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워즈]는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48시간의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재만 보면 영락없는 재난물인데, 실제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형식으로만 보자면 [127시간] 같은 1인 조난극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죠. 재난 블록버스터를 예상하신 분들은 일단 기대를 접으시기 바랍니다. 뭐 이런저런 영화의 장르적인 베이스를 떠나 [아워즈]가 관심을 끄는 건 아마도 [분노의 질주]로 많은 팬을 확보한 폴 워커의 뜻하지 않은 유작이라는 점 때문일 겁니다.
카트리나로 인해 도시 전체가 비상사태인 뉴올리언즈의 한 병원에 조기 진통으로 산모 한명이 실려 옵니다. 남편 놀란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산모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다행스럽게 아기는 무사히 출산했지만 미숙아인 관계로 스스로 호흡을 하지 못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내의 죽음과 아기의 불안정한 상태로도 충분히 벅찬 상황에서 옆친데 겹친격으로 카트리나의 영향 때문에 병원 전체에 대피령이 내려집니다. 놀란은 인큐베이터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 그대로 병원에 남게 되지요.
하지만 이내 전기가 끊기고 다급하게 찾아낸 수동 발전기를 인공호흡기에 연결한 놀란은 호흡기의 내장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3분 남짓한 시간밖에 충전이 되질 않는 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나마 배터리 수명이 점점 줄어들면서 충전 가능 시간은 2분 밑으로 떨어지고, 그 때마다 수동으로 발전기를 돌려야 하는 놀란은 아무도 없는 병원에 남아 아기에게서 2분 이상 눈을 떼지 못하는 처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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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즈]는 부성애를 막연하게 드러내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인 놀란은 아기를 살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안도보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더 크게 느끼며 아기와의 첫 대면에서 '난 아직 너를 잘 모른다'며 그닥 아이에 대한 애착을 나타내지 않지요.
어찌보면 의무감에서,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남긴 마지막 유산을 지키기 위해 놀란이 필사적으로 아비규환의 재난상황에 아기를 보호하는 과정은 저를 포함해 이 세상의 모든 남편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감정선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특히 2,3분의 시간 제한에 걸려 활동영역을 제한받는 상황 자체가 일정한 서스펜스를 유지시킨다는 점도 좋습니다. 어떤 이에겐 90분 내내 폴 워커가 발전기만 돌리다가 끝나는 영화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요.
영화의 헛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놀란이 겪는 다양한 위기들의 대부분은 아기를 떠났을 때 발생하는데 이런 일들은 2분 남짓한 시간 안에 벌어지기엔 너무 길고 장황하죠. 리얼리즘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나치게 작위적인 영화입니다. 하지만 재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설득력있게 나열해 놓았고, 무엇보다 놀런의 고립감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영화적인 허구성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태풍이 강타한 도시에서의 삶과 죽음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이 영화가 폴 워커의 유작이 되었다는 점은 평소 자동차 마니아였던 그가 차사고로 유명을 달리 한 것 만큼이나 아이러니 합니다. 그는 필리핀 태풍 하이옌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선 행사에 가다가 변을 당했다지요. 비단 오락물에서만이 아니라 이런 드라마에서도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는 멋진 배우였는데 다시금 안타깝습니다. 괜시리 기분이 꿀꿀해 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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