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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을 담기엔 부족한 그릇

페니웨이™ 2013. 9.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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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는 전기영화입니다. 사실 유명인사를 모델로 만든 전기영화는 기존에도 있어왔고 접근성이 어려운 소재도 아니지만 만들기 쉬운 장르는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사실에 대해 흥미본위의 허구성을 가해야한다는 점은 정확성을 추구해야 할 전기물에 있어 일종의 딜레마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허구와 사실을 저울질하는 방법이 성공의 관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예로 [소셜 네트워크]를 들 수 있는데, 아론 소킨의 각본을 데이빗 핀쳐가 연출한 이 작품은 페이스북의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의 이야기를 철저하게 허구적 입장에서 구축해 나갑니다. 이 작품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정확한 사실의 전달이라기 보다는 페이스북의 성공 이면에 놓인 군상들,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암투의 드라마를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지요. [소셜 네트워크]가 재미있는건 마크 주커버그의 성공신화가 사실에 입각해 그려졌기 때문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로서 지닌 드라마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철의 여인]처럼 방향성을 잡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의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를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세계 정치사에 큰 비중을 지닌 인물을 그리고 있지만 이 영화가 지닌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만듭니다. 드라마는 심각할 정도로 결여되어 있고, 극적인 구성이나 결말 심지어 허구로 보이는 것들에게도 큰 당위성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직 이 영화는 명배우 메릴 스트립이 얼마나 실존인물에 근접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느냐에 의존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자, 그럼 본론으로 들어와서 [잡스]를 살펴봅시다. 제 개인이 평가하는 스티브 잡스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는 '세상을 보다 재미있게 살도록 만든 사람'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애플 II로 즐겼던 '카라데카'나 '카멘 센디에고', '울티마' 같은 명작게임 -물론 이 게임들의 제작자는 따로 있습니다만- 들을 즐길 수 없었을 것이고, [토이 스토리]나 [업] 같은 애니메이션은 수년, 아니 수십년 후에야 나오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아이폰같은 최첨단 스마트폰을 가질 수도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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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상을 재미있게 만든 사람인 만큼, 그의 일생에서도 분명 재미를 느낄만한 요소들이 많을 있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익히 알려진 사실만 해도 그는 매우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습니다. 양부모 밑에서 성장해 히피에 심취했다가 동양철학에도 빠졌고, 워즈니악과 함께 개발한 애플 컴퓨터로 성공, 이후 맥킨토시의 실패와 워즈니악과의 결별, 애플에서 쫓겨나고 다시 재기하기까지 이야기할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지적이며 카리스마있는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실무적인 차원에서 잡스의 까탈스럽고 고집불통인 성격 역시 영화의 소재 쓰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무척이나 클리셰적인 전기영화로 안주하려 합니다. 이를테면 오프닝부터가 그렇습니다. 근래 사람들이 잡스를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인 '아이팟'을 발표 장면에서 플래시백으로 진행되는 구성은 여느 전기영화와 전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잡스라는 희대의 유니크한 인물을 다루면서도 영화자체가 지극히 평범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은 무척 아이러니하지요. 영화는 그저 잘난 사람의 성공담을 들려줄 뿐입니다.

저는 은근히 잡스의 긍정적인 부면보다는 내면 깊이 감춰진 어두운 부면과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개인적인 삶에 영화가 초점을 맞추어 주길 바랬습니다. 그랬다면 적어도 잡스가 이런 사람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새로운 해석도 가능했겠지요. 그러나 영화는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 그 이상에서 나아가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부면인 지나치게 미화시키려는 흔적도 보입니다. 그 때문에 워즈니악도 영화 [잡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했다고 하지요.

다시 말하지만 영화의 드라마가 좋다면 까짓 고증이나 허구성의 논란 따윈 접어둬도 좋습니다. 어디까지나 영화적인 차원에서는 성공한 픽션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잡스]에서는 그 허구성마저도 그리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그나마 영화에서 건질만한 것이라곤 애쉬튼 커처라는 배우가 단지 허우대만 멀쩡한 배우가 아니라 나름 메소드 연기도 할 줄 아는 '연기자'였음을 발견했다는 정도랄까요. 애당초 잡스라는 인물을 담아내기엔 [잡스]라는 영화의 그릇이 너무 작은 것일지도요.

P.S

1.시기적으로도 [잡스]는 너무 성급하게 만든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아직도 그의 업적은 현재 진행중입니다. 적어도 스티브 잡스가 지금보다 더 큰, 더 위대한 인물로 남기 위해서는 애플의 삽질이 앞으로 더 계속되어야 비로서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2.제가 잡스를 알게 된 때가 아마 초딩즈음이 아닌가 싶은데, 그 때 친구녀석 하나가 흥분된 목소리로 '좁스'라는 사람이 X2라 이름붙인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거라면서 흥분을 금치 못하더군요. 애플II나 MSX는 가볍게 누를만한 컴퓨터가 될 거라며... 그러나 결말은 폭망.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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