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장르 편식이 심한 필자에게 있어 [솔로이스트]는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영화다. 음악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기도 하지만, [어톤먼트]의 조 라이트 감독, 그리고 로버트 다우니 Jr.와 제이미 폭스의 조합이라니! 이보다 더 군침이 도는 재료가 또 어딨겠나. 지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래 정식 개봉일 기다리기를 수개월. 마침내 2009년의 끝자락에 와서야 정식으로 개봉했으니 그 오랜 기간 참아오기가 여간 힘들었던게 아니다.
[솔로이스트]는 얼핏보면 한 천재적 음악가의 좌절과 재기를 그린 전형적인 이야기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좋았다. 데이빗 헬프갓의 실화를 다룬 [샤인]을 몇 번이나 다시 보아도 감동이 사그러들지 않듯이, 좋은 이야기와 음악이 함께라면 그 어떤 진부함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예상은 약간 빗나간 듯 하다.
ⓒ Universal Pictures/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이혼한 전처와 한직장에 다니며 그저 먹고 살기위해 기자일을 하고 있는 로페즈(로버트 다우니 Jr. 분)는 어느날 두줄만 남은 망가진 바이올린으로 놀랄 만한 연주를 하고 있는 노숙자 나다니엘(제이미 폭스 분)을 만난다. 자신이 줄리아드 음대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이 노숙자의 인생에 관심이 생긴 주인공은 실제로 나다니엘이 줄리아드에 입학한 사실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를 밀착 취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렇게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은 '음악'이지만 기실 [솔로이스트]에 중심에 서있는 건 음악이 아니다. 오히려 [솔로이스트]는 인간과 인간의 만남, 친구라는 이름으로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소통의 단계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의 멋드러지는 연주 장면이라도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던 관객이라면 십중팔구 실망할 확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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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는 뻔한 인간승리 드라마의 공식보다도 더 맥빠지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노숙자가 된 첼리스트라는 흥미로운 캐릭터 설정에도 불구하고 나다니엘(이 역할을 맡은 제이미 폭스는 이미 [레이]를 통해 훌륭한 뮤지션 연기를 해냈지 않았던가!)이 음악가로서의 본색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관객들은 이 기구한 팔자의 첼리스트가 로페즈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다시금 콘서트 홀의 무대를 독차지하는 감동적인 역전극을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그러한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나치게 절제된 듯한 시각의 이 작품에서 음악적 심상(心象)인 '격정'과 '카타르시스'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평면적 구성을 가진 [솔로이스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음악을 통해 교감을 나누는 두 남자의 얘기가 아니라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솔로이스트]는 음악영화로 분류하기가 꺼려지는 영화다. 오히려 이 작품은 상처받은 어른들의 성장 드라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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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화가 주는 재미를 떠나 주연배우인 로버트 다우니 Jr.와 제이미 폭스의 연기는 두말할 나위없이 훌륭하고, 영화의 소재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조 라이트의 섬세한 연출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미국의 심각한 노숙자 문제에 주력하거나, 한순간의 문제로 도태되어 사회적 잉여구성원이 되는 음악인들의 비애를 다루거나 혹은 구독율 때문에 직장이 왔다갔다하는 언론인의 하루살이같은 인생을 그렸어도 좋으련만 영화는 하필 가장 안좋은 방향으로 이도저도 아닌 흐름에 몸을 내 맡긴채 방치되고 말았다.
그나마 [솔로이스트]가 내게 준 위안이라곤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명 지휘자 에사 P. 살로넨이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리허설 장면 뿐이다.
P.S:개봉관도 몇 개 잡지 않은 이 작품을 이제서야 개봉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곧 개봉을 앞둔 제이미 폭스 주연의 [모범시민] 때문이거나 아님 로버트 다우니 Jr.의 신작 [셜록 홈즈]를 위한 것이거나.
* [솔로이스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Universal Pictures/DreamWorks SKG.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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