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구요? 전체적인 서사구도는 [아바타]를 닮았고, 특정 장면과 캐릭터는 [스타워즈]를 연상시키며 그 외에도 늘상 보아왔던 SF영화나 판타지물의 여기저기에서 따온 것 같은 장면들… 맞습니다. 2012년 첫번째 블록버스터 [존 카터: 바숨전쟁의 서막]은 이들 영화들과 무척 닮아 있습니다.
사실 [존 카터: 바숨전쟁의 시작]의 원작인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화성의 공주’는 무려 1912년 작,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00년전에 탄생했습니다. 그러니 이후에 쏟아진 SF장르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건 자명하지요. 오히려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닮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합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를 만들면서 자신의 작품이 ‘화성의 공주’를 업그레이드한 것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으니까요.
문제라면 영향을 준 작품들보다도 원전이 된 ‘화성의 공주’의 영화판이 나중에 나왔다는 것일 겁니다. 이미 단물을 빼먹을대로 빼먹은 원작을 이제와서 원조 운운하며 영화화해 봤자 나올 수 있는 반응은 뻔한 것이거든요. ‘식상하다’는 반응 말이죠.
그나마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는 이 작품의 감독이 앤드류 스탠튼이라는 점에 조금은 위안을 삼았습니다. [존 카터: 바숨전쟁의 서막]은 로버트 로드리게즈로 시작해 케리 콘란, 존 파브루를 거쳐 스탠튼에게 이르게 되었는데, [니모를 찾아서], [월 E] 등을 연출한 그는 픽사의 지명타자급 감독 중 한 명이니만큼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로 실사영화 진출에 성공한 브래드 버드의 전례를 봐서라도 평타 이상의 결과물을 내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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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존 카터: 바숨전쟁의 서막]은 무척 매력적인 스토리를 지닌 작품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지구와 화성을 잇는 포털을 건드린 남북전쟁 시대의 주인공이 화성의 구세주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단지 이러한 모험 활극의 요소 외에도 지구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존 카터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요소까지 흥미로운 아이템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죠.
아쉽게도 [존 카터: 바숨전쟁의 서막]은 너무 무난한 방향을 택했어요. 초반부터 벌어지는 거대한 공중전의 위압감으로 시작해 비주얼로 관객을 압도하려는 시도가 여러 번 눈에 띄지만 시각적인 스펙터클의 아우라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내추럴 본 3D’인 [아바타]와 단지 2D에서 3D로 컨버팅한 [존 카터: 바숨전쟁의 서막]은 입체감의 깊이에 있어서도 비교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이 영화는 3D를 버리고 2D로 승부를 걸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연급 배우들의 캐릭터도 그냥 스테레오 타입입니다. 가뜩이나 스타급 배우가 없는 가운데 캐릭터에 개성을 부여하는 면에 소흘하다 보니 영화가 밋밋해 질 수 밖에요. 1912년 당시에는 신선한 캐릭터였을지 몰라도 이미 비슷한 상황에 처했거나 유사한 성격을 가진 인물들을 수없이 접해 본 이 시점에서는 그리 영리한 선택이 아닙니다.
하지만 원작을 따라가는 점에 있어서는 충실한 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 카터’ 시리즈의 이곳 저곳에서 설정들을 조합하긴 했어도 아마 원작의 팬들이라면 큰 불만은 없을 거에요. 이 영화의 문제라면 시기적으로 너무 늦게 나온게 문제입니다. 아마 이 작품이 한 10년쯤 전에 나왔으면 몰라도 지금 같은 비주얼의 홍수시대에는 [존 카터: 바숨전쟁의 시작]이 내세울만한 승부처가 마땅하지 않죠.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하기엔 원작의 변용이 너무 다양하게 이루어졌거든요. ‘내가 원조요’ 하기엔 주변에 너도나도 원조를 주장하는 족발집들이 너무 많이 생긴 것처럼요.
P.S
1.이젠 확실히 CG캐릭터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 폭풍질주를 하는 화성강아지 울라 때문에 한참을 웃었고 무명배우들의 색깔없는 연기를 보강해 준건 타스 타카스나 솔라 같은 CG 캐릭터가 아니었나 싶네요.
2.디즈니의 2억 5천만 달러짜리 대작 [존 카터: 바숨전쟁의 시작]은 그저 신기루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개봉 전야제 수익이 고작 50만 달러라니… 이건 거의 뭐 재앙이죠. 영화는 나쁘지 않은데 신선도는 떨어진다.. 아마 이 영화를 본 대체적인 관객들의 평인 것 같습니다.
3.애드거 버로우스는 이 소설을 연재할 당시 자신에게 돌아올 비아냥을 우려해 '노만 빈'이란 필명을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나 연재가 시작되고 '존 카터' 시리즈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타잔'과 함께 버로우스의 명성을 더욱 높혀준 작품이 되고 말았지요.
4.'화성의 공주'는 처음 애니메이션으로 고려되었던 작품입니다. 1931년 버로우스가 생존 당시 '루니 툰스'의 감독인 로버트 클램펫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바 있지요.
5.심심하신 분들은 목버스터의 명가 어사일럼의 [화성의 공주]를 보시길 권합니다. [아바타]가 이 소설을 베이스로 삼았다고 알려지자마자 재빠르게 내놓은 작품이죠. 결과적으로 디즈니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되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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