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2000년 아직 신인에 불과한 류승완 감독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한 35분짜리 단편영화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속편이다. 전편인 [다찌마와 Lee]는 주연급 배우로서는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임원희를 캐스팅해 6,70년대 한국 협객영화의 스타일을 과장되게 표현해 제법 화제를 모은 작품으로서 비상업영화지만 입소문을 타고 상당히 많은 팬들을 확보했다.
이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주목받은바 있으나, [다찌마와 Lee]는 류승완 감독이 차기작 [피도 눈물도 없이]라는 메이저 영화로 성큼 올라설 수 있는 결정적인 교두보 역할을 했다. 비록 초저예산으로 촬영된 단편 독립영화였지만 작품성과 재미는 여느 상업영화와 비교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완성도를 갖췄던 것이다.
[다찌마와 Lee]의 특징은 '의도된 엉성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백푸로 후시녹음'이라는 카피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작품은 6,70년대 한국 고전영화의 '쌈마이 정서'를 영화속에 담아내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된 연출방법을 보여준다. 닭살돋는 대사의 내용과 더불어 억양까지 패러디하는 [다찌마와 Lee]는 '권선징악'의 노골적인 기승전결 형태를 채용함과 동시에 충녀, 화녀 등 한국 고전영화에서 따온 이름을 사용하는 등 과거로의 회귀를 표방하고 있다.
ⓒ 수다(주),류승완 All rights reserved.
내용은 무척 단순하다. 서울로 상경한 두 여인을 희롱하는 '상하이 박' 패거리 앞에 다찌마와 리가 나타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열혈청년에 의해 불량배들은 하나 둘 나가떨어지고, 이제 복수를 위해 그들의 보스인 동방의 무적자가 다찌마와 리와 한판승부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러닝타임 30분에 꼭 맞는 아주 상큼 심플한 줄거리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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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싼티 풀풀나는 연출 방식에서 오는 재미는 기대 이상이다. 오히려 촌스럽다고 생각되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명대사로 와 닿는 기현상을 낳는다. 디지털 세대에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작품이 그토록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 당시 하나의 트랜드로 형성되고 있던 '엽기코드'의 정서와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과거로의 회귀라는 발상 자체가 오늘날 충무로의 관습을 깨는 사뭇 파격적인 시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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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씨네마 키드'형 감독인 류승완의 연출방식은 헐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와도 여러모로 유사하다. 최근 타란티노가 3류 영화관의 정서를 모방하기 위해 발표한 '그라인드 하우스' 프로젝트나 홍콩 무협영화에 대한 오마쥬인 [킬빌] 등의 작품들은 모두가 과거 B급 영역에 머물렀던 영화들의 관습들을 패러디한 것으로서 류승완 감독의 의도와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놀랄만큼 촌스럽고 헛점투성이인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임원희는 과거 한국영화의 마초 연기자들을 집약시켜놓은 듯한 표정연기를 기막힐 정도로 잘 소화시킴으로서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게 되었다. 항간의 화제가 된 '터프한척 빵뜯어 먹기' 라던가 '음화화화~' 과장된 웃음으로 일관하는 그의 연기력은 다른 배우들이 범접하지 못할 고유의 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그 이후에 그 캐릭터를 써먹을 일이 별로 없어서 안타까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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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극장용 장편으로 업그레이드 된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모르겠으나, 의외로 사람들의 관심은 뜨겁다. 그만큼 임원희의 캐릭터는 '다찌마와 리'라는 인물에 잘 녹아있으며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다찌마와 Lee]의 인기가 한때의 트랜드에 무임승차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음을 재확인 하고자 할 것이다.
* [다찌마와 Lee]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수다(주),류승완.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2008/08/01 [특집] 다찌마와 리의 주인공, 임원희와의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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