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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 - 지금 숨쉬고 있음에 감사하라

페니웨이™ 2011. 2.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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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보일 감독의 신작 [127시간]은 포스터에서부터 풍겨오는 센스가 남다릅니다. 절벽 사이로 절묘하게 맞닿은 바위 한덩어리와 그 위로 몸을 받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마치 모래시계를 연상케하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국내 포스터는 이 심오한 의미를 뭉게 버리는 발편집을 해놨어요 -_-) 그리고 제목은 '127시간'이지요. 대략 '시간'이 중요한 테마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럼 어떤 시간을 말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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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x searchlight. All Right Reserved.


주인공 아론(제임스 프랑코 분)은 산악인입니다. 무엇인가를 바쁘게 챙기는 가운데, 전화벨이 울리지만 전화를 받지는 않습니다. 이윽고 자동응답기로 넘어가자 여동생인 듯 한 여자가 자신의 결혼식을 잊지 말라며 메시지를 남깁니다. 아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등정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깁니다. 한가지를 빼먹는데, 흔히 맥가이버칼로 알려진 스위스제 만능칼을 빼놓고 가는군요. 이 상황들이 뭔가 복선이 될 만한 것임에는 분명한데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론은 광활한 유타주 사막지역에 위치한 블루 존 캐년으로 향합니다. 이곳에서 그는 길잃은 두 명의 아가씨들을 만나 길안내를 해주며 한때의 즐거운 시간을 갖고는 자신이 갈 길을 갑니다. 신이 나서 계곡의 절벽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듯 뛰어가던 아론은 그만 실수로 바위를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암벽과 떨어진 바위틈에 오른팔이 끼이는 사고를 당합니다. 이것 참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죠. 인체라는 것이 참 오묘하고도 신기해서 어지간하면 팔이 빠질법도 한데 이건 어떻게 팔이 꼈는지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127시간'은 이제부터 시작됩니다.

영화 [127시간]이 흥미로운건 '웃으면 안되지만 실소가 터지는' 이 황당한 상황이 실화라는데 있습니다. 가진 것이라곤 산악용 로프와 싸구려 중국제 칼, 조명기구와 비디오 레코더, 그리고 500ml의 물 한 병이 전부입니다. 이걸로 기약없이 구출을 기다려야 한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 아닙니까? 그러나 아론이 유일하게 가진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전직 구조대원으로서의 경험과 침착성, 그리고 정신력입니다.

그렇게 [127시간]은 아무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외진 계곡 틈에 낑겨서 옴짝 달싹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눈물겨운 생존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얼마전에 개봉된 [베리드]를 떠올리기도 하는데, 한정된 공간에 갇힌 한 남자의 1인극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두 작품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베리드]가 일종의 스릴러적 성격을 지닌 강한 고문 드라마라고 한다면 [127시간]은 [얼라이브]나 [K2]같은 조난극에 더 가깝습니다. 사실 [127시간]의 설정은 어찌보면 지극히 단순합니다. [베리드]처럼 영화에서 모습만 보이지 않을 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다수의 화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정말 혼자서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팔까지 낑겨있으니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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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x searchlight. All Right Reserved.


그래서인지 영화의 상당 부분은 주인공의 상상과 플래시백에 할애합니다. 흔히들 죽기전에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고 하지요. 어찌보면 주인공 아론의 상황은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의 상태에 비할 수 있는데, 이 끔찍한 상황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짚어보며 많은 후회와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이 또 그렇게 눈물날 수가 없어요. 오프닝 시퀀스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짐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고 가족의 전화마저 묵살하는 태도는 그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삶을 살아왔으며 타인에 대한 배려에 무지했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만약 그가 그 전화를 받아서 자신이 어디로 떠나는지만 알려줬더라도 이 개고생을 하지 않을텐데 말이지요.

참 별거 없을 것 같은 영화임에도 [127시간]은 흡입력이 강한 작품입니다. 절박하지만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고, 또 관객들은 안타깝게 만드는 극의 구조는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아카데미를 석권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경우는 다소 과대평가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127시간]은 그런 거품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아주 깔끔한 영화입니다. 감각적인 영상편집과 A.R 라흐만이 작곡한 OST도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지요.

무엇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심신히 지쳐가며 죽음을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정을 관객에게 이입시키는 연출감은 정말 대단합니다. 마치 내 팔이 바위에 낑겨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나라고 자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1등 공신은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제임스 프랑코라고 해야겠지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주인공과 나를 자꾸만 동질시하는 느낌이 한 며칠은 갔던 것 같습니다. 어떤면으로보면 참 '독한 영화'입니다.

P.S: 오늘의 교훈. 싸구려 중국제를 쓰다간 거지꼴을 못면한다.


본 리뷰는 2011.02.18. Daum View의 인기이슈로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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