. 한마디로 영화 자체가 관객의 구미를 끌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지요.

이 작품은 오슨 스캇 카드의 베스트셀러 엔더 위긴 시리즈 첫권인 '엔더의 게임'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사실 관객은 이 영화를 보기에 앞서 원작이 냉전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탈 냉전시대를 살고 있지만 소설 속의 세계관에서는 수백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미소 양국의 대립구도가 현재 진행형이거든요. 전쟁도구로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수많은 담론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큽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죠. 아예 존 르 카레의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처럼 원래의 고전 스파이물로 장르를 회귀할 수 있다면 모를까 냉전시대에 기반한 SF 밀리터리 소설이라면 이를 각색하는게 두 배, 세 배는 힘들거란 얘깁니다. 따라서 영화는 많은 부분을 생략한 채 몇몇 설정들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 Summit Entertainment, OddLot Entertainment, Chartoff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포믹이라는 외계인의 침공으로 인류가 멸절되기 직전, 한 군인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모선을 파괴하는데 성공한 지구인은 훗날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을 지휘관으로 훈련시킵니다. 그 중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인 소년이 바로 엔더 위긴인데, 그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달리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고 전략과 전술에 뛰어나며 쉽게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입니다. 모든 훈련과정을 성공리에 마친 엔더는 함대를 지휘하는 총사령관이 되어 군 고위층이 지켜보는 앞에서 포믹과의 모의 전투를 치루는 마지막 테스트를 받게 됩니다.

실망스런 흥행성적이나 영화의 낮은 관심도와는 별개로 [엔더스 게임]은 제법 괜찮은 작품입니다. 일단 원작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킨 장면들이 꽤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특수효과와 비주얼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이름값에 비해 영 시시한 역할을 맡은 건 아쉽지만 [휴고]의 벤 킹슬리와 아사 버터필드가 다시 한번 좋은 연기를 펼치는 것도 흥미롭죠. '스타크래프트'로 대변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익숙한 세대들에게 어필할 만한 소재의 접근성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만 합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만하면 충분히 볼만하다고 느낄 법한 [엔더스 게임]이 원작의 장점을 송두리째 날려먹었다는 겁니다. 다분히 가족용 SF영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전쟁의 폭력성과 정당성에 대한 묵직한 논의까지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장영화로서도, 반전영화로서도 [엔더스 게임]은 솔직히 좀 부족합니다. 이는 흡사 폴 버호벤의 [스타쉽 트루퍼스]를 아동용으로 옮긴 것 만큼이나 원작에 대한 해석이 지나칠 정도로 단순화 된 경향이 있지요.

ⓒ Summit Entertainment, OddLot Entertainment, Chartoff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원작에서 인류의 명운을 건 포믹과의 대전투에 꼬맹이들을 사령관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여왕의 반응속도가 너무 빨라서 일반적인 성인은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점인데, 영화에서 그러한 설명이 모조리 생략되어 있다는 건 치명적이기까지 합니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설정상의 구멍이 커보이게 만들거든요. 마치 [마징가 제트]를 위시한 수많은 로봇만화에서 왜 아이들이 조종해야 하는 것인가를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랄까요. 어른들이 아이에게 미래를 거는 이유에 대한 당위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완전할 것만 같았던 엔더의 불완전한 에고를 반영하는 형과 누나의 존재감이 희석된 것도 조금은 불만입니다. 이 부분만 보강했더라도 [엔더스 게임]의 드라마는 상당히 부드러워질 수 있었거든요. 중량감있는 성인 배우들의 역할 분담은 빈약하고, 그렇다고 엔더에게 이야기를 집중시키기엔 줄거리가 너무 단순해져 버렸습니다. 원작에서의 6년이라는 시간을 단 1,2년 안에 일어나는 일처럼 축약시켜버렸으니 그에 따른 부작용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엔더스 게임]의 결과물에 어느 정도 만족합니다. 위에 열거한 단점들은 어쩌면 원작이 가진 장점일 것이고, 범작과 수작 사이에서 살짝 저울질 하는 영화의 완성도에서 다양한 함의들을 군데 군데 찾아낼 수 있는 건 여전히 '실패한' 이 프렌차이즈가 2편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원작과 영화의 공통분모인 '마지막 반전'은 그 내용을 아는 사람에게도 제법 큰 울림을 전달합니다.

 

P.S: 원래 '엔더의 게임'은 작가인 오슨 스캇 카드 스스로가 가장 영화화하길 원했던 작품입니다.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려는 제안을 거절한 헐리우드 제작사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던 그는 자신이 직접 설립한 프레스코 픽쳐스를 통해 영화화를 계획하고 각본까지 씁니다만 역시나 실현되지는 못했지요. 2000년대 초반 [스타워즈 Ep.1: 보이지 않는 위험]의 제이크 로이드를 엔더 역으로 고려한 프로젝트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만 이 역시 무산된 걸 보면 이 소설이 영화화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헐리우드 제작자들의 감이라는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번 작품에서도 카드가 쓴 시나리오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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