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리뷰

영화 [블랙 레인]의 촬영지, 오사카를 가다

페니웨이™ 2025. 8. 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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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내 평생 한 번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영화가 있다. 리들리 스콧의 1989년작 [블랙 레인]은 아마도 내가 '저 곳에 가고싶다'는 느낌을 준 최초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평범한 헐리우드 버디물 정도로 보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조금 남다른 영화다.

이 작품이 개봉된 1989년 당시의 한국은 이제 갓 88올림픽을 치룬, 후진국의 때를 간신히 벗어낸 느낌의 나라였다. 반면 버블 호황기의 정점을 찍으었던 일본의 경제력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위상을 자랑하는 수준이었는데, 그런 일본의 모습을 담은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접할 길이 없었다. 일본문화수입에 빗장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1990.04.06. 경향신문의 1면 기사. 고작 [블랙레인]과 홍콩·일본합작액션영화 2,3편이 수입되었을 뿐인데도 무려 [왜색비상]이라는 선정적인 헤드라인으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


[블랙 레인]이 수입될 수 있었던 건 UIP직배라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도 한창 시끄러었던 직배사의 수입영화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든 미국영화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영화의 80%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일본문화수입이 금지되었던 당시의 영화관에 걸릴 수 있었던 이유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거장의 위용을 되찾은 리들리 스콧이지만 당시에는 꽤나 슬럼프를 거쳐서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이던 감독이었는데, 그럼에도 폼은 죽지 않아서 CF감독 출신답게, 그리고 [블레이드 러너]를 만든 바로 그 감독답게 끝장나는 영상미로 오사카의 야경을 스크린에 수놓았던 작품이 바로 [블랙 레인]이다.

촌티나던 서울에서 살던 나에게 있어 [블랙 레인]의 오사카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실제 오사카가 어땠는지는 뒤로하고, 스크린 가득 펼쳐진 휘황찬란한 오사카의 풍경은 밤낮을 막론하고 '매혹' 그 자체였다. 그러니 그 당시에 든 생각은 미치도록 오사카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문화수입금지 만큼이나 골때렸던건 자국인들에게는 해외여행을 허락하지 않았던 한국의 정책이었다. 지금에야 '해외여행자율화'라는 용어가 뭘 의미하는지도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테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건 정말 선택받은 일부의 특권이었다.  

물론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 나도 성인이 되면서 일본에 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히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굳이 핑계를 대자면 내 생업이 워낙 바쁜 직업이라는 (나는 주 5일 근무가 일상이 된 시점에도 토요일까지 근무를 했다)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일본에 발생한 후쿠시마 사태 때문이다.

뭐 그렇게 나이만 먹게 되었다가 우연찮게 처음으로 오사카를 가게 되었다. [블랙 레인]을 본 지 무려 25년 만이다. 

워낙 오랜 시간이 흘렀기에 당시 촬영지의 몇 곳은 이미 사라졌거나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변하였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몇 장소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도톤보리의 시그니처인 글리코 사인이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 [블랙 레인]의 한 장면. 차에서 내리는 앤디 가르시아와 마이클 더글라스, 다카쿠라 켄의 뒤로 그 유명한 글리코 사인이 보인다. 


이 명소는 [블렉 레인]에서 주인공 닉(마이클 더글라스 분)이 사토(마츠다 유사쿠 분)를 놓치고 나서 일본 경찰본부로 가는 장면에 등장한다. 도톤보리강을 따라 쭉 연결된 보도 양 옆으로 환상적인 간판들이 펼쳐지며 그 중심에 글리코사인이 나온다. 무엇보다 아날로그스러우면서도 화려했던 일본의 최전성기를 보여주는 상징물.


다음날 찾아간 오사카성은 굳이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그니처 건축물이다. 영화 [블랙 레인]에서는 닉의 절친인 찰리(앤디 가르시아 분)가 죽던 날, 밤을 지나 동틀 무렵의 오사카를 비추면서 조하(朝霞)의 광원을 카메라에 담은 명장면에 등장한다. 짧지만 너무나도 황홀했던 장면이기에 수없이 돌려봤던 장면이기도 한데, 예전에 정식 출시되었던 VCD에서는 해당 장면이 삭제되어 어이가 없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 Paramount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아무튼 직접 가서 본 오사카성은 성 주위로 수로가 있고 그 외벽은 돌을 쌓에 올렸는데, 사실 이게 오리지널을 보존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한 번쯤 볼만한 가치는 있는 듯. 오사카성의 야경도 보고 싶었으나 일정상 아쉬움을 뒤로 한채 숙소로 향했다.

그 외에도 찰리의 죽음 직후 닉이 홀로 멍하니 서 있던 신사이바시 다리도 그 터가 남아있으며, 우메다역 주변의 한큐 쇼핑몰 일대도 있으나 지금은 많이 바뀌었고, 특히 클럽으로 등장한 기린 플라자는 철거되어 찾을 수 없다. 주로 난바역 주변에서 일정을 잡았던 나로서는 우메다역 부근을 볼 수 없어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블랙 레인] 감상으로부터 25년만의 방문이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흔적들, 특히나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오사카의 야경에 마음껏 취할 수 있어서 좋았던 여행이었다. 

P.S: 서비스로 오사카 경찰본부 앞에서 한 컷. 영화 [블랙 레인]은 구청사를 배경으로 했으나 최근 [명탐정 코난] 극장판에서는 신청사를 배경으로 한다.

[명탐정 코난: 천공의 난파선] 중 ⓒ Gosho Aoyama/ Detective Conan Commitee.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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