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필자는 아직도 뮤지컬이란 장르가 낯설다. 그나마 지루하지 않게 봤던 뮤지컬은 [사운드 오브 뮤직]을 빼면 한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뮤지컬 영화들이 신선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3년전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동명 뮤지컬을 스크린으로 옮긴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의 불모지와도 같은 한국에서도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작년에는 기라성같은 흑인배우들이 총출동한 [드림걸즈]가 평론가들의 극찬속에 흥행에서도 선전했다. 그리고 올해 또 한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영화화되어 화제를 모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헤어스프레이]다. (*참고: [헤어스프레이]의 원작은 1988년 존 워터스의 영화이지만, 당시 큰 각광을 받지 못하다가 브로드웨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음)
한 뚱뚱한 여고생이 TV 댄스프로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사회적 편견에의 저항, 그리고 인종적 갈등의 해소라는 주제를 [헤어스프레이]는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까?
1.뮤지컬로서의 [헤어스프레이] |
[헤어스프레이]는 전형적인 뮤지컬이다. 노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으며, 대부분 경쾌한 템포의 댄스곡이 주를 이루어 관객들의 흥을 돋군다. 오페라 풍의 우아함을 보여주었던 [오페라의 유령]이나, R&B스타일을 가미한 흑인 위주의 음악을 선보인 [드림걸즈]와도 사뭇 다르다.
2.영화로서의 [헤어스프레이] |
뮤지컬을 각색한 만큼 배우들의 연기에도 상당부분 의존하는 것이 역력한데, 후에 설명하겠지만 [헤어스프레이]는 꽤 유명한 스타들이 대거 얼굴을 비추는 영화다. 따라서 이들이 이끌고가는 극의 흐름또한 어느 영화 못지 않게 탄탄한 짜임새를 보여주며, 특히 필자처럼 뮤지컬만 보면 졸음이 쏟아지는 관객에게도 상당한 몰입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한마디로 캐스팅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3.니키 브론스키 |
ⓒ MMVII New Line Cinema Productions, inc. all right reserved
타이틀 롤을 맡은 니키 브론스키는 19세의 신예로 이번이 첫 데뷔작이다. 작은키에 뚱뚱한 몸매의 그녀는 영화배우나 뮤지컬 배우로서의 이미지와는 도저히 안맞을 것 같이 보이지만, 의외로 귀여운 얼굴과 뛰어난 춤솜씨로 처음 주어진 큰 배역을 무난히 소화해내고 있다. 특히나 거물급 배우들과의 공연임에도 그녀의 존재감을 확실히 다지고 있어, 앞으로의 활약이 기대되는 유망주다.
4.스타들의 출연 |
신예 니키 브론스키의 연기가 출중했던건 사실이나, 무엇보다 [헤어스프레이]의 핵심적인 캐스팅은 그녀의 엄마역을 맡은 존 트라볼타다. 최근 몇 년간 집밖에 나간적이 없는 뚱녀 콤플렉스를 가진 엄마로 등장한 존 트라볼타는 실제 그가 '여자'가 아닌가 싶을정도로 자연스런 연기를 펼친다. 또한 [토요일밤의 열기] 이후 그와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인 '춤'을 이 작품에서도 다시금 선보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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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존 트라볼타의 남편으로 등장하는 크리스토퍼 월켄도 본의아니게 남자와 부부연기를 하는 곤욕을 치뤘지만, 과거 강렬한 카리스마의 캐릭터만을 맡아온 그답지 않게 최근 유순한 역할을 많이 맡아온 탓인지, 역시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흥미롭게도 크리스토퍼 월켄과 [배트맨 2]에서 앙숙지간으로 공연한 바 있는 미셸 페이퍼가 이번에는 악독한 방송국 프로듀서로 출연하는데, 이제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똑같은 미모를 유지하는 것이 새삼 놀랍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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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엑스맨]의 제임스 마스덴, 뮤지션이자 배우인 퀸 라티파의 뛰어난 노래솜씨와 [쉬즈 더 맨]에서 남장여자를 연기한 아만다 바인즈의 깜찍한 연기도 볼거리. 사실상 [헤어스프레이]의 출연자들은 모두가 주연이자, 조연인 셈이다.
5.주제의식 |
[헤어스프레이]는 크게 두가지 주제를 가진다. 하나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이며, 또하나는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이다. 둘 다 인간이 가진 가장 흔하면서도 고치기 힘든 편견이지만 [헤어스프레이]는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민감한 주제를 재치있게 다루고 있다.
ⓒ MMVII New Line Cinema Productions, inc. all right reserved
물론 전체적인 내용이 경쾌한 톤으로 진행되므로 내용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도 극적 긴장감이 다소 결여되어 있긴하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치곤 꽤나 훌륭한 접근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헤어스프레이]는 현재에도 로튼토마토의 신선도 수치 93%를 기록하며 2007년 가장 신선한 작품 중에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사족: [헤어스프레이]의 원작자이자, 1988년 동명영화의 감독을 맡은 존 워터스가 영화 초반 '바바리맨'으로 깜짝 등장하니 놓치지 말 것!
* [헤어스프레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MVII New Line Cinema Productions, inc.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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