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난 제품에 군침흘릴 소비자는 없듯이 예술영화도 아닌 상업영화를 개봉한지 3년이 지난 이제서야 보겠다고 안달할 관객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몇몇 낯익은 헐리우드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소리소문없이 개봉하는 [스톰브레이커]도 마찬가지다. 해외에서는 2006년에 개봉해 별 화젯거리도 되지 못한 작품이 이제와서 개봉하는 저의를 알 수는 없지만 혹시나 배우들의 유명세에 혹해서 관람을 결정하는 우를 범하는 관객이 없기를 당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스톰브레이커]는 영국 TV대본작가로 경력을 쌓아온 안소니 호로위츠의 첩보물 '알렉스 라이더'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에 기반을 둔 작품으로 일반 첩보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첩보원인 알렉스가 '소년'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소년 첩보원을 주인공을 한 작품이 처음은 아니다. [스파이 키드] 3부작이나 [에이전트 코디 뱅크스] 같은 일련의 헐리우드 영화들은 모두 청소년 첩보원을 전면에 내세웠던 오락영화다. 이같은 주제설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지는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바 차라리 이 땅의 어린이들이 보고 자랐던 애니메이션 '소년 007'쪽이 장르적 특화에 있어선 훨씬 성공한 케이스이었음을 이제서야 인정하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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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스톰브레이커]는 유치함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진부하기 짝이없는 오락영화다. 500:1의 경쟁률을 뚫고 알렉스 라이더에 낙점된 신예 알렉스 페피터만으로는 미덥잖았는지 제작진은 이완 맥그리거나 미키 루크, 빌 나히, 알리시아 실버스톤 같은 스타들을 대거 포진시켰으나 이들의 존재감이 영화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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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맥그리거는 애초부터 까메오로 발탁된 것인지 영화 초반에 사라져 버리며 [파이널 디시젼]에서 스티븐 시걸이 공중낙하해 버리는 것 이래 최고의 허탈감을 안긴다. [레슬러]로 재기에 성공하기 이전의 미키 루크는 느물거리는 전형적인 악당을 연기하지만 눈가에 칠한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은 [놈놈놈]의 이병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고, '배트걸' 알리시아 실버스톤은 실로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 같은데, 팍삭 늙은걸 보니 그동안 참 고생 많이 했구나 하는 동정심만 유발할 따름이다. 그 외 썰렁한 유머로 관객을 낚으려하는 빌 나히와 앤디 서키스 외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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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톰브레이커]는 가족용 영화로도 그렇다고 색다른 성인용 액션영화로도 부적합하다. 영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죽은 삼촌에 대한 조카의 복수였다면 영화가 보다 비장해졌어야 했고, 가벼운 오락영화로 만들거였으면 철저히 아이들에 눈높에에 맞췄어야 했다. 북미에서 PG등급을 받은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성년자에 의한 폭력이 관대하게 표현되는 것부터가 이 영화의 패착이다. 무술감독을 맡은 견자단의 홍콩식 액션이 반영된 전반부의 일당 백 시퀀스는 꽤나 쓸 만하지만 서양 꼬맹이의 견자단식 액션이라니, 부조화도 이런 부조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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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딴에는 007이나 [해리 포터]처럼 장수 프렌차이즈로 가길 바랬던 듯, 마지막에 가서는 속편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400만 달러의 제작비 중 절반밖에 회수하지 못하는 덕분에 관객들은 1편으로 끝나는 이 시리즈의 종말로 인해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결론. 이런 영화야말로 DVD직행으로 족하다.
* [스톰브레이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Samuelson Productions/The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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