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로보트 태권브이 90 - 태권브이의 족보를 말소시킬뻔 한 문제작

페니웨이™ 2008. 2. 1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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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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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로보트 태권브이]가 다시 화제입니다. 얼마전 [세븐 데이즈]의 원신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총 제작비 200억원을 들어갈 실사판 [로보트 태권브이]의 제작 발표회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로보트 태권브이]와 관련된 사업에 이러저러한 루머도 많았고, TV시리즈와 새로운 극장판의 제작등 온갖 소문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제로 실현된 사업은 [로보트 태권브이]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재개봉 외에 뚜렷한 진척이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사실은 팬들에게 있어서 매우 뜻깊은 소식임에 틀림없습니다.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더욱이 [로보트 태권브이] 실사판에는 6개의 특수효과 전문업체(매크로그래프, 모팩, 인티펜던스, 인사이트비쥬얼, 디티아이, 이오엔)가 참여해 약 60억원이 CG기술에 투입될 예정이라 하니, 정말 [트랜스포머]를 능가할 만한 한국산 실사 로봇영화가 탄생할것인지 각 영화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에 제작사는 벌써부터 태권브이의 데모영상을 공개해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지요.

그러나 [로보트 태권브이] 실사판에게 핑크빛 전망만 놓여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태권브이]의 개봉 예정시기인 2009년에는 이름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는 [트랜스포머2]가 개봉을 앞두고 있고, 만약 제작이 지연되어 2010년에 개봉된다 해도 [볼트론]과 [마크로스] 실사판이 버티고 있어서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미 '[태권브이]라는 이름의 괴작 실사물'을 한번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트라우마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은게 사실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이런 이런... 제가 이미 지지난 시간부터 괴작열전 시간에 로봇을 실사화한 영화들을 소개하겠다고 했었는데요, 일본의 1988년작 [건헤드]에 이어 미국의 1991년작 [로봇 족스]가 제작되던 시기에 한국에서도 이런 비스무리한 움직임이 있었다 이겁니다. 바로 1990년작 [로보트 태권브이 90]가 그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최후의 [태권브이]시리즈이자, 김청기 감독님을 거의 '재기불능'상태에 빠뜨린 괴작중의 괴작으로서 실사판 [태권브이]를 기대하기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84 태권브이]이후, 김청기 감독은 [외계에서 온 우뢰매]로 새로운 시리즈물을 이끌고 있었습니다만, 이것으로 [태권브이] 작품에 대한 미련을 아주 버린것은 아니었습니다.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그 증거로 1988년에 창간된 '월간 우뢰매'에서는 [만화로 미리 보는 김청기 감독의 만화영화: 똘이와 태권브이]라는 연재물을 공개했습니다. 이 작품은 [똘이장군],[공룡백만년 똘이] 등 김청기 감독의 실질적인 페르소나였던 '똘이'라는 캐릭터와 '로보트 태권브이'를 '크로스 오버'시킨 작품으로서, 향후 김청기 감독의 차기 태권브이 프로젝트가 될 것임이 분명한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실현되었다면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이후 또 한편의 태권브이 '크로스 오버'가 탄생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 테지요.

발췌: 월간 우뢰매 1988년 10월호.


그러나 "어떤 이유"로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청기 감독은 그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했으며, 그 결과 [똘이와 태권브이]는 영영 애니메이션화 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초대 에스퍼맨 심형래를 안정호로 교체하며 절치부심의 자세로 만든 [제3세대 우뢰매 6]까지 흥행에서 실패하자 마침내 비장의 카드인 태권브이를 꺼내가 되는데, 이렇게 힘든 여건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로보트 태권브이 90]인 것이지요.

[태권브이 90]의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1976년작 오리지널 [로보트 태권브이]와 90%이상 동일합니다. 즉,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카프 박사가 각국의 격투가 챔피언들을 납치해 자신의 로봇에 탑승시켜 태권브이와 겨루게 한다는 내용이지요. 달라진 점이라면, 주인공 훈이가 화제 현장에서 민간인 희생자를 구하지 못한 자책감에 못이겨 태권브이의 탑승을 거부하고, 산속에 쳐박혀 괜히 죄없는 나뭇가지나 자르는 등 자연훼손을 자행한다는 점, 그리고 인조인간 여성이 메리가 아닌 스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는 점 등이 되겠습니다. 굳이 더 이상의 스토리는 필요하지 않겠지요?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사실 번번이 제작비 위기에 직면하던 김청기 감독에게 있어서 [태권브이]는 일종의 구원투수였습니다. 비록 완구회사와의 협찬조건으로 제작된 표절작이긴 했지만 [슈퍼 태권브이]라던가 [84 태권브이] 등은 여전히 태권브이 시리즈의 적자(嫡子)로 평가받고 있으며, 흥행에서도 성공한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번만큼은 반대로 감독에게 회심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김청기 감독이 오랜 세월 후에 내놓은 히든카드였던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 [태권브이 90]는 그 토대를 [로보트 태권브이] 1편에 두고 있음에도 관객으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받았던 것이지요.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그 이유는 아까 언급했던 일련의 [태권브이] 시리즈가 오리지널리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차원에서 아슬아슬하게 [태권브이]의 후계구도를 유지한 반면에, [태권브이 90]는 그 형식부터가 기존의 [태권브이] 팬들에게 있어서 너무 파격적이었던 것입니다.

가령 [태권브이 90]는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로 시작되는 불멸의 명곡인 1편의 주제가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한 너무나도 정겨운 '깡통로봇의 테마' 역시 느끼한 트롯트 필이 나는 주제가로 대체시켰는데, 이러한 OST의 변화는 [태권브이 90]의 이질감을 키우게 된 큰 요소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훈이를 비롯한 원작의 캐릭터들이 실사화되었다는 점은 꾸준히 태권브이를 사랑해왔던 팬들에게 있어서는 단순한 변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화받을땐 이쁘장한 목소리였던 그녀가 소개팅 자리에 나가보니 핵폭탄이었더라.. 와 맞먹는 충격이랄까요. 팬들이 구상했던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실제 배우들로 바뀌었을 때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사실 [태권브이]를 보아온 어린이들이 이미 [태권브이 90]가 나올때쯤엔 20대로 접어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태권브이 90]는 그 눈높이를 맞추는 면에 있어서도 실패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깡통으로 나온 철이가 느닷없이 김흥국의 호랑나비 춤을 추면서 "앗싸~ 호랑나비~"를 연발하는 모습이라던가, 안드로이드인 스엘이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집안 220V 콘센트에 대고 전기를 충전하는 아스트랄한 설정은 초등학생들이 보더라도 유치찬란함 그 자체였던 것이지요.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스엘이 가정용 콘센트로 충전을 하는 장면과 다스 베이더의 따라쟁이, 카프 장군의 모습 ㅡㅡ;;


더군다나 '모여라 꿈동산'급의 조악한 코스튬 또한 '태권브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은 쌈마이 정신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스엘이 등장 내내 쓰고 다니는 하이바같은 헬멧이나, [우뢰매]의 데일리를 연상시키는 에어로빅 복장에 금발머리 가발, 그리고 다스베이더를 표절한 것임이 명백한 카프의 코스튬은 [태권브이 90]가 얼마나 김청기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 드러난 괴작인가를 짐작케 하는 부분입니다.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결국 김청기 감독의 야심작 [로보트 태권브이 90]는 서울관객 5399명의 굴욕적인 흥행성적으로 20세기 태권브이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 그로부터 9년후 지누션이 부른 가요 '태권브이'로 다시금 세간의 관심을 이끌때까지 [태권브이]는 표절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흑역사로 치부받으며 갖은 고난과 무관심속에 잊혀져 갔습니다.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그럼에도 오늘날의 관점에서 [태권브이 90]를 재조명해 본다면, 먼저 이 작품에서 등장한 태권브이의 모델이 순수 창작 디자인이라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습니다. [슈퍼 태권브이]나 [84 태권브이]가 모두 표절시비에 휘말린것에 반해 [태권브이 90]만큼은 표절의혹에 있어서 역대 태권브이들 중 가장 자유로웠던 유일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원작의 감독 자신에 의한 '리메이크'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요.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또한 알려진 배우들의 옛날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는데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성인 연기자로서 변신해 관심을 모았던 이재은 양의 어릴적 모습이라든지, 윤박사로 출연한 원로배우 남궁원, 최근엔 활동이 거의 없지만 한때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린 장덕수의 깡통로봇 연기나 영희 역을 맡은 강민경의 풋풋한 모습을 보는것도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느낄 수 있는 재미라고 하겠습니다.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애증이 교차하는 김청기 감독님. 그래도 우리에게 꿈과 추억을 제공해준 그 공로만으로도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여하튼 [우뢰매]의 약발이 다 했을 때, [태권브이]는 다시 정통 셀 애니메이션으로 부활했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실사 합성 애니메이션에 너무 집착한 김청기 감독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을 끝내 괴작의 시험대에 올려 놓았다는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사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부활을 선언한 실사판 [로보트 태권브이]가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 [로보트 태권브이 90]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실사판 로보트 태권브이 (ⓒ 신씨네/(주)로보트태권V. All rights reserved.), 월간 우뢰매 (ⓒ 월간 우뢰매/ 김청기 All rights reserved.)

* 본 리뷰에 사용된 [태권브이 90]의 스틸샷은 현재 '우뢰매닷컴'을 운영하고 계신 lennono님께서 제공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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