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7광구]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대충 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이런 영화 만들 수 있다', '크리처물이 헐리우드의 전유물이더냐'. 뭐 이런 치기어린 외침이 들려오는 듯 하니까요. 실제로 처음에 영화를 딱 돌려보는 순간 ‘이건 헐리우드 영화로구먼’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를 보다보면 [에이리언], [괴물 The Thing], [레릭], [레비아탄] 등 어디선가 많이 봤던 일련의 크리처물들이 팍팍 떠오릅니다. 그만큼 도식적이고 기성품의 냄새가 진동하는 영화란 얘기지요. (이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영화답게 캐스팅도 막강합니다. 여전사 이미지가 확실한데다, [시크릿 가든]으로 인기 상승세를 탄 하지원을 비롯해 [추노]의 오지호, 국민배우 안성기, 여기에 감초 조연 박철민과 송새벽이 가세했습니다. 중소형 영화에 주연급으로 등장한 차예련이 이 영화에 나오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주조연의 라인업이 환상적입니다. 게다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양한 장르변화로 상업성을 인정받은 윤제균 감독이 제작에 참여했으니 최소한의 기본빵은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가지게 되지요. 갖출 건 다 갖췄습니다.
근데 문제는 이 작품이 도무지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는 겁니다. 셀링 포인트가 분명치 않아요. CG요? 솔직히 말해 이건 불만 없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흉내는 냈으니까요. 아직도 제작진은 CG의 기술이 덜떨어져서 영화가 망했다고 보는 모양인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7광구]의 문제점은 CG나 비주얼이 아닙니다.
영화는 석유 시추선인 7광구의 대원들이 심해에서 건져올린 괴생물의 성체와 마주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습니다. 괴물과 마주친 주인공들이 도망가다가 하나씩 죽어나가는 단순한 이야기구조를 지녔지요. 여기서 굳이 1970년대 한일 외교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제주도 남단의 7광구를 굳이 작품의 배경으로 선택한건 무슨 이유일까요? 아마 봉준호 감독이었다면 아닌척하면서도 모종의 풍자성을 슬쩍 넣었을지 모릅니다. 근데 이 영화는 아닙니다. 그냥 어쩌다보니 배경이 7광구인겁니다. 그런데도 영화의 마지막 자막에는 마치 이 영화가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7광구의 현실을 재조명하기 위하는 것처럼 허세를 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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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가 이런 식입니다. 당위성 제로에 개연성 제로. 하지만 괘씸하게도 영화는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마치 뭔가 대단한 것이라도 숨어 있는 듯 해준(하지원 분)과 캡틴(박정학 분) 사이에 갈등요소를 부여하지만 뭐 별거 없구요, 닥터(이한위 분)는 캡틴과 무슨 암거래라도 하는듯한 암시가 주어지지만 역시 암것도 안나옵니다. 해준과 동수(오지호 분)도 분명 설정상으로는 커플인데, 뭐 애절함이나 그런게 전혀 없어요. 인물들 간의 관계가 전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보니 극의 밀도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흉측하고 불에 타도 죽지않는 막강 스펙의 괴물마저도 크리처물로서 마땅히 관객에게 주어야 할 서스펜스를 전혀 제공하지 못합니다. 왜 7광구의 대원들을 그렇게까지 집요하게 죽이려 드는지 (심지어 잠수정까지 타고 탈출한 xx를 잡아 죽이고는 다시 7광구로 돌아오는 꼼꼼함.. -_-) 이해도 안 갈 뿐더러 불을 질러도 안죽는 녀석이 그깟 염산하나 얼굴에 맞았다고 도망가는 소심함까지 갖췄습니다. 이렇게 성격을 규정하기 힘든 괴물도 처음인 듯. 영화에 필요한건 단 두가지, 그저 살육에 미친 괴물과 죽어나가는 사람들 뿐입니다.
80년대식 연출과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들의 향연, 그리고 대책없는 캐릭터의 낭비 등 [7광구]는 가히 총체적 난관을 보여주는 한국식 블록버스터의 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당초 [디 워]같은 영화가 700만 돌파라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세울때부터 이런 일은 예견된 셈이지요. 지금이라도 관객들의 현명한 판단이 따끔한 질책이 되어 주었다면 좋을텐데요.
한마디로 [7광구]는 CG에서 좀 더 발전된 어사일럼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아니, 적어도 어사일럼은 삼류영화에서 느끼는 괴악스런 재미만큼은 보장하지만 [7광구]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영화일 뿐입니다. 이건 한국의 블록버스터나 크리처 장르물을 논하기 이전에 값비싼 상업 영화로서의 완성도가 관련된 문제니까요. 어려운 경기속에서 물경 13000원씩이나 주고 영화를 관람했을 관객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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