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뜻하지 않게 길라임이 화제다. 2010년 방영되어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시크릿 가든]은 스턴트 우먼 길라임과 건방진 백화점 사장 김주원의 몸이 서로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판타지 로맨스다. 물론 남녀의 성별이 바뀐다는 설정 자체는 그 외에도 자주 사용되었다. [키스의 전주곡]부터 [스위치], [체인지] 등의 영화를 비롯해 아예 TS물이라는 장르물로 분류되는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시크릿 가든]이 방영된 2010년에 월간 ‘부킹’에서 연재된 [비스트 나인]은 바로 TS물에 거대 로봇 장르를 결합한 독특한 작품이다. 사실 TS물이라는 장르가 다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기에는 조금 금기시되는 경향도 없지 않은데, 이처럼 거대 로봇 만화에서 TS물의 요소가 사용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임은 분명하다.
ⓒ 학산문화사
외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적 이레이저와 이를 소탕하는 대 이레이저용 결전병기 비스트 부대의 대결을 그린 이 작품은 비스트 파일럿 양성기관 르플랭스의 수련생 최일건이 전투 도중 큰 부상을 입은 교내 톱 에이스 장마리와 몸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당연히 남녀의 성별이 바뀐만큼 학원물 특유의 성적 개그가 자주 사용되며, 이와 연관된 해프닝이 과도하게 발생하지만 로봇 만화로서의 자세에도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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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비스트의 유니크한 메카닉 디자인과 기동방식에 대한 설정이라든지, 이레이저와 관련된 복잡한 진실, 그리고 각 캐릭터에 얽힌 갈등 구조가 촘촘하게 짜여져 있어 90년대 이전의 한국 로봇만화와는 달리 한 차원 높은 장르물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간에 작화가가 교체되는 등 연재 당시 어려움이 많았으며, 이미 한물 간 장르인 로봇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든 탓에 독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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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스케일과 세계관 덕분에 꽤나 큰 볼륨으로 갈만한 이야기를 가졌음에도 [비스트 나인]은 단행본 5권 분량으로 성급히 마무리 짓는 아쉬움을 남긴다. 비인기 장르로 전락한 로봇 만화의 현실을 절감했지만, 서로 다른 장르 간의 이종 교배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보려 한 의욕만큼은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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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비스트9 (전5권/미완결) - 윤재호 지음, 박진환 그림/학산문화사(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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