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아작 |
근 미래. 달에는 인간들의 전초기지가 있고 지구와 근거리에 있는 태양계의 별을 왕래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시기. 어느 날 달에서 우주복을 입은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이름도, 국적도 불명인 이 시신의 검사결과 5만년 전에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과학계는 일제히 쇼크에 빠지게 된다. 5만년 전에 달에 갈 정도의 과학기술을 가진 인류의 존재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국내에 제임스 P. 호건을 아는 독자는 많지 않다. 애당초 장르소설 자체가 큰 인기를 끄는 시장이 아닌지라 SF에 관해서는 거의 불모지나 다름 없으니까. 1977년에 호건이 발표한 소설 [별의 계승자]는 이 소설 자체보다는 소설의 제목을 오마주한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의 극장판 [기동전사 Z건담: 별을 계승하는 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둘의 상관관계는 제로에 가깝지만 그만큼 일본에서는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이며 일본 내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성운상을 수상하기도 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 Sunrise/ Bandai Visual. All Rights Reserved.
수미쌍관식 연출의 묘미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신원미상의 시체를 놓고 벌이는 두뇌유희의 정수를 보여준다. 서로 상충되는 이론의 허점을 보완하고, 성립 불가한 가능성을 하나씩 배제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은 비단 외계인의 존재를 기정 사실화하는 본 작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순수하게 진실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바람직한 자세을 제시한다.
(공교롭게도 [스타워즈]가 개봉된) 77년 작이지만 매우 정교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고 있어 (물론 지금에 와서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론들과 용어가 난무하긴 하나 지레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디테일한 요소들은 완성도를 더할 뿐 전체적인 줄기는 쉽고 간결하게 요약되어 있으며 이 거대한 이야기에 압도되는 독자들의 부담을 차분하게 덜어주면서 진행된다.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어나가듯 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겹겹이 쌓여진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며 심장을 쫄깃하게 조이는 맛은 그 어떤 SF소설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의 참 맛이랄까. SF 뿐만 아니라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들도 꼭 한 번은 필독할만한 책이다.
이 작품은 속칭 ‘거인들 Giants’시리즈로 불리게 되는 5편의 작품이 발표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1편의 완성도가 가장 뛰어나다. 이 작품은 일본 SF만화의 대가 호시노 유키노부가 [거인들의 전설]이란 작품을 통해 오마주 했으며, 최근에는 아예 4권짜리 만화로 코믹컬라이즈해 출간하기도 했다. (불행히도 이 코믹컬라이즈는 해외 출간이 불가능한 상태로 국내 정발도 현재로선 불가능하다.)
ⓒ 星野 之宣 All Rights Reserved.
점차 드러나는 정보들, 쌓여가는 이론과 가설들. 5만년 전에 벌어진 일들을 밝혀내는 마지막 순간의 아! 하는 느낌이란 도저히 몇 문장의 리뷰로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굳이 비교하자면, [인셉션]의 마지막 장면에서 받았던 그 충격의 한 5배쯤. 이 책을 이제 소개한 것이 작가에게 그저 죄송할 따름이다.
P.S:
1.사실 그간 리뷰를 쓰지 않았던 건 책이 절판되어서였다. 누구 약올리는 것도 아니고 중고시장에서 몇 배나 뻥튀기된 책을 사서 보라고 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내 재출간이 되었다.
2.이 제목은 안노 히데아키의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최종화에서도 오마주되었다.
3.애초에 제임스 P. 호건은 거인 3부작으로 완결을 지었으나 후에 2부작을 추가했다. 사실 이 후기작 두 편은 그리 좋은 평을 받진 못했다. 호시노 유키노부의 코믹컬라이즈는 3부작만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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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아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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