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극의 묘미는 모름지기 명탐정의 등장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한 명탐정은 있기 마련인데, 이번 주말에는 각 나라의 대표적인 명탐정이 등장하는 영화를 감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오랜만에 국내에 개봉되는 서극 감독의 작품. 중국 역사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의 즉위를 앞두고 인체발화를 이용한 의문의 연속살인사건을 수사하는 적인걸의 활약을 그린 미스테리 무협 판타지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적인걸은 실존 인물로 당나라 시대의 재상을 지난 정치인이지만 재상의 직위에 오르기 전 사법기관에서 관리인으로 재직하며 뛰어난 판결능력을 통해 명성을 쌓은 인물. 특히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그의 추리력은 17000건이 넘는 판결에서 단 한번의 오심을 남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미스테리적인 발상은 칭찬할만 하지만 어설픈 CG와 중국영화 특유의 과장법이 다소 아쉽다. 반면 이야기와 액션을 잘 버무리는 서극의 솜씨는 아직 쓸 만한 편. 그러나 끝끝내 중화사상을 부르짖는 영화의 모티브는 보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프랑스 최초의 경시청을 창립한 실존인물 비독을 내세운 미스테리 액션물. 비독은 훗날 괴도 뤼팽의 모티브가 될 만큼 당시 프랑스 사회에 이슈를 몰고 온 범죄자였다. 비록 각종 범죄를 일으킨 범인이기도 했지만 그의 뛰어난 재주를 높이 산 프랑스 당국에서는 그에게 수사권을 맡기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영화 [비독]은 파리를 공포에 몰아넣은 정체불명의 살인마, 거울가면과 이를 뒤쫓는 비독과의 대결을 현대적 비주얼로 그려낸 작품으로서 특수효과 감독 출신인 피토프가 메가폰을 잡아 영상미에 있어서는 괜찮은 편이지만 전체적인 구성이 허술해 좋은 소재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명배우 제라드 드 파르디유가 명탐정 비독 역을 맡았다.
가이 리치 감독이 선보이는 21세기형 셜록 홈즈의 재해석. [아이언맨]으로 인기 정상을 달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 홈즈로, 주드 로가 왓슨으로 등장해 액션 버디물로서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 속 유명한 캐릭터 셜록 홈즈는 박학다식하고 사소한 단서로부터 전체 윤곽을 읽어내는 탁월한 추리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코카인과 약물 주사 및 지독한 흡연습관을 가진 천재형 괴짜로 묘사되는데, 가이 리치 버전의 [셜록 홈즈]는 이렇게 기존 영화에서 외면했던 원작 속 홈즈의 특징을 보다 강조한 작품으로 사형집행을 당한 범죄자 블랙우드 경이 부활해 저지르는 연속 살인극의 미스테리를 파헤친다.
본격 미스테리 장르는 아니지만 [영원한 제국]은 정조 독살설을 모티브로 만든 미스테리 풍의 사극이다. '금등지사'를 둘러싼 조정내의 살인사건과 이를 수사하는 정약용과 이인몽의 이야기가 주된 플롯으로서 특히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정약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으로 암행어사를 지낸 바 있는 그는 평소 실용주의적 학문에 몰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소 꽉 막힌 조선시대에 이런 학자가 존재했다는 것은 의외인데, 이 때문에 정약용은 '정약용 살인사건', '원행'과 같은 추리 문학 속에서나 이를 영상화한 [정조암살미스터리-8일], [조선추리활극 정약용] 같은 TV 시리즈에서 조선시대의 명탐정으로 묘사되곤 한다. 현재 2011년 개봉예정인 [조선명탐정 정약용]에서는 김명민이 일찌감치 캐스팅되어 크랭크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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