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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보그 그녀 - 엽기적인 그녀의 잔재는 여전하다

페니웨이™ 2009. 5. 1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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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는 분명 대성공이었다. PC통신소설을 훌륭히 영상으로 옮겨낸 이 작품은 전지현, 차태현 두 스타의 이미지를 200% 활용해 원작의 캐릭터를 재가공하는데 성공했으며, 이후 한국영화계의 로맨틱 코믹물에 한 방향을 제시했다. 심지어 헐리우드와 일본에서도 [엽기적인 그녀]의 상품성을 인정해 리메이크를 시도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성공은 큰 부작용을 낳았다. 우선 주연배우인 전지현부터도 엽기녀의 이미지를 벗을 수 없었으며,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로 곽재용 감독의 작품속에 항상 [엽기적인 그녀]의 잔재가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아예 제껴두고라도, [클래식]에서조차 [엽기적인 그녀]에 언급된 '소나기'의 교묘한 리버전이 자리잡고 있음을 느끼는 건 결코 필자만의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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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씨네. All Rights Reserved.

엄청난 성공 이후 감독과 주연배우에게 만만찮은 부작용을 안겨주었던 [엽기적인 그녀]



결국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로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곽재용 감독은 애초에 구상했던 '그녀 3부작' (혹은 여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에 방점을 찍지 못한채 [무림 여대생]을 제작하지만, 개봉 연기라는 참담한 굴욕에 직면한다. 더 이상 한국에서 '엽기녀'의 재탕으로 승부할 수 없음을 깨달은 곽 감독은 일본으로 진출해 [엽기적인 그녀]의 또다른 변주를 시도한다. 그 작품이 바로 [싸이보그 그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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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씨네 外. All Rights Reserved.

곽재용식 트릴로지, 그녀 3부작의 완성.



[싸이보그 그녀]는 [엽기적인 그녀]의 기본적인 틀, 순하디 순한 한 남자와 예측불허의 괴팍한 행동을 일삼는 쭉쭉빵빵 늘씬한 절세미녀의 만남, 그리고 그 커플이 겪는 상식밖의 에피소드들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가졌다. 여기에 곽 감독은 시간여행과 사이보그라는 SF적 요소와 더불어 재난영화의 스펙터클로 대미를 장식한다. 최근 인기가두를 달리고 있는 아야세 하루카의 스타 파워도 일본에서의 흥행을 염두해 둔 비장의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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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use Soft Entertainment/Dentsu/TBS/Suplex. All rights reserved.


마치 [터미네이터]를 연상시키듯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는 타임 패러독스의 설정과 로맨틱 코미디의 만남은 색다른 시도이자, 좋은 판단이다. 문제는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 어떤 감독이든지 자신만의 연출 스타일과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는 법이지만 이 경우에 있어 문제는 장점이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정체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도 [싸이보그 그녀]는 8년전 [엽기적인 그녀]에서 단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았다.

영화는 데자뷰를 보듯 어디선가 본듯한 [엽기적인 그녀]의 자기복제를 마음껏 시도하다가 점점 더 많은 허점들을 드러낸다. 또한 로맨틱 코미디에서 SF로 그리고 재난영화에서 다시 SF로 전환되는 연결점이 매끄럽지 못하고 가뜩이나 부족한 영화의 설득력을 한층 더 황당한 방향으로 나가게 한다. 더 나아가 스펙터클한 분위기의 연출을 위해 끼워놓은 몇몇 장면들 조차 무척 싼티나는 CG들로 도배되어 있다는 것도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80억짜리 블록버스터라고 벌써부터 호들갑떠는 홍보전략은 이제 바꿀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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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use Soft Entertainment/Dentsu/TBS/Suplex. All rights reserved.


다행인 것은 '싸이보그 판 전지현'이라 할 정도로 유사한 '엽기녀' 캐릭터를 소화해낸 아야세 하루카의 연기가 제법 쓸 만하다는 것과 역시나 차태현과 오버랩되는 코이데 케이스케와의 앙상블이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아마도 일본내의 [싸이보그 그녀]가 그럭저럭의 흥행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두 배우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컸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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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use Soft Entertainment/Dentsu/TBS/Suplex. All rights reserved.


반복되는 얘기이지만 [엽기적인 그녀]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때 [싸이보그 그녀]는 연인들을 위한 팝콘무비로서의 재미는 보장한다. 솔직히 말해 [싸이보그 그녀]가 [엽기적인 그녀] 이전, 아니 적어도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보다 먼저 공개되었더라면 이 영화에 대한 시각은 꽤나 우호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싸이보그 그녀]를 곱게 볼 수 없는 이유는 헤어날 생각이 없는 곽재용 감독의 메너리즘 때문이지,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크게 떨어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곽재용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엽기적인 그녀]에서 크게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작품의 태생적 한계를 자신이 의도한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만족스럽게 여기는 발언을 한것으로보아 앞으로도 당분간은 [엽기적인 그녀]의 잔재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는 듯 하다.

P.S : 클라이막스 이후 이어지는 15분 이상의 사족이 인간적으로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지, 국내 개봉판은 오리지널 일본판의 결말을 통채로 들어내 서두에다 끼워 맞추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이로서 타임 패러독스의 잔재미와 인트로에 등장했던 '그녀'의 정체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송두리채 날아가 버렸다. 어떤 것이 더 나은지는 양쪽 버전을 둘 다 감상한 관객만이 판단할 수 있겠지만 국내 버전의 허전한 결말에 대한 원인은 이 때문임을 알아두길 바란다.

서비스로 시사회 무대인사에서의 아야세 하루카 한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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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nnyway.net All rights reserved. Ayase Photo by Guru™



* [싸이보그 그녀]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Amuse Soft Entertainment/Dentsu/TBS/Suplex. All rights reserve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엽기적인 그녀 (ⓒ 신씨네. All Rights Reserved.),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아이필름/Edko Films Production.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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