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아바론 - 거장 오시이 마모루의 가상현실이 실사화 되다

페니웨이™ 2008. 3. 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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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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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거장의 괴작 한 작품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공각기동대]라는 작품을 기억하십니까? 시로 마사무네(Masamune Shirow)의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이 작품은 '인체의 정보화'라는 복잡하고도 심오한 주제에 접근한 작품입니다. [공각기동대]가 향후 헐리우드 영화에 미친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뤽 베송은 자신의 SF영화 [제5원소]에서 밀라 요요비치를 통해 [공각기동대]의 오프닝 시퀀스에 대한 오마쥬를 바쳤으며,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가 여러면에서 [공각기동대]의 영향을 받았음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지요. [터미네이터]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공각기동대]에 대해 극찬을 한 바 있습니다.

ⓒ Shirow Masamune/Kodansha Ltd./Bandai Visual. All rights reserved.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역작, [공각기동대]


그러나 정작 [공각기동대]를 만든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이 작품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이 작품이 개봉된 1995년에 [공각기동대]는 완전히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거든요. 당시의 기준으로 관객들은 '의체화'니 '고스트'니 알 수 없는 말만 떠들어 대는 [공각기동대]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지요. 훗날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비디오시장에서 각광을 받은 [공각기동대]는 그런면에서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와도 무척 닮아 있습니다.

어쨌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공각기동대]의 실패 이후 한동안 감독직에서 물러난채 제작자 등으로 2선에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5년만에 신작으로 발표했을 때 사람들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뒤늦게 [공각기동대]의 진가를 발견한 이들은 마모루 감독의 다음 작품이 적어도 [공각기동대]를 능가하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 Bandai Visual/ Dentsu Productions Ltd.

근데 놀랍게도 그가 발표한 작품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였습니다. 애니메이션 감독이 어떻게 실사영화를 만들까... 갸우뚱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 오시이 마모루는 16mm 독립영화에 몰두했던 영화학도였습니다. 비록 애니메이션으로 전향하기는 했으나 그의 전작인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을 보면 광각 렌즈를 응용한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집어 넣어서 실사 영화와 같은 질감의 화면을 선보일 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바론]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대 배경은 가까운 미래, 젊은이들은 '아바론'이라고 불리는 가상 전투게임에 열중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아바론'은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수많은 게임 중독자를 양산한것도 모자라 게임중 정신이 파괴되어 '미귀환자'로 불리는 폐인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주인공 애슈는 톱클래스급의 플레이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가 '파티'를 구성하지 않고 싱글 플레이어로 활동합니다.



어느날 애슈는 과거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파티인 '위저드'의 맴버 스터너를 만나게 되고 그 '위저드'의 리더였던 머피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머피는 아바론에 존재한다고 알려진 최종 스테이지, 클래스 SA(Special A)에 도전했다가 미귀환자가 된 것이지요. 결국 애슈는 위저드의 해체 경위와 클래스 SA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클래스 SA에 도전해 아발론의 비밀까지 파헤치게 된다는 얘깁니다.

언뜻보면 [아바론]은 여러모로 [공각기동대]가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오가는 설정이라든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캐릭터 등 이 작품이 [공각기동대]의 실사판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유사성이 큽니다. 한편으로는 [공각기동대]에 이어 흥행에서 실패했다는 점까지 빼다 박았네요.

ⓒ Bandai Visual/ Dentsu Productions Ltd. All rights reserved.

오시이 마모루의 작품 가운데 일종의 상징물 처럼 자주
등장하는 바셋 하운드


흥행에 실패한 이유를 말하자면, [아바론]은 정말이지 지독하리만큼 재미가 없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만 있으면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던 [공각기동대]와는 달리 [아바론]은 특정 주제의식이 너무 모호하게 처리된 채 그 희뿌연 화면만큼이나 관객들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이 작품을 더욱 괴상하게 만들었던건 일본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사가 모두 폴란드어로 처리되어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배우들도 모두 폴란드 배우죠. 이는 어떤 심오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독 자신이 워낙에 폴란드 영화를 좋아했고 폴란드식 발성도 좋아해서 언젠가는 폴란드어로 된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ㅡㅡ;;

어쨌거나 [아바론]을 보는 관객들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당혹스럽습니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불친절하게 툭툭 던져진 메시지 하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특수효과, [공각기동대] 보다 3배는 더 심오해진 철학적인 분위기 등등 역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은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마 [아바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감독 한명밖에는 없을거란 생각도 들더군요. 이래서야 썰렁한 유머를 던지고 혼자서 낄낄대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Bandai Visual/ Dentsu Productions Ltd. All rights reserved.


[아바론]은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입니다. 비록 실사영화라고는 하지만 감독 자신의 말처럼 이 작품은 실사도 애니메이션도 아닌 제3 영화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바론]을 보면서 심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것도 너무나 익숙지 않은 비주얼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촬영을 마친뒤 6개월간 디지털 작업을 거쳐 이미지를 가공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실제 촬영보다 디지털 보정 작업이 더 오래걸렸다는 얘기지요.

전체적으로 세피아톤이 감도는 [아바론]의 몽환적인 영상은 가상현실을 다룬 작품의 성격상 어쩌면 감독의 의도와 딱 어울리는 것일지 모르겠으나,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선 졸음이 쏟아지기에 딱 맞는 화면빨임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를 감상하다가 두 번 졸았음을 고백합니다 ㅡㅡ;;  오히려 내러티브의 취약점 보다도 더 문제되는 것은 [아바론]이 가진 비현실적인 화면이 아닐까 싶군요.

ⓒ Bandai Visual/ Dentsu Productions Ltd. All rights reserved.


한편으로 생각하면 [아바론]은 자신의 [공각기동대]를 빌려다가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형성한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에 대한 일종의 항변처럼 느껴집니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아바론]과 상응점을 갖고 있으며, 실제로 [아바론]의 개봉전에 한 인터뷰에서 감독은 '내가 생각하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관계와는 달랐기 때문에 그 영화(매트릭스)가 별로 재미있지 않았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3차원적 CG를 사용해 공간을 활용하는 기술(그 유명한 총알피하기가 되겠지요)을 보여주었던 [매트릭스]와는 달리 [아바론]은 2차원적인 CG를 도입해 보다 가상세계를 더 허구처럼 보이게 만든것도 어느정도 이를 염두해 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참고로 마모루 감독은 [매트릭스]의 그 'Bullet Time' 장면에 대해 '젊은 혈기니까 할 수 있는 장난스런 시도'라고 평가했다지요.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영화 [매트릭스]의 "Bullet Time" 시퀀스


어쨌든 괴작도 괴작 나름의 재미가 있는 편인데, [아바론]만큼은 정말 졸린눈을 비비고 억지로 봐야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일부 매니아들에게 있어서는 이 작품이 남다른 의미를 가질런지는 몰라도, 절대다수의 관객들에게 있어서 [아바론]은 수면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거란 생각이 듭니다. 비록 마모루 감독이 애니메이션의 거장일지는 몰라도  좀 더 관객을 배려하는 입장이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뭐 올해에는 [스카이 크롤러]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다니까, 어쩔 수 없이 기대가 되는건 역시 오시이 마모루가 아직까지는 애니메이션계에서 절대 간과하고 지나칠 수 없는 거물이란 뜻이겠지요. 이번에는 멋지게 그의 실력을 발휘해주길 기대하겠습니다.



* [아바론]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Bandai Visual/ Dentsu Productions Ltd.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공각기동대 (ⓒ Shirow Masamune/Kodansha Ltd./Bandai Visual. All rights reserved.), 매트릭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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