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은 오랜만에 접하는 정극 멜로물입니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가장 잘 맞도록 추억의 여러 단편들을 주워담아 이쁘장하게 포장한 작품이죠. 여기에 아련하게 떠오르는 첫사랑을 소재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액자식 구성에 배우들의 사랑스런 비주얼이 어우러져 제법 맛깔스런 재미를 연출합니다. 여기서 ‘비주얼’이라고 하는 것에 일단 유의해 주시고요^^
한발짝 물러서서 객관적으로 영화를 보자면 [건축학개론]은 유치한 면이 많습니다. 이야기도 단순하고, 주인공 남자는 속된말로 좀 찌질하죠. 아니, 결혼까지 한 유부녀가 잊혀진 옛 사랑을 불쑥 찾아온다는 설정도 무리수가 있습니다. 대부분 이 상황에서의 현실은 영화처럼 그리 멋진 장면이 연출되진 않잖아요. 그 찾아온 첫사랑의 그녀가 한가인급이라면 모를까.
뭐 그렇다는 겁니다. [건축학개론]을 폄하하는게 아니라, 영화 자체가 그렇게까지 짜임새가 훌륭하다던가 각본이 혀를 내두를만큼 획기적인건 아닌데, 그럼에도 400만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는 건 분명 관객들이 공감할만한 그 무언가가 있다는 거죠.
아시겠지만 [건축학개론]은 95학번 세대, 그러니까 IMF가 터지기 전 운동권과도 거리가 멀고 경제적 어려움에서도 벗어난 세대의 감성을 건드립니다. 저 역시도 (약간 더 늙긴했지만) 이 세대의 감수성에 공감할 수 있는 세대이고, 현재 극장가를 찾는 주 관객층의 상당수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대학시절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 무척, 심하게 몰입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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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대범해진 요즘 젊은이들의 사랑과는 달리, 보수적인 관념이 더 많이 잔존해 있던 시대의 사랑은 더 진한 아련함과 여운을 남기기 마련이죠. [건축한개론]은 그런 시대의 촌스럽고 어리숙한 풋사랑의 감성을 잘 살려냈다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만 합니다. 단순히 그땐 그랬지와 같은 지나가는 상념에서의 수준이 아니라 정말로 가슴 아파했던 첫사랑의 기억을 상기시켜주거든요.
아까 서두에서 말했듯 이 영화가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성공적인건 배역들의 선택이 탁월했기 때문인데, 신인급인 이제훈과 수지의 경우 그리 큰 연기력을 요하는 캐릭터가 아닌 탓에 오히려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습들이 이 두사람의 신선한 비주얼과 어우려져 더 높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합니다.
반면 한가인은 (논란이 된 연기력은 뒤로하더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첫사랑에 대한 여신 판타지를 구체화 시킨다는 점에서 최고의 캐스팅이었지요. 엄태웅 역시 [시라노: 연애조작단] 이후 다시 한번 사랑에 실패한 순정남의 어리숙함을 재현합니다. 중간중간 빵터지는 유머를 선사한 조정석의 감초연기도 일품이었고요.
아마도 한국 멜로영화에서 이만큼 애틋함을 남기는 작품은 보기 드물지 싶습니다. 폭풍눈물을 쏟을 영화는 아니더라도 뜨뜻하게 눈가에 습기가 차오를만한 여운은 충분히 남기는 영화입니다.
P.S:
1.이런 멜로물에서까지 쌍욕 대사를 들어야 하는 겁니까. 한가인이 그 예쁘장한 입에서 에이 뭐팔뭐팔 할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더군요. 리얼리즘도 좋지만 좀... 현실세계에서 지겹도록 듣는 욕을 극장에서 올서라운드로 듣기는 정말 싫습니다.
2.너무나도 순진했던 저로서는 현재의 와이프가 제 첫....사랑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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