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세/ 학산문화사
그런데 아동만화의 언저리에서 머물던 만화계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란 만화였다. 신군부의 우민화정책인 3S의 일환으로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한지 1년 후부터 연재된 이 만화는 그간의 만화적 규범에 반기를 던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주정꾼 아버지를 둔 오혜성이 소년시절부터 알고지낸 엄지의 권유로 야구계에 입문, 숙적인 마동탁을 만나면서 엄지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를 엮어가는 한편, 선수생명의 위기에 놓인 시점에서 인생의 낙오자가 된 선수들이 만나 '공포의 외인구단'을 결성해 프로야구 후기리그 50연승의 기적과 코리안 시리즈 3연승을 달성하는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본격적인 성인층을 대상을 한 최초의 만화가 되었다.
ⓒ 이현세/ 학산문화사. All Rights Reserved. ⓒ 이현세/ 학산문화사. All Rights Reserved.
특히나 애절하면서도 비극적인 결말의 충격은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만들었고, 사회적 약자들이 벌이는 승승장구의 연승행진을 보면서 군사정권에 억눌려 심리적으로 위축되었던 대중들은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엘리트이자 야심가인 마동탁이 승리를 위해 연인도, 스포츠맨 정신도 버리는 냉혈한으로 그려진 것과는 달리 오직 한 여성을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오혜성의 순애보는 이들의 삼각관계가 지극히 통속적인 스토리임에도 신선한 매력을 부여했으며, 자칫 야구만화로만 치우칠 수 있는 작품의 균형을 잘 유지시켜 주었다. 이 두 사람의 대결구도는 향후 이현세의 작품세계에서 비록 장르는 바뀌더라도 꾸준히 반복되면서 작가의 각기 다른 페르소나가 되었다.
그밖에 최관이나 백두산 하국상 등 매력만점의 조연급 캐릭터들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며 드라마적 완성도를 높여주었고, 특히나 외인구단의 감독으로 나온 손병호의 카리스마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면서도 퇴장과 동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렇게 살아 숨쉬는 캐릭터의 생동감이야말로 [공포의 외인구단]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대성공을 거둔 [공포의 외인구단]은 1986년에 영화화되는데, 그 당시 영화의 개봉명은 [이장호의 외인구단]. 왜 굳이 원작의 제목을 쓰지 않고 촌스럽게 감독의 이름을 갖다붙였는가 의아하게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이게 다 그 당시 정치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었다. 암암리에 공포정치를 자행한 신군부 정권으로서는 대중적 문화상품인 영화 제목에 '공포'라는 단어를 붙이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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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성기, 최재성, 이보희 등이 주연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28만의 관객동원을 기록하며 당시기준으로는 대박을 터뜨렸다. 더불어 원작의 대사 중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를 가사로 담은 정수라의 주제가 "난 너에게" 역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만큼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미쳤던 영향은 대단했던 것이다.
20년이상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도 [공포의 외인구단]은 전혀 촌스럽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작품이 지닌 드라마적 구성의 절묘한 조화는 한국만화계를 잠식한 어떤 일본만화와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다. 특히나 시대적 상황을 절묘하게 야구로 표현한 이현세의 선구안적 시각 역시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리메이크해도 좋을 듯 하다.
* [공포의 외인구단]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이현세/ 학산문화사.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정식 발매본을 이용합시다.
* 참고 스틸: 이장호의 외인구단 (ⓒ 판영화㈜ All Rights Reserved.)
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1 - 이현세 지음/학산문화사(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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