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감독 브라이언 싱어와 톱스타 톰 크루즈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작전명 발키리]는 순탄치 않은 제작과정으로 인해 한때 '저주받은 프로젝트'라 불리기까지 했다. 톰 크루즈가 사이언톨로지의 신자라는 이유로 독일당국의 촬영허가가 나지 않는가하면, 11명의 엑스트라를 태운 트럭이 촬영도중 사고를 당해 일부 배우들이 중상을 입어 한바탕 홍역을 치뤘다. 더군다나 수백명의 엑스트라가 베를린 시내를 활보하며 나치시대의 악몽을 재현하는 통에 시민들의 반감을 사는 등 악재의 연속에 더해 애초에 잡혀있던 개봉일자는 자꾸만 연기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제작상의 난관들 보다 더 큰 한가지 핸디캡이 있었으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이미 결말이 나와있는 사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브라이언 싱어의 이력을 생각해 볼 때 [작전명 발키리]를 선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라고 생각된다. 왜냐고? 브라이언 싱어가 누군가. [유주얼 서스팩트]라는 가공할 만한 범죄 스릴러로 관객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때린 반전 영화의 대명사로 떠오른 감독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오랜만에 스릴러로 돌아왔는데, 하필 결말이 미리 정해진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 이 어찌 의외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이다.
물론 결말을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서 멋진 스릴러가 탄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일례로 케네디 대통령 당시 소련과의 핵전쟁 상황 일보직전까지 같던 쿠바 사태를 극화한 로저 도날드슨 감독의 [D-13]은 비록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든 관객들이 인지한 상황에서도 노련한 연출력 덕택에 긴장감 넘치는 정치 스릴러가 되었던 전례를 남겼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미 슈타우펜베르크([작전명 발키리]에서는 슈타펜버그로 번역했으나 본 리뷰에선 독일식 발음으로 통일한다)의 암살기도 사건은 [오퍼레이션 발퀴레 (Operation Walküre, 1971)]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작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 (The Plot To Kill Hitler, 1990)], [슈타우펜베르크 (Stauffenberg, 2004)] 등 이미 제작된 영화만도 두 편에 달한다. 과연 브라이언 싱어는 자신의 말많고 탈도많은 야심작에서 기존의 작품들과는 어떤 차별성을 보여줄 것인가?
ⓒ Jadran Film & Warner Bros. Television/ Westdeutscher Rundfunk (WDR). All rights reserved.
어쩌면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작전명 발키리]에 대한 기대치가 식지 않았던 것은 나치 장교의 히틀러 암살 미수라는 사건의 흥미성에 더해 브라이언 싱어라면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하는 일종의 맹목적인 신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이러한 기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력은 매끄럽고 군더더기가 없다. '히틀러는 암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나가 알고 있는 상황이지만 영화는 한순간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바야흐로 싱어 감독의 장기인 '드라마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필자가 늘상 하는 말이지만 브라이언 싱어의 재능은 '액션'이 아니라 '드라마'다)
[작전명 발키리]의 미덕은 뻔한 사실을 좀 더 흥미롭게 보이기 위해 실제 역사를 왜곡하는 팩션 스타일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 사건을 가공한 팩션극이 얼마나 형편없게 변질되는 지는 양윤호 감독의 [홀리데이]를 보면 답이 나온다.) 오히려 브라이언 싱어는 고증에 근거한 역사적 음모의 순간을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짜임새있게 배치하는 정공법으로 승부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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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대표곡 니벨룽겐의 반지 중 '발키리의 비행'에서 따온 발키리 작전은 일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히틀러 암살 음모'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총독 히틀러의 암살과 같은 급박한 상황 발생시 중앙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베를린에 주둔하는 예비병력을 동원, 치안회복과 쿠데타 세력을 말살하는 대비책을 말한다. 물론 이 '발키리 작전'은 히틀러 본인의 승인을 받은 합법적 계획안이었다.
암살을 기도하는 슈타우펜베르그 일행은 히틀러의 암살 이후, 임시정부를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발키리 작전을 역이용하기로 결심한다. [작전명 발키리]는 크게 두 부분의 파트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히틀러 암살을 위한 계획의 진행, 후반부는 암살 기도 후 발키리 작전을 발동시켜 언론과 지휘체계를 장악하는 과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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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놀라울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되는데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암살음모의 한 가운데 있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대단한 흡입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를 톰 크루즈 주연의 전쟁 액션 블록버스터 쯤으로 착각한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하품을 해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어찌보면 고지식할 정도로 정공법을 고수하는 싱어의 연출로 인해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단선적이라는 비판도 들릴테지만 이미 패를 다 까놓은 상태에서 서스펜스의 극한을 보여주는 싱어의 연출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작전이 실패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관객들이 '이거 실패하면 어쩌나..' 하고 똥꼬줄이 타들어가는 심정을 맛볼 수 있다면 이해가 가겠는가?
케네스 브래너, 빌 나이, 테렌스 스템프, 톰 윌킨스 등 배테랑 배우들의 열연도 [작전명 발키리]를 보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비록 영화 자체가 거대한 '사건'에 주목하는 작품이라 캐릭터의 구성에는 다소 소홀한 경향이 있지만 이들 명배우들의 열연이 아니었다면 영화가 이토록 사실적인 묘사를 보여주기는 어려웠으리라. 다만 톰 크루즈의 경우 연기의 호불호는 둘째치더라도 그의 스타성 때문에 작품속 슈타우펜베르크와 싱크로 시키는 데 다소 어려움을 주고 있다. 슈타우펜베르크가 아니라 '애꾸눈을 한 톰 크루즈'를 보는 느낌이랄까. (물론 개인적으로 그의 연기에 대해선 불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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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작전명 발키리]가 스릴러물의 걸작까지는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동류의 스릴러 영화 중에서는 최고의 반열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다. 이미 밝혀진 사건을 소재로 비주얼적인 기교나 불필요한 감정선을 자극하는 일 없이 서스펜스 하나만으로 2시간을 지탱하는 영화는 앞으로도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 [작전명 발키리]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th Century Fox./ MGM-UA.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히틀러 암살 작전 (ⓒ Jadran Film & Warner Bros. Television. All rights reserved. ), 슈타우펜베르크 (ⓒ Westdeutscher Rundfunk (WDR) All rights reserv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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