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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의 합작을 위해 EON과 맥클로리가 협의한 조항들은 여러모로 분쟁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우선 맥클로리에게 있어서는 12년간 제임스 본드 영화에 대해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며, 따라서 EON측이 이후의 007 시리즈를 통해 스펙터와 블로펠드의 캐릭터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을때에도 맥클로리는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EON Productions/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007 썬더볼]의 도쿄 프리미어 현장. 왼쪽이 커비 브로콜리이며 오른쪽이 케빈 맥클로리이다. 두 사람의 동맹관계는 안타깝게도 [썬더볼] 한편으로 끝나고 만다.
반면 EON측에 있어서도 이 조항은 좌불안석의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12년이 지난 후에 맥클로리가 어떤 식으로 제임스 본드에 대한 권리주장을 해 올지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EON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썬더볼]의 리메이크 유예기간이 끝나게 된 1976년, EON측은 시리즈의 10번째 작품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제작에 한창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기절초풍할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온 케빈 맥클로리가 [워헤드 Warhead]라는 독자적인 제임스 본드 무비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EON측에 위협적이었던건 맥클로리가 무려 '원조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네리와 함께 각본을 집필하고 있으며 악당으로는 오손 웰즈를 기용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맥클로리는 EON이 스펙터와 블로펠드의 캐릭터 사용을 인정할 수 있는 기한인 10년이 이미 지났다는 점을 들어, EON측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1
제임스 본드를 둘러싼 또 한차례의 법정분쟁이 벌어지려던 찰나, EON측이 [나를 사랑한 스파이]에서 스펙터와 블로펠드를 빼 버리면서 (스펙터는 칼 스톰버그라는 인물로 대체) 이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맥클로리의 딴죽에 배급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된 UA 측은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 사용권은 EON과 UA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유 권한이므로 이를 침해할 시에는 강력한 법적 대응으로 맞서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실상 변변한 투자자를 물색하지 못한 채 12년의 세월을 낭비한 맥클로리로서는 이런 대형 법정소송을 진행할만한 금전적 여력이 없었으므로 결국 [워헤드]의 제작 계획을 일단 보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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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어 아이즈 온리]의 프리타이틀 시퀀스. 007 시리즈에 무려 6차례나 등장한 숙적 블로펠드는 [유어 아이즈 온리]의 오프닝에서 본드에 의해 제거된다. EON의 제작진은 계속되는 맥클로리와의 캐릭터 분쟁 때문에 이같은 결단을 내렸다.
비록 맥클로리의 [워헤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는 제임스 본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맥클로리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처남인 잭 슈왈츠만과 손잡고 워너 브라더스의 투자유치에 성공하게 된다.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되자 맥클로리의 대대적인 역공이 시작되었다. 그는 EON과 UA측에게 제임스 본드 캐릭터의 사용권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이 소송은 맥클로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결이 났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맥클로리는 블로펠드와 도미노, 스펙터 등 [썬더볼]에 원안이 들어있는 캐릭터 및 명칭 사용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져간다.
2.맥클로리는 제임스 본드, M. 머니페니,Q, 펠릭스 라이터 등 [썬더볼]에 등장했던 인물들에 대한 저작권 및 카지노 갬블링, 애스턴 마틴 DB5 등의 설정을 EON측과 공유할 수 있다.
3.단, 맥클로리는 제임스 본드, 007, 썬더볼 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영화의 제목을 사용할 수 없다.
이 같은 판결로 인해 맥클로리로 부터 제임스 본드의 캐릭터 사용 권한 자체를 박탈시키려던 EON과 UA측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다. 비록 [썬더볼]과 연계된 한정된 권리의 획득이기는 했지만 이로서 케빈 맥클로리는 또 한번 제임스 본드 무비의 제작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맥클로리와 슈왈츠는 [워헤드] 계획에 재시동을 걸어 마침내 숀 코네리를 영입하는데 성공한다. 3600만 달러의 제작비를 확보한 맥클로리는 클라우스 마리아 브랜다우어, 에드워드 폭스, 맥스 본 시도우, 바바라 카레라 등 초호화 캐스팅을 구축하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2
당시 차기작 본드 무비로 [옥토퍼시]를 계획중이던 EON는 맥클로리의 심상찮은 움직임에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EON측은 본드 역의 로저 무어를 대신할 젊은 배우를 찾고 있었던 시기였는데, [문레이커]로 전속계약이 만료되었던 무어는 [유어 아이즈 온리]로 단 한 차례 계약을 연장한 상태였다. 올리버 토비아스, 마이클 빌링튼, 티모시 달튼 같은 배우들이 오디션에 참가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제임스 브롤린이 본드 역으로 거의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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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퍼시] DVD에 수록된 제임스 브롤린의 스크린 테스트 장면. 4대 제임스 본드로 가장 유력한 배우였지만 숀 코네리 컴백 소식에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조나 헥스]의 조쉬 브롤린.
하지만 맥클로리가 숀 코네리를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EON측은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레전드 급인 코네리를 당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다시금 로저 무어를 제임스 본드로 기용하기로 결정한다. 바야흐로 정통 제임스 본드와 원조 제임스 본드의 대결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언론에서도 이 흥미진진한 상황을 보고만 있지 않았다. '제임스 본드 전쟁 James Bonds Battle'이나 '본드 대 본드 Bond vs. Bond'라는 선정적인 문구로 장식된 기사들이 연예부 1면을 앞다퉈 장식했다. 당시 언론들의 예상으로는 숀 코네리의 캐스팅 프리미엄과 더 많은 제작비를 들인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옥토퍼시]를 제압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소 우세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승부였음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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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알려진 바처럼 [옥토퍼시] 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정면승부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두 작품 모두 1983년에 개봉된 것은 맞지만,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개봉 시점을 4개월 뒤로 늦추면서 여름 시즌을 피하게 되는데, 이는 과열된 언론의 '제임스 본드 전쟁' 이슈로 흥행에 그다지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예정대로 여름시즌에 개봉을 감행한 [옥토퍼시]는 전 지구적인 히트작 [스타워즈Ep.6: 제다이의 귀환]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전미흥행 6700만 달러의 히트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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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여름 성수기를 피해 별다른 도전작없이 개봉한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옥토퍼시]보다도 200여개가 더 많은 1500 여개의 상영관을 확보해 대대적인 역습에 나선다. 첫주 흥행스코어가 [옥토퍼시]에 2000만 달러를 앞서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게 된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4주연속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최종스코어에서 [옥토퍼시]에 근소한 차이로 패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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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퍼시]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옥토퍼시]가 북미, 월드와이드, 렌탈 스코어 모든 면에서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을 앞서면서 실제적으로 판정승을 거두었지만 그렇다고해서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실패작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은 제작비 3600만 달러에 비해 확실한 흥행성공을 이룬 작품이었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흥행 성적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55만6천명, [옥토퍼시]가 33만3천명을 동원하면서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 승리를 거뒀다. 다만 국내에서는 [옥토퍼시]가 1년 늦은 1984년에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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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 흥행성공은 맥클로리에게 제임스 본드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라는 불행의 씨앗을 안겼다. 실로 오랜만에 흥행 대박의 성공을 맛본 케빈 맥클로리는 이후에도 오로지 제임스 본드 프로젝트에만 메달렸다. 007 영화의 인기가 시들해져 한동안 제작이 잠정 보류되었던 1990년대 중반 모처럼의 신작 [골든 아이]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맥클로리는 다시금 본드 무비에 도전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다.
1996년 맥클로리는 버라이어티를 통해 18번째 본드 무비 [네버다이]에 대항할 또 한편의 '썬더볼' 리메이크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워헤드 2000]이라고 명명된 이 프로젝트는 숀 코네리가 제임스 본드로 돌아오지는 않지만 계약 조건에 따라 악당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면서 주목을 끌게 되었다. 더불어 맥클로리는 [워헤드 2000]의 제임스 본드로 4대 007인 티모시 달튼(리암 니슨도 본드 역으로 물망에 올랐음)을 기용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러한 맥클로리를 지지하고 나선것은 콜롬비아 픽쳐스를 인수한 소니측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소니의 실권자로 취임한 존 칼리 John Calley 는 [골든 아이]로 007 시리즈의 부활을 알린 MGM/UA의 회장직을 거쳤던 인물이었다. 그는 맥클로리의 결정에 흡족해하며 맥클로리가 본드 무비를 만들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지지한다고 천명하기에 이른다. 소니와의 전격적인 딜을 성사한 맥클로리는 자신이 플레밍과 협상한 내용이 EON측보다 훨씬 앞선 것이었음을 주장하며 이제는 소니를 통해 자신만의 007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게 된다.
커비 브로콜리의 사후 EON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던 바바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윌슨은 이 기가막힌 맥클로리의 도전에 맞서 법정 대응에 나섰다. 이 법정 소송은 굉장히 치열한 양상을 띄게 되었는데, 앞선 소송들이 맥클로리에게 유리하게 판결이 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우선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배급권을 가지고 있던 오라이언 영화사가 자금난으로 최종 부도를 선언하면서 공교롭게도 MGM/UA에 합병되고 만 것이다. 이로서 맥클로리가 독립적으로 만든 제임스 본드 무비의 판권은 MGM/UA에게 넘어가게 된다.
EON측의 압박은 계속되었다. EON측은 [썬더볼]에 참여한 맥클로리의 판권이 유효기간 만료로 더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수세에 몰린 맥클로리는 소니와 함께 '영화화를 위한' 제임스 본드 캐릭터에 대한 소유권은 애초에 자신과 플레밍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며 따라서 플레밍에게만 판권을 구입한 EON측은 그동안 본드 무비로 벌어들인 수익금의 일정 부분을 자신에게도 지급해야 한다고 맞서지만 법정은 그 주장을 관철시키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며 EON과 맥클로리의 오랜 분쟁에서 마침내 EON의 손을 들어준다.
사실상 이러한 논의 뒤에는 맥클로리를 배제한 MGM/UA와 소니측의 거래가 있었다. MGM/UA는 007 영화의 모든 권리를 독점하는 동시에, 콜럼비아 픽쳐스가 소유하고 있던 1967년작 [카지노 로얄]의 판권을 가져가는 댓가로 천만 달러와 영화 [스파이더맨]의 판권을 양보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2004년 소니는 MGM의 지분 20%를 취득하였고, 2005년 MGM을 완전히 합병하게 된 소니측이 마침내 007 시리즈의 배급권을 얻게 된다) 그리고 소니는 2002년, 제임스 본드 대신 첩보물의 새로운 트렌드를 보여준 [트리플 엑스]로 박스오피스를 점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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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서 수십년을 끌어온 EON과 맥클로리의 '제임스 본드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언 플레밍의 사후 EON을 괴롭혔던 판권분쟁은 모두 해결되었고, 맥클로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권리를 잃게 되었다. 일평생 제임스 본드 무비의 제작에 온 정성을 쏟았던 그는 21번째 본드 무비 [카지노 로얄]이 영국에서 개봉된 지 나흘 후에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생전 맥클로리가 제작했던 영화는 고작 네 편. 그 중 두 편이 본드 무비였다. 그가 007 시리즈에 집착했던 열정의 반만이라도 다른 작품을 만드는데 사용했더라면 아마도 그가 영화계에서 이룬 성과는 보다 더 뛰어난 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제 EON의 손을 떠난 007을 볼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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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The Battle for James Bond (Robert Sellers 저), James Bond Encyclopedia (John Cork 저), The Man With the Golden Touch: How The Bond Films Conquered the World (Sinclair McKay 저), Wikipedia,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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