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바이오맨 - 한국 SF액션물의 컬트 혹은 괴작?

페니웨이™ 2008. 2. 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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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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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도 김청기 감독의 작품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번에는 [로보트 태권브이 90]리뷰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얘기, 김청기 감독을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게 만들었던 그 이유에 대해 얘기할 것입니다. 언젠가도 설명했지만 김청기 감독의 제작 스타일은 전작에서 흥행을 거두면 차기작에 전작의 수익금 전부를 올인해서 제작비를 충당하는 방식의 외줄타기를 해 왔습니다.

물론 지구상의 그 어떤 명감독도 동방불패가 아닌 다음에야 늘상 히트작만 낸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나 김청기 감독의 이런 제작 스타일에 있어서는 당연히 한번의 실패가 차기작의 제작에 막대한 타격을 주게되는건 안봐도 DVD인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자금난에 허덕이던 김 감독은 완구사의 협찬 형식으로 울며 겨자먹기로 표절 디자인을 채용한 괴작들을 줄줄이 생산하기에 이릅니다. 그 때 나온 작품들이 [슈퍼 태권브이]를 비롯, [스페이스 간담브이]나 [84 태권브이]같은 작품들입니다.

이렇게 실패와 성공을 드라마틱하게 반복하던 김청기 감독은 [태권브이]의 스핀오프이자 초절정의 괴작, [로보트 군단과 메카3]를 찍고난 후 '사골 태권브이'의 울궈먹기와 셀 애니메이션의 수익성에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손을 댄 작품이 1986년 작 [외계에서 온 우뢰매]였는데요,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한 장르부터가 괴작스런 이 작품은 뜻밖에도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이같은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당시 바보연기로 인기를 모으던 개그맨, 심형래의 출연과 데일리 역을 맡은 천은경씨의 므흣한 에어로빅 코스튬이 당시 초딩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게 원인이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만...

ⓒ 김청기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이런 합성 애니메이션은 제작비 절감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당시 기준으로 애니메이션 셀작업은 밤샘작업이 뒤따르는 완전 노가다나 다름 없었지요) 물론 김청기 감독 본인은 합성 애니메이션과 제작비 절감의 상관관계에 대한 사실을 전면 부인한 바 있습니다. [우뢰매]에서의 시도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제작방식의 시도였을 뿐 제작비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열변을 토하셨지요. 따라서 이 문제는 여기서 논할 사항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뭏든 이렇게 합성 애니메이션으로 짭잘한 재미를 본 김청기 감독은 연달아 [우뢰매] 시리즈를 제작하게 되고 (실제로 [우뢰매2]에 가서는 로봇 조차도 애니메이션 동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프라모델로 실사촬영을 감행하는 '귀차니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ㅡㅡ;;) , 뒤이어 [우뢰매]의 '드림팀'을 이끌고 [슈퍼 홍길동]이라는 또하나의 시리즈물을 성공시킵니다. 더군다나 [우뢰매]의 성공에 힙입은 김청기 감독은 '월간 우뢰매'라는, 말하자면 한국판 '뉴타입'같은 최초의 애니메이션 월간지도 발행하게 됩니다.

ⓒ 월간 우뢰매/ 김청기 All rights reserved.


[로보트 태권브이]이래 실로 오래간만에 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김감독은 1986년에서 1988년까지 2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우뢰매 1~5], [슈퍼홍길동 1,2]등 무려 7편에 달하는 작품을 내놓는 엄청난 괴력을 자랑합니다. 이 정도로 다작활동을 했으니, 그 완성도는 오죽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그 당시의 순진무구했던 우리 어린이들은 좋아라 하고 무지개 극장을 찾아갔습니다.

한편 이렇게 짧은 기간에 다작활동으로 어느정도 실사연출에 자신감이 생긴 김청기 감독은 드디어 자신의 주 무대가 애니메이션 시장에 한정되는 것은 재능의 낭비라고 판단, 활동무대를 본격적인 영화판으로 옮기려는 대야망을 품게 됩니다. (물론 이유가 이것만은 아니고, 불가항력적인 부면도 있었습니다. 뒤에 설명하지요)

어느날 김청기 감독은 당시 청춘스타로 막 떠오르던 '어떤 배우'를 만나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그 때 김감독은 다음과 같은 간단명료한 말로 그 배우를 설득시킵니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우리도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 한번 만들어 봅시다!"


이 전설적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김청기 감독의 거부하기 힘든 요청은 그 배우로 하여금 계약서에 사인하게 만들게 되는데, 그 배우의 이름은 바로... '박.중.훈.'이었습니다. 네, 이제 막 청춘스타의 반열에 오른 박중훈은 김청기 감독과 손잡고 한국에서는 거의 시도되지 않았던 본격 SF영화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바이오맨]이 바로 그 영화입니다. ㅠㅠ (일본의 전대물인 [초전자 바이오맨]이 아닙니다)

1988.10.25. 경향신문의 기사. '국내 첫 SF영화'라고 호들갑을 떨긴 했지만 1967년작 [우주괴인 왕마귀]를 비롯해 국내에서 제작된 SF영화의 효시는 훨씬 전의 일이다.


자, 여기까지 오기위해 서론이 참 길었습니다. 바로 이 [바이오맨]이야 말로 김청기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는 아주 중요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우선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재벌 기업의 총수인 장만준(윤일봉 분)의 장남인 장영일(남성훈 분)은 자그마치 "8메가 D-RAM"이라는 초대용량의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지만 극악무도한 악당인 반지(현길수 분) 일당에게 반도체 설계도를 도난당하고 맙니다.  이에 언냐들을 옆에 끼고 술이나 퍼마시면서 전형적인 양아의 삶을 살던 영일의 동생 장도일(박중훈 분)이 난데없이 '우리 제벌 아부지 알라뷰~' 하면서 설계도를 찾아오겠답시고 홍콩으로 날아갑니다 ㅡㅡ;;

홍콩에 도착한 장도일은 므흣미인 수지(신미아 분)을 만나서 그녀의 협력으로 설계도를 되찾을 뻔하나, 그만 악당들의 총탄에 쓰러지고 맙니다. 수지는 나쁜 아저씨들에 의해 나쁜짓(?)을 당하고 나쁜곳(?)으로 팔려가지요. ㅡㅡ;; 그리고는 느닷없이 나타난 자칭 월남전 참전용사 콧수염 아저씨가 나타나 장영일에게 동생의 자초지정을 알리고 죽기직전의 도일을 회생시킬 준비를 시킵니다. 이렇게해서 도일은 자기 형의 손에 의해 최첨단 과학기술의 총아, '바이오맨'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이제 사이보그의 몸으로 재탄생한 우리의 자랑스런 양아, 아니 건아인 도일은 인터폴 형사인 석도와 연합전선을 구축해 도일 일당을 추적합니다. 과연 무적의 바이오맨은 악당 반지 일당에게 자신을 죽인 복수를 함과 동시에 수지를 구해내고, 잃어 버린 설계도를 찾을 수 있을까요?

이 유치뽕빨 날리는 [바이오맨]의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당시로선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준 블록버스터급 영화였습니다. 태국 올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할 정도로 해외 로케에 많은 자본을 투자한 작품이 그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으니까요. 게다가 제대로 된 영화배우인 박중훈을 비롯, 고 남성훈씨 같은 정극 배우를 캐스팅한 것을 보면 김청기 감독이 [바이오맨]에 얼마나 의욕적이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그럼에도 [바이오맨]은 당시 서울관객 2445명의 엄청난 흥행 대참패를 하고 맙니다. 덕분에 김청기 감독은 [우뢰매]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몽땅 날리게 되었고, [로보트 태권브이 90]를 만들었다가 카운터 펀치를 맞고 그대로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사실 어떤 분은 그냥 [우뢰매]로 벌어들인 돈 잘 투자해서 좀 편히 살지 왜 안해도 될 짓을 해서 제 무덤을 파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계신데요, 사실 그때 당시의 상황이 꽤 복잡했습니다. 한국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거의 고사단계였고, 그나마 아이디어를 짜낸 [우뢰매]같은 실사합성 애니메이션들은 김형곤 주연의 [외계 우뢰용]이나 '뽀식이' 이용식과 '순돌이' 이건주 콤비의 [은하에서 온 별똥왕자] 같은 짝퉁영화들의 범람 때문에 그 위치를 지키기가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애니메이션이 삶의 전부였던 김청기 감독에게는 무엇인가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입니다.

[우뢰매]의 아류작들


그러나 [바이오맨]은 그 컨셉이 너무나도 모호하게 잡힌 괴작이었는데요, '연소자 관람가'의 등급판정을 받고 개봉된 이 영화는 그 대상부터가 어린이가 아닌 성인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줄거리에도 알 수 있듯이 정도는 심하지 않을지라도 어린이가 보아서는 좀 곤란한 설정들이 꽤 있음을 눈치채셨을텐데요, 문제는 [바이오맨]이 이렇게 성인취향의 작품이었음에도 [무지개 극장]을 비롯한 어린이용 소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겁니다.

덕분에 이 작품은 본의 아니게 어린이용 영화처럼 치부되어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 이상한 영화를 바라보는 어린이들의 입장에서 [바이오맨]은 결코 재밌는 영화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인들의 취향에는 맞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현재까지도) SF영화의 불모지인 한국영화계에 있어서 [바이오맨]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저 [우뢰매]의 감독이 만든 주제넘은 괴작에 지나지 않았던 겁니다.

ⓒ 서울동화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결국 이렇게 흥행참패와 더불어 김청기 감독을 몰락시킨 [바이오맨]에 대해서는 참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어떤이는 이 작품을 박중훈식 코미디의 시발점이라고 추켜세우는가 하면 어떤이는 컬트영화의 반열에 넣어야 할 작품이라고 하질 않나, 액션영화, 아동물 등등 정말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작품도 매우 드물지 않나 싶군요.

하지만 [바이오맨]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의미로는) 관객들을 웃음짓게 만드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지금에서야 코믹한 스타일로 각인된 박중훈이지만 [바이오맨]에서 만큼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주둥이를 철사로 감싼) 악어와 부둥켜 안고 씨름하는 장면이나, 공포탄 담긴 M60을 공중에 몇 번 갈기니까 태국인 엑스트라가 우수수 쓰러지는 등의 연출씬들은 지금봐도 여전히 눈물겨운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하.하.하..

ⓒ 서울동화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사실 [바이오맨]이 한국판 '터미네이터'를 꿈꾸었다고는 하나, 사실상 대부분의 컨셉은 실베스터 스텔론의 [람보2]에서 가져왔다고 봄이 바람직합니다. 난닝구 패션이나, 동남아의 정글지대와 늪지대에서 기관총을 한손으로 들고 갈겨대는 씨퀀스는 [람보]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상징적인 컨셉이니까요. 뭐 다른점이 있다고 하면, '람보'는 근육질로 뭉쳐진 인간병기이지만, '바이오맨'은 밋밋한 살덩어리의 마초적 사이보그라는 거랄까요 ^^;;

여담이지만 한 잡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박중훈씨는 이런말을 했답니다. "당시에 어린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동경의 눈빛을 보내노라면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더라"고요. 그만큼 박중훈씨 자신에게 있어서도 [바이오맨]은 지우고 싶은 흑역사인가 봅니다. ^^;;



* [바이오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서울동화프로덕션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외계에서 온 우뢰매(ⓒ 김청기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월간 우뢰매(ⓒ 월간 우뢰매/ 김청기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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