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에는 누구나 꿈이 있다. 적어도 나만큼은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과 함께 핑크빛 미래가 자신을 위해 예비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물론 독한 마음으로 미래를 차분히 설계해 그 꿈을 이룬 경우도 많지만 학창시절에 촉망받던 녀석이 사회에 나와 별볼일 없는 무채색의 인생을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나만해도 그렇다. 뭐 딱히 자랑은 아니지만 적어도 학창시절에는 잘나가던 때가 있었다. 적어도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나와 나름 정해진 수순을 밟으며 안정적인 삶을 할거라고 여겨지던 내가 정말 특별할 것없는 삶-박봉에 집,회사밖에 모르는 단조로운 삶-을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더 놀라운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에 스스로가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생활의 활력소가 극도로 부족한 삶을 바꿔준 계기는 2년전 시작한 블로그다. 여전히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쯤, 그저 호기심에 시작한 블로그가 나에게 아직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음을 확인시켜 주리라고는 정말이지 상상하지 못했다.
[줄리 & 줄리아]는 블로그를 통해 생활의 활력을 찾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나 [유브 갓 메일]처럼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승부해 온 노라 애프론 감독이 오랜 기간의 슬럼프를 딛고 재기한 이 작품은 여전히 무겁지 않으면서도 클래식한 영화의 묘미를 잘 살린 정공법이 돋보인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평범한 회사일에 찌든 젊은 여성 줄리가 미국내에 프랑스식 식단을 널리 알린 전설적인 주부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 524개를 1년안에 직접 만들어 블로그에 올린 실화를 영화화 한 이 작품은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의 삶을 이분화시켜 영화에 골고루 배분해 관객들에게 보여주는데 각기 다른 세대를 살아 온 두 여성의 삶이 어딘지 모르게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어 두 이야기 사이에 이질감은 크지 않다.
한사람은 요리로 인정받고, 한사람은 그 요리를 블로그에 올리면서 결국에 가서는 평범한 여성의 성공담으로 마무리되는 아주 익숙한 내러티브의 작품이긴 하나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요리의 먹음직스런 비주얼이 주는 즐거움에 더해 재치있는 대사와 설정들,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어우러져 훌륭한 하모니를 이룬다.
ⓒ Columbia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흥미롭게도 메릴 스트립의 남편 역으로 출연한 스탠리 투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스트립의 부하직원으로 등장해 좋은 연기를 펼친바 있으며, 줄리 역의 에이미 아담스 역시 [다우트]를 통해 메릴 스트립과 함께 출연하며 만만찮은 연기력을 선보인바 있다. 각각 다른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과 만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건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안타깝게도 국내에는 줄리아 차일드라는 인물이 잘 알려져있지 않은 탓에 메릴 스트립의 메소드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몸소 체감할 길이 없다)
여전히 자신의 숨겨진 가치를 그냥 조용히 묻어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줄리 & 줄리아]의 성공담은 꽤나 고무적인 역할을 하리라 믿는다. 그것이 이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두 사람이 이야기가 모두 '실화'에 근거한 것임을 서두에 밝히는 제작진들의 의도일테니까 말이다.
P.S: 블로그 개설 초기, 방문자가 아무도 없는 블로그에 첫 답글이 달려 설린 맘으로 댓글을 열어보니 '방문자도 하나 없네' 하는 엄마의 댓글을 보는 주인공의 황망한 표정은 이 작품을 통틀어 가장 웃기면서도 공감가는 시퀀스다.
* [줄리 & 줄리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Columbia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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