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진다 - 인도판 '올드보이'의 정체는?

페니웨이™ 2008. 3. 10.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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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작열전(怪作列傳)  No.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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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감독의 [추격자]가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인 워너 브라더스와 리메이크 판권을 체결했다는 훈훈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시월애]나 [중독], [장화, 홍련] 같이 이미 리메이크 되었거나, 혹은 제작이 한창인 작품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그동안 급성장한 한국영화계의 위상이 새삼 놀랍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디파티드]가 홍콩영화 [무간도]를 리메이크해서 아카데미를 석권한 사례를 보면 언젠가는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헐리우드의 정상에 설 날도 있을거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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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장화, 홍련]을 리메이크한 헐리우드 영화 [안나와 알렉스]


그러나 이렇게 '정식' 리메이크라는 이름으로 제작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어둠의 경로'로 리메이크되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표절'이라는 것이지요. 표절은 '아류작'과는 또다른 의미로서 쉽게말해 원작자의 동의없이, 그리고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배끼는 것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무판권 리메이크'라고나 할까요.

몇 년전 칸느 영화제를 들끓게했던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역시 메이저 영화사인 유니버셜 픽쳐스에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되면서 그 어느 작품보다도 리메이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던 적이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기 전부터 조니 뎁과 브래드 피트 등 헐리우드 유명 스타들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둥 김칫국부터 마시는 촌극이 연출되기도 했지요. 결과적으로 헐리우드판 [올드보이]는 현재 엎어진 상태입니다.

ⓒ 쇼이스트(주)/에그필름 All Rights Reserved.


그런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올드보이]의 리메이크는 다른곳에서 소리 소문없이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도 기대와는 달리 '표절'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지요. 1년중 영화제작 편수가 헐리우드보다 많으며, 자국영화가 박스오피스 40%이상을 점유하는 나라 중 하나인 인도판 [올드보이]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원제는 [진다 (Zinda)] ('찐따'가 아닙니다. 발음에 유의! ㅡㅡ;;), 우르드어로 “살아 있는"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 White Feather Films/ Ero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우선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서 내용이나 들여다보기로 하죠. 소프트웨어 개발차 방콕에 아름다운 젊은 부인과 함께 온 주인공 로이(산제이 두트 분)는 아내의 임신소식을 미처 듣기도 전에 개인 별장의 부두가에서 실종됩니다. 그는 알 수 없는 장소에 감금당한채 군만두만을 먹어가며 자그마치 14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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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그는 감금에서 풀려나 도심의 한 고층건물 옥상에 놓여진 상자속에서 깨어납니다. 그리고는 정처없이 방황하던 중 제니 (라라 두타 분)라는 미모의 택시운전수를 만나 복수를 위한 여정길에 오르게 되지요. 14년동안 먹어왔던 군만두의 맛을 기억하기 위해 차이나타운의 식당을 모조리 뒤지던 중 사건의 단서를 잡은 로이는 드디어 자신이 감금되었던 장소를 찾아내어 자신을 감금한 자의 정체에 한발짝 다가서게 되는데.. 과연 로이를 14년간이나 감금했던 자는 누구고 또 로이를 다시 풀어준 목적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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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보시면 알겠지만 몇몇 설정들을 제외하고는 [올드보이]의 설정과 거의 유사함을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심지어 대사와 시퀀스까지 90%가 동일한데요, 예를들어 롱테이크로 촬영된 그 유명한 장도리 씬이나 감옥안에서의 트레이닝 씨퀀스 등은 원작을 그대로 따라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한술 더 떠서 메인 캐릭터까지도 거의 같습니다.

사실 [진다]의 감독인 산제이 굽타의 이러한 표절성향은 비단 이 작품 뿐만이 아닙니다. 2002년작 [칸테]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베이스로 깔고 거기에 임영동 감독의 [미스터 갱]을 살짝 첨가한 표절작이었지요. 이런 뻔한 표절과 모방이 허용된다는 것이 어찌보면 신기하다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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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다]의 평가는 자국내에서도 상당히 좋았던 모양입니다. 일각에서는 이 작품이 '예술영화'의 수준으로 극찬받았다는데요, 실제로 산제이 굽타 감독이 [올드보이]를 대놓고 배끼긴 했지만, 나름대로 감독 자신의 변주를 주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인의 정서에 맞게 로컬라이징을 했다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올드보이]의 강렬한 오프닝 대신에 [진다]에서는 로이가 도심을 방황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허무주의적인 색채를 보여줍니다. 또한 박찬욱 감독의 장도리 씨퀀스가 수평적인 구도로 마치 캡콤사의 게임 '파이널 파이트'를 보듯 잘 정돈된 깔끔한 연출을 보여주었다면, [진다]의 씨퀀스는 호흡이 매우 거칠고, 동선도 많이 흐트러져 있으나 오히려 복수의 화신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와 잘 맞아떨어지는 역동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더해 전체적으로 탈색된 푸른빛의 영상도 영화의 전체적인 싸늘한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 쇼이스트(주)/에그필름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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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과연 [진다]가 [올드보이]의 충격적인 반전을 어떻게 따라했을까 하는 것일 텐데요, 스포일러상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지만 [진다]는 결말을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는 발리우드 영화의 테마를 잘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인도영화는 대체로 도덕적인 면과 전통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올드보이]의 반인륜적인 소재 대신 좀 덜 충격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심지어 엔딩도 해피엔딩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진다]의 반전은 인도인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강도가 쎈 축에 속합니다.


주인공 로이로 등장한 산제이 두트는 감독의 오랜 페르소나로서 주로 뒷골목 갱스터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액션 배우인데요, [올드보이]의 최민식에 못지 않은 (절대 능가한다고는 말 못하겠군요) 노련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어 내심 놀랍습니다. 그리고 로이의 조력자인 제니 역의 라라 두타의 눈부신 미모는 2000년 미스 유니버스 출신답게 이런 표절작품에 출연하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 White Feather Films/ Eros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과거에는 한국영화계도 이러한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괴작열전 시간에서도 이미 여러차례 소개했듯이 [달려라 마징가X]나 [검은별과 황금박쥐]등의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한국영화계의 히트작으로 남아있는 강우석 감독의 [투캅스] 역시 프랑스의 대 히트작 [마이 뉴 파트너]의 설정과 일부장면을 뻔뻔스럽게 표절한 작품이었습니다. 어찌보면 한국영화계의 흑역사라고 봐도 무방한 셈이지요.

Les Ripoux by ⓒ Films 7/ 투캅스 by ⓒ 강우석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물론 지금은 당당하게 헐리우드를 비롯한 해외에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할 정도로 한국영화계가 급성장한 것이 대견스럽지만 '표절'이라는 문화가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두번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아뭏든 발리우드 산 [올드보이]인 [진다]. 제 3국의 영화를 많이 접하지 않는 저로서는 무척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PS: [진다]는 [올드보이]와는 달리 19금적인 요소가 별로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설정으로만 존재할뿐 그 표현의 정도도 많이 완화시켰지요. 그러고 보면 최근 한국영화의 폭력적이고 성적인 표현의 수위는 지나치게 높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관객들은 다 알아듣는데 말입니다. ㅡㅡ;;


* [진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hite Feather Films/ Eros Entertainmen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안나와 알렉스 (ⓒ 2007 DreamWorks LLC.  All Rights Reserved.), 올드보이 (ⓒ 쇼이스트(주)/에그필름 All Rights Reserved.), 마이 뉴 파트너 (ⓒ Films 7 All Rights Reserved.), 투캅스 (ⓒ 강우석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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