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공개된 제임스 본드 무비는 총 22편. [퀀텀 오브 솔러스] 이후 MGM 스튜디오 매각에 실패해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 EON측이 제작을 보류한 바 있지만 2012년 10월에 23편의 개봉이 확정되어 캐스팅 작업이 거의 완료된 상태다. 아마 본드 무비의 팬들이라면 기존의 22편 외에도 두 편의 007 영화가 더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중 한편은 괴작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카지노 로열 (1967)]이고, 또 한편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이다.
특히 1983년의 극장가에서는 두 편의 제임스 본드 무비, [007 옥토퍼시]와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의 대결이라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3대 제임스 본드로 한창 궤도에 올랐던 로저 무어와 원조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의 자존심이 걸린 한판 승부! 팬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두 007 영화의 대결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 흥미로운 이슈의 이면에는 영화보다도 더 흥미로운 뒷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이제부터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007의 원작자인 이언 플레밍이 스스로 영화 프로덕션까지 설립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하려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는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 케빈 맥클로리, 어니스트 쿠니오, 이바 브라이스와 함께 '제나두 프로덕션 Xanadu Productions'을 설립,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첩보영화를 제작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플레밍에 의해 출간된 소설은 골드 핑거를 포함해 총 8편의 작품이 있었는데, 맥클로리는 이들 소설을 영화화하기 보다는 오리지널 각본으로 탄생된 영화를 원했던 것 같다. 당시 그는 명배우 리처드 버튼을 본드 역으로 점지해 둔 영화 'James Bond, Secret Agent'를 첫번째 작품으로 내놓을 계획이었다.
ⓒ CBS Television/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최초로 영화화 된 제임스 본드 소설은 바로 '카지노 로얄'이다. 1954년, CBS를 통해 방송중이던 [클라이막스!]의 60분짜리 에피소드로 방영된 이 작품에서는 베리 넬슨이 최초의 제임스 본드를 맡았다. EON의 설립 이전에 CBS측에 판권이 팔려나간 작품이기 때문에 소설 '카지노 로얄'은 훗날 번외편으로도 만들어졌고, 판권을 회수하는데 성공한 EON측에 의해 마침내 21번째 정식 제임스 본드 무비로도 제작되었다. 어쟀든 플래밍은 판권료로 1000 달러를 CBS측으로부터 받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그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영화화 계획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플레밍과 케빈 맥클로리, 그리고 영국출신의 각본가 잭 휘팅엄은 이전 본드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대악당 블로펠드가 이끄는 국제범죄조직 '스펙터 SPECTRE'를 등장시키는 각본을 집필해 나갔다. 1 하지만 '첫번째' 본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 각본은 플레밍의 바램처럼 영화화될 수 없었다. 케빈 맥클로리가 감독한 [소년과 다리 The Boy and the Bridge]가 흥행에 참패하면서 그의 영화적 수완에 의문을 품은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실망한 플레밍은 사용되지 않은 이 각본으로 '썬더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 1961 Jonathan Cape
하지만 이 일로 문제가 생겼다. 이전 제임스 본드 소설과는 달리 '썬더볼'은 온전한 이언 플레밍의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화를 위한 각본에 참여한 케빈 맥클로리와 잭 휘팅엄은 '썬더볼'의 저작권을 주장하며 무려 6개의 항목에 걸쳐 플레밍을 고소하게 된다. 이 재판은 플레밍에게 심적, 물질적으로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법원은 '썬더볼'의 원작자를 맥클로리, 휘팅엄, 플레밍의 공동집필로 인정함과 동시에 영화화 및 스펙터와 브로펠드 캐릭터 사용의 판권까지 맥클로리에게 이임하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탓일까. 평소에 과도한 술과 담배로 건강이 좋지 않았던 플레밍은 이듬해 5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 EON Productions/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살아생전의 이언 플레밍과 숀 코네리의 모습. 처음 그는 코네리의 본드 역 캐스팅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주장을 바꿨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소설이 완벽하게 영화화 되길 바란 플레밍이었지만 판권문제에 얽힌 소송으로 쇠약해진 나머지, 세번째 본드 무비 [골드핑거]가 개봉하기 몇 달 전 지병인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만다.
그러나 이것으로 일단락된 것이 아니었다. '썬더볼'의 판권분쟁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 플래밍은 소설을 발표하고나서 얼마 안 있어 EON 프로덕션의 설립자 알버트 R. 브로콜리와 해리 솔츠먼에게 '썬더볼'의 판권을 넘긴 상태였고, EON측에서는 자사의 첫번째 본드 영화로 '썬더볼'을 제작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중인 작품을 섣불리 영화화 시킬 수 없게 되자 EON측은 우선적으로 [007 살인번호]와 [위기일발]을 내놓으면서 전 세계적인 007 돌풍을 일으키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썬더볼]의 판권을 가지게 된 캐빈 맥클로리는 속이 타들어갔다. 제임스 본드의 영화화 계획은 자신이 먼저 생각한 것이었음에도 선수를 빼앗기고 만 꼴이었다. 이같은 007 신드롬의 여세를 몰아 자신도 독자적인 본드 무비를 만들어보려 사방을 뛰어다녔지만 맥클로리는 마땅한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브로콜리와 솔츠먼을 찾아가 협상을 제안하게 되는데, 이 협상과정에서 제시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1.향후 12년간 '썬더볼' 원작은 EON측이나 맥클로리 모두 다시 사용할 수 없다.
2.스펙터와 블로펠드의 캐릭터 사용권은 [썬더볼] 개봉 이후 10년간 EON측과 맥클로리가 공동 소유하는 것으로 한다.
3.캐빈 맥클로리를 영화 [썬더볼]의 제작자와 원작자로 표기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브로컬리와 솔츠먼은 본드 무비 중 유일하게 제작자로서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이 같은 조항에 합의한 EON과 맥클로리는 마침내 네번째 본드 무비 [썬더볼]을 제작하게 된다. [007 살인번호]의 주역 테렌스 영 감독과 숀 코네리의 콤비 플레이가 절정의 기량을 발휘했던 [썬더볼]은 B급 스파이물에서 시작해 점차적으로 대형 프랜츠화 되어가는 본드 무비의 완성본과도 같았다. 원작인 '썬더볼'은 애당초 이언 플래밍의 소설이 아니라 오로지 '영화화'를 위해 쓰여진 각본이었으며 따라서 [썬더볼]이야말로 플래밍이 그의 동료들과 '제너드 프로덕션' 시절에 구상했던 진정한 제임스 본드 무비에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 EON Productions/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북미지역에서만 63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썬더볼]은 평단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하면서 [골드핑거]가 음향효과상을 수상한 이래 다시 한번 오스카를 수상한 기념비적인 본드 무비로 기록되었다. 2
ⓒ EON Productions/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썬더볼]에서 제작자에 참여하게된 케빈 맥클로리는 영화상에서도 까메오로 출연하는 한 편 크래딧에도 당당하게 '제작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제임스 본드 무비에 참여하게 된 맥클로리의 단 꿈은 [썬더볼] 한편으로 끝나게 된다.
이러한 [썬더볼]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EON과 맥클로리의 동맹관계는 결국 지속되지 않았다. 007의 차기작에서 EON측은 철저히 맥클로리를 배제했으며, 이로서 제임스 본드를 둘러싼 막후의 전운은 서서히 다시금 암운을 드리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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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펙터에 대한 아이디어가 플래밍의 것인지, 아니면 맥클로리의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맥클로리가 007 영화를 위한 별도의 스크립드를 제안한 점, 그리고 훗날 그가 스펙터와 브로펠트의 사용권한을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점으로 미루어 볼때 이 부분은 맥클로리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플래밍의 일생을 연구한 존 콕 John Cork은 자신의 저서 'Inside Thunderball '을 통해 플래밍이 원안을 제공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본문으로]
-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썬더볼]은 007 시리즈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작품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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