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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미터 - 빈곤한 상상력이 만드는 서스펜스의 한계

페니웨이™ 2017. 8.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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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시간]에서 [그래비티], [올 이즈 로스트]에 이르기까지 최근 헐리우드 영화의 트렌드 중 하나는 1인 조난극입니다. 미니멀한 내리터브를 갖고 있지만 응축된 서스펜스와 집중력이 높은 효과를 발휘하면서 사이즈에 집중한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요란함에 실증난 관객들에게는 시원한 청량감과 나름의 교훈점을 주고 있지요.

[47미터] 역시 표면적으로는 그러한 1인 조난극의 포맷을 따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두 명이 여자이지만 실상 이야기가 집중되는 인물은 맨디 무어가 맡은 캐릭터 한 명인데다, 매우 제한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잊고자 멕시코의 한 해변으로 휴가를 즐기러 온 리사와 케이트 자매는 샤크 케이지 체험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다 한 가운데로 가서 상어를 유인한 다음 철장 안으로 들어가서 상어를 직접 관찰하는 체험이지요. 무섭긴해도 위험해 보이진 않습니다. 처음엔 겁을 냈던 리사도 막상 물속에 들어가고 나서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만 철장을 지탱하던 크레인이 부러지는 사고가 나면서 상황이 돌변합니다. 두 여인은 철장에 갖힌 채 수심 47미터 바닥으로 추락해 버리고 말죠. 통신 전파도 닿지 않아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된 채 두 사람은 얼마 남지 않은 산소 탱크에 의존한 채 구조의 손길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철장과 상어. 어디선가 많이 본 소도구 같지요? 네, 영화 [죠스]에서 맷 후퍼 박사가 상어를 독살하기 위해 철장 속에 들어갔다가 그만 낭패를 겪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47미터]는 딱 그 만큼의 분량을 따로 떼어 90분 가량의 스릴러물로 바꿔놓은 소품입니다. 사고 과정은 작위적이며 이야기를 끌고가는 서스펜스의 상당수는 이미 예측 가능하거나 클리셰의 연속이지요. 소재나 아이디어만큼은 조난극, 혹은 조난극을 표방한 서스펜스물에 써 먹기엔 썩 나쁜 편은 아닙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도록 끌어당긴 건 한국판 포스터의 문구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결말은 미쳤다!”. 뭔가 강한 반전을 암시하는 문구라 딱히 땡기진 않았지만 그래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명료한 홍보 전략이었습니다. 그리곤 깨달았죠. 아, 이놈의 문구가 망할 스포일러구나.

네, 본 리뷰에서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만 정말 이 영화의 결말은 미쳤다는 말 자체가 스포일러입니다. 그 왜엔 없습니다. 1인 조난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무색하게 영화는 굉장히 나이브한 자세로 관객들을 맞이합니다. 등장인물들의 사연도 전혀 공감을 일으키지 않는데다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요소들이 너무 빈곤한 상상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공포물로서도, 스릴러로도, 조난물로도 제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영화의 과정과 결과 모두 관객에게 만족감을 줄 수 없을 만큼 안일하게 짜여져 B급 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맨디 무어처럼 다재다능한 싱어송라이터의 재능을 묻어버리고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오랜만에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낸 매튜 모딘 마저도 단역에 가까운 역할에 그치며 배테랑다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감독인 조하네스 로버츠는 그저 그런 영국산 B급 호러물로 이력을 쌓아온 인물인데, 이 작품에서도 저예산 공포물의 엉성한 완성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아쉬운 결과물이네요.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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