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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카이폴 - 클래식 본드무비로의 회귀

페니웨이™ 2012. 10.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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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아직도 처음 다니엘 크레이그가 본드 역에 발탁되었을때의 분위기를 기억합니다. 인터넷은 네티즌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안티-크레이그 사이트까지 생성해가며 배우 교체의 목소리를 높혔죠. 크레이그 본인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비단 007 팬들이 자신을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기존 본드 영화의 클리셰를 모두 제거한 채 자신에게 제임스 본드를 연기하라고 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던 거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는 대성공이었습니다. 크레이그는 그 어떤 007보다도 젊고 터프하며, 근육질의 야수 같은 남성상을 보여주었죠. 게다가 멍청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전락해가던 본드 시리즈가 탄탄한 짜임새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루어진 장르물로 다시 한번 회귀할 수 있던 기회도 제공했습니다.

물론 크레이그의 두번째 본드무비인 [퀀텀 오브 솔러스]가 기대 이하의 평작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사실 [카지노 로얄]를 뛰어넘을 만한 본드무비는 20여편이 넘는 시리즈 중에서도 그리 많지 않죠. 여러가지 내홍으로 만들어지기까지 4년이나 걸리긴 했습니다만 [스카이폴]에 거는 기대감은 분명 [카지노 로얄]에서 느꼈던 그 신선한 충격의 재현일 겁니다.

하지만 [카지노 로얄]이 나온지도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다니엘 크레이그도 어느덧 선배들이 그러했듯 중년 남성의 주름이 깊어져가고 있고, 처음으로 여자 M을 맡아 파격적인 캐스팅 반열에 올랐던 주디 덴치는 완연한 할머니가 되어버렸습니다. 시리즈물에 개성을 부여했던 주요 배역들이 줄 수 있는 신선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더 이상의 파격을 기대하기에는 무리라는 얘기죠.

ⓒ EON Productions/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그렇다면 마틴 캠벨이 창조한 리부트의 세계관에서 이제는 어떤 방향으로 흐를것인지를 슬슬 결정해야 할 시기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 마크 포스터는 [카지노 로얄]에 안주하길 선택했기 때문에 [퀀텀 오브 솔러스]를 그토록 밋밋하게 만들 수 밖에 없었고, 똑똑한 감독이라면 그걸 반복하는 실수는 하지 않아야 겠죠. 아마도 제작진이 가족사적인 드라마에 능한 샘 멘데스를 선택한건 뭔가 흐름을 바꿔줄만한 무언가를 그가 해주길 바랬을 거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샘 멘데스는 제작진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 무언가를 해내긴 했습니다. 이번 [스카이폴]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영화입니다. 리부트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은 하되 앞으로 나아갈 본드무비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기 때문이죠.

마틴 캠벨이 이전 본드무비의 클리셰를 파괴하는데 온 정성을 쏟았다면 샘 멘데스는 과거로의 회귀에 조심스럽게 접근합니다. 이를테면 Q나 그녀(누군지는 알만한 사람은 아는..)의 귀환, 그리고 애스턴마틴의 등장과 같은 클래식 본드의 클리셰를 세련된 방식으로 돌려놓습니다. 특히 Q의 등장은 꽤나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는데 벤 위쇼의 캐릭터 해석이 워낙 뛰어난 면도 있었지만 과거의 본드무비에서 지향하던 특수가젯의 사용이 시대적인 요구와는 뒤떨어진 것임을 천명하면서 구시대와의 선을 분명히 긋는 역할을 했다는 건 대단히 영리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샘 멘데스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재해석을 영화 속에 투영합니다. 바로 지금까지의 본드무비에서는 한번도 진지하게 다뤄본 적이 없던 제임스 본드의 가족사를 다루는 일 말입니다. 사실 원작에 등장했던 본드의 부모 얘기라든가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는 그동안 간과되어 왔었고 본드 영화에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설정으로 여겨져 왔었지요. 하지만 샘 멘데스는 그의 장기인 가족 드라마의 요소를 이러한 원작의 설정들과 연결시킵니다,

ⓒ EON Productions/MGM-UA Studios. All Rights Reserved.

이에 더해 그는 본드의 실직적인 부모와도 다름없는 캐릭터 M과 그녀로 인해 파생된 또하나의 인물인 라울 실바를 본드무비 사상 가장 독특하고 개성있는 악당으로 등장시켜 본드와의 대칭점에 올려 놓습니다. 결국 동일하게 부모에게 버림받은 본드와 라울이 각자의 트라우마를 지워나가는 방법이 바로 샘 멘데스가 선택한 007식 가족드라마인 셈인데 이 지점에 있어 분명 [스카이폴]은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인을 안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라울과 동일하게 M에게 버림받는 본드가 라울이 겪었던 배신감을 느끼면서 겪게되는 고뇌를 진지하게 다루는 쪽이 훨씬 더 그럴 듯 해 보였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감독은 그 부분에 있어서 본드를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M에게 충성하는 요원으로 묘사했고, 그 이유가 어릴적 트라우마를 지닌 본드가 유일하게 부모처럼 여기는 존재가 바로 M이라는 것으로 스토리를 전개합니다.

이로 인해 후반부 스카이폴 저택에서의 클라이막스는 조금 작위 적이면서도 멜랑코리한 가족사적 이야기가 되어버리는데, 그 때문에 마치 셰익스피어의 희곡에나 나올법한 장엄한 결말처럼 영화가 너무 엄숙해져 버린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본드무비는 그저 단순명쾌하길 바랬던 관객에게 있어 이번 [스카이폴]은 지나치게 복잡한 텍스트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뭐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각자가 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쨌거나 [스카이폴]은 드라마적 요소가 매우 짙은 본드무비입니다. 과거 클래식 본드스타일의 회귀를 암시한다는 점에서는 올드팬들이나 골수팬들의 환호성을 자아낼 것이 분명하며, 마틴 캠벨의 유산을 깔끔하게 소진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차기작에는 정말로 본드무비에 정통한 감독이 아니면 샘 멘데스가 심어놓은 본드영화에의 애정과 오마주를 감당하기 힘들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진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을 거론하는 건 결코 헛소리가 아니라고 봐요.

P.S
1.본드무비 특유의 시니컬한 농담을 자막이 살리질 못하더군요. 가령 지붕에서 열차 한칸을 다 부숴놓고 가까스로 올라탄 본드가 하는 말은 "다른 칸으로 옮겼을 뿐이에요"인데 "열차가 부숴졌어요"로 번역하더라능....

2.신혼여행을 런던으로 갔다온 저로선 그 어느 작품보다 런던의 풍경을 많이 담아낸 이번 작품이 너무 좋았습니다.

3.감독도 인정했고 여기저기서 [다크 나이트]의 잔영을 볼 수 있다는 말들이 많던데, 사실 실바의 캐릭터나 그가 취하는 행동의 역학이 조커와 많이 닮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다크 나이트]의 007버전이 될 수 있다는 얘긴 아닙니다.

4.이번 작품의 본드걸이 누구냐는 의견이 있던데, 사실상 [스카이폴]의 진정한 본드걸은 M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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