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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전기영화입니다. 사실 유명인사를 모델로 만든 전기영화는 기존에도 있어왔고 접근성이 어려운 소재도 아니지만 만들기 쉬운 장르는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 흥미본위의 허구성을 가해야한다는 점은 정확성을 추구해야 할 전기물에 있어 일종의 딜레마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허구와 사실을 저울질하는 방법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예로 [소셜 네트워크]를 들 수 있는데, 아론 소킨의 각본을 데이빗 핀쳐가 연출한 이 작품은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허구적 입장에서 구축해 나갑니다. 이 작품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정확한 사실의 전달이라기 보다는 페이스북의 성공 이면에 놓인 군상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암투의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지요. [소셜 네트워크]가 재미있는건 마크 주커버그의 성공신화가 사실에 입각해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로서 지닌 드라마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철의 여인]처럼 방향성을 잡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를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세계 정치사에 큰 비중을 지닌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가 지닌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드라마는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고, 극적인 구성이나 결말 심지어 허구로 보이는 것들에게도 큰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직 이 영화는 명배우 메릴 스트립이 얼마나 실존인물에 근접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느냐에 의존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와서 [잡스]를 살펴봅시다. 제 개인이 평가하는 스티브 잡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는 '세상을 보다 재미있게 살도록 만든 사람'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애플 II로 즐겼던 '카라데카'나 '카멘 센디에고', '울티마' 같은 명작게임 -물론 이 게임들의 제작자는 따로 있습니다만- 들을 즐길 수 없었을 것이고, [토이 스토리]나 [업] 같은 애니메이션은 수년, 아니 수십년 후에야 나오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이폰같은 최첨단 스마트폰을 가질 수도 없었겠지요.

ⓒ Inferno Distribution. All rights reserved.

이렇게 세상을 재미있게 만든 사람인 만큼, 그의 일생에서도 분명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들이 많을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익히 알려진 사실만 해도 그는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습니다. 양부모 밑에서 성장해 히피에 심취했다가 동양철학에도 빠졌고, 워즈니악과 함께 개발한 애플 컴퓨터로 성공, 이후 맥킨토시의 실패와 워즈니악과의 결별, 애플에서 쫓겨나고 다시 재기하기까지 이야기할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지적이며 카리스마있는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실무적인 차원에서 잡스의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인 성격 역시 영화의 소재 쓰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무척이나 클리셰적인 전기영화로 안주하려 합니다. 이를테면 오프닝부터가 그렇습니다. 근래 사람들이 잡스를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인 '아이팟'을 발표 장면에서 플래시백으로 진행되는 구성은 여느 전기영화와 전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잡스라는 희대의 유니크한 인물을 다루면서도 영화자체가 지극히 평범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은 무척 아이러니하지요. 영화는 그저 잘난 사람의 성공담을 들려줄 뿐입니다.

저는 은근히 잡스의 긍정적인 부면보다는 내면 깊이 감춰진 어두운 부면과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개인적인 삶에 영화가 초점을 맞추어 주길 바랬습니다. 그랬다면 적어도 잡스가 이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새로운 해석도 가능했겠지요. 그러나 영화는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 그 이상에서 나아가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부면인 지나치게 미화시키려는 흔적도 보입니다. 그 때문에 워즈니악도 영화 [잡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고 하지요.

다시 말하지만 영화의 드라마가 좋다면 까짓 고증이나 허구성의 논란 따윈 접어둬도 좋습니다. 어디까지나 영화적인 차원에서는 성공한 픽션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잡스]에서는 그 허구성마저도 그리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영화에서 건질만한 것이라곤 애쉬튼 커처라는 배우가 단지 허우대만 멀쩡한 배우가 아니라 나름 메소드 연기도 할 줄 아는 '연기자'였음을 발견했다는 정도랄까요. 애당초 잡스라는 인물을 담아내기엔 [잡스]라는 영화의 그릇이 너무 작은 것일지도요.

P.S

1.시기적으로도 [잡스]는 너무 성급하게 만든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아직도 그의 업적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적어도 스티브 잡스가 지금보다 더 큰, 더 위대한 인물로 남기 위해서는 애플의 삽질이 앞으로 더 계속되어야 비로서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2.제가 잡스를 알게 된 때가 아마 초딩즈음이 아닌가 싶은데, 그 때 친구녀석 하나가 흥분된 목소리로 '좁스'라는 사람이 X2라 이름붙인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거라면서 흥분을 금치 못하더군요. 애플II나 MSX는 가볍게 누를만한 컴퓨터가 될 거라며... 그러나 결말은 폭망.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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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르사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잡스라는 사람이 과거를 들춰보면 참 복잡한 이면을 갖고 있고 넥스트스탭 사장일때 전환점등 우리에게 시사할 수 있는 요소가 많았는데 그걸 다 빼고 너무 한쪽만 본게 아닌가 싶어서 아쉬웠습니다.

    소니가 제작하는 그녀석이나 한번 기대해봐야겠습니다.

    2013.09.17 10:08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잡스란 인물이 상당한 괴짜이자 독특한 인물인데, 그냥 성질 불같은 천재 정도로 접근한 시도가 너무 맘에 안들어요. ㅠㅠ

      2013.09.17 10:35 신고
    • 나르사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 처음부터 버려졌다는데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의견
      - 넥스트스탭에서 고난을 겪고 성공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변화, 이를 기점으로 보이는 행동패턴(그 전이라면 주식팔고 임직원 설득하는 짓은 안했겠죠).
      - 그 이후 보이는 애플에서의 리더십과 카리스마

      ...를 이해하려면 인간의 치부를 확 긁어냈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나봅니다. 아이콘 정도는 심하지만 적어도 잡스 전기에 나온 만큼이라도....

      2013.09.17 11:58
  2. 케르베로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플의 창립자이면서도 중간에 임직원들에 의해 물러나야했던 독불장군적 고집,

    전 세계가 IBM의 호환성에 잠식되어 가는데도 끝까지 맥의 폐쇄성을 지켰던 고집,

    그게 어떻게 최근의 혁신성과 범용성으로 바뀌었는가를 다루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좋은 편이 못 됐던 게 사실이지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애정과 찬사로 마무리하는가, 냉철한 시각에서 면도날로 자르듯 하는가,

    역사가 뺨치는 고민이 없다면 아마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13.09.17 10:17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각본도 그렇지만 감독부터가 이런 인물을 다루기에는 역량이 조금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여튼 덜익은 사과 같은 영화였습니다.

      2013.09.17 10:36 신고
  3. RGM-7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잡비어천가가 되어버린 거군요.

    2013.09.17 11:21 신고
  4. peoun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가 나온다기에 조금 기대를 많이 했었습니다.
    애쉬튼 컬처가 맬로물이 아닌 진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이 기대감이 있었지요.
    하지만 컴퓨터 잡지에서 나오던 잡스의 모습 말고는 알려지지 않은 잡스의 모습이 나오지 않아 실망이 있네요.
    영화를 보면 뒷배경이 더욱 궁금하듯이 잡스의 생각이나 행동이 많이 궁금했었는데 말이지요.

    2013.09.17 13:18
  5. 넥스트 잡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니웨이님의 글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글을 읽다가 페니웨이님이 잡스를 처음 알게된게 초딩때라고 하니까 저도 기억이 나는데요. 저는 당시 <과학 동아>라는 잡지에서(아, 연식이 나오나요?) 스티브 잡스라는 사람이 넥스트라는 컴퓨터를 만들었다는 글을 읽고 처음알았네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나이에도 검은색을 좋아하던 저는, 넥스트라는 시커먼 컴퓨터가 꽤나 인상깊었나봅니다. 그리고 이름도 "잡스~(뭘 잡슈?)"라고 뭔가 특이해서 기억해버렸네요. 나중에 잡스가 이렇게 클줄은 몰랐어요 ㅋㅋ

    2013.09.17 16:15
  6. Yuntob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테마별 섹션에 전기영화 분류도 추가하는게 어떨까요

    철의여인, 잡스, 아마데우스, 에비에이터, 레이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참 많네요

    2013.09.17 16:59
  7. 볼쇼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지금 이 시대에 나올 영화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철저한 기획물이란 느낌의 영화였고, 보기 좋게 말아 잡쉈죠. 미국에서의 잡스와 애플의 이미지를 어떻게든 소모해 돈으로 바꾸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을 너무 바보취급하지 않았나 싶어요.

    2013.09.17 22:05
  8. 정체불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셜네트워크 같은 영화를 기대했었는데 너무 기대치를 높게 잡은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직 잡스의 발자취가 뚜렷하게 남은 시점이라 성급하게 나온 느낌도 강했구요.
    여러모로 아쉽더군요.

    2013.09.18 21:36
  9. JagdVogel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에야 있는 사실 그대로 찍어 내도 정보 부족 또는 부재인 대중은 즐겁게 봤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오, 마이 갑스! 오 마이 잣!

    2014.02.1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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