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다보면 인생에서 기억할만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될 일이 생긴다. 물론 그 순간이 한두번은 아니겠지만, 그 강렬한 설렘의 느낌은 아마도 평생 지속될 만큼 강렬한 것이 될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두근거림이 여러번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 가장 처음 그 강렬한 경험을 느끼게 해 주었던 기억은 1980년 4월 5일 아침에 일어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식목일 오전이었지만 TV를 트는 순간 그만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TV에서 만신창이가 된 (MBC의) 마징가 제트를 (TBC의) 그레이트 마징가가 돕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식목일 특집으로 방영된 [마징거 제트와 암흑대장군의 대결], 바로 내가 경험한 첫 크로스오버 콘텐츠의 충격이었다. 1
지금도 슈퍼로봇 관련 작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는다면 필자는 서슴없이 [마징가 제트 대 암흑대장군マジンガ Z對暗黑大將軍]을 고를 것이다. 세대교체의 모범 답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팬서비스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준 이 작품은 TV판과는 별개로 총 6편의 마징가 관련 극장판을 제작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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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는 오다 코사쿠판 [마징가 제트]에도 수록되어 있지만 재미나 임팩트 면에서 극장판에 비해 한참 못미친다. 그렇다면 한국판 마징가 만화로 유명한 이세호 작가는 어떨까?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와 합동작전편]은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마징가 제트]의 두 번째 애니메이션 극장판 [마징가 제트 대 암흑대장군]을 각색한 작품이다.
모처럼 해수욕장에서 휴가를 즐기는 쇠돌이 일행 앞에 마징가를 닮은 괴로보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서 정체불명의 예언자가 나타나 '세상이 종말을 향해 다가가고 있으며 마징가 제트는 죽음의 고통을 맛볼 것'이라는 불길한 예언을 남기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한편 [마징가 제트와 찡가: 우주를 날아라]에서 코크스를 잃은 암흑대왕은 기계마인 데이모스를 이용해 초합금 제트의 원료인 코리아늄을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데이모스를 추격하던 마징가 제트는 암흑대왕의 오른팔인 고오공 장군이 이끄는 기계마인에게 둘러싸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다. 이 때 섬광처럼 나타난 그레이트 마징가가 쇠돌이를 위기에서 구한다.
든든한 아군을 얻은 마징가 제트는 이제 탈취한 코리아늄으로 만든 초합금 갑옷을 걸친 궁극의 기계마인 발모스Q와의 대결에서 그레이트 마징가의 도움으로 물리치고 이 기세를 몰아 미케네인의 비밀 우주요새를 쑥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궁지에 몰려 우주로 달아나던 암흑대왕 2은 결국 패배를 직감하고 자폭의 길을 택한다.
단언컨데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와 합동작전편]은 이세호의 마징가 중 가장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현대코믹스를 통해 총 5편의 [마징가 제트] 시리즈를 발표한 3 이세호 작가가 작심하고 피날레 장식하려는 듯 작품 전반에 걸쳐 화끈한 액션이 펼쳐지며 암흑대왕과 마징가 제트의 대결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스토리는 기본적으로 [마징가 제트 대 암흑대장군]을 베이스로 하면서 보다 입체적인 구성을 위해 오다 코사쿠판 [마징가 제트]에서 '닥터 헬의 대공략'편과 '데이모스 F3'편, '닥터 헬의 최후'편을 유기적으로 각색해 놓았다.그레이트 마징가의 등장이라는 단일 에피소드만 가지고는 단행본 한 권의 분량을 채우기에 다소 부족하다는 점도 작용했을 듯 하다.
오른쪽 ⓒ 이세호/ 현대코믹스 All rights Reserved. 왼쪽 ⓒ 桜多吾作/ 双葉社. All rights Reserved..
△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와 합동작전편]에 등장하는 기계마인 발모스 Q. 오타 코사쿠의 [마징가 제트] 3권에 등장한 발모스 Q7을 차용한 것이며 코리아늄으로 만든 초합금 제트 갑옷을 입는다는 설정도 동일하다. 그러나 두 작가의 그림을 살펴보면 연출방식의 차이가 확연함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작화의 퀄리티 만큼은 이세호의 승!
다만 원작인 [마징가 제트 대 암흑대장군]이 주역 메카의 교체에 방점을 둔 작품인 반면 이 작품은 ‘합동작전’이라는 부제처럼 어디까지나 그레이트 마징가를 마징가 제트의 조력자 역할로 한정짓는다. 출간 시기로 보면 이세호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이전 스타문고 레이블의 마징가 시리즈에서는 주로 두 마징가의 협력관계에 초점을 맞춘 점으로 보아 애당초 이세호 작가가 메인으로 사용했던 기체는 마징가 제트였음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와 합동작전편] 이후로 작가는 SF만화가 이세호와 순정만화가인 이진주의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다 결국 이진주 작가의 삶을 선택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한국판 마징가는 그렇게 사라져 갔지만 [달려라 하니]의 이진주 작가는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한국 만화사에 큰 이정표를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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