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아이언맨]을 처음 봤을 때 나오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설마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벤져스]가 진짜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은 기획 당시부터도 드림 프로젝트라 불리며 초미의 관심을 모은 그야말로 전세계 슈퍼히어로 마니아들에게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영화라 할 수 있죠. 이 분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관객들은 ‘야~ 또 근사한 블록버스터 한 편 나왔다보다’ 싶겠지만요, 마블 코믹스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목숨걸고 사수해야 할 작품인 겁니다.
몇 년전부터 마블 측에서는 [어벤져스]를 위해 각별한 공을 들여왔습니다. [아이언맨] 1,2편, [인크레더블 헐크], [천둥의 신: 토르], [퍼스트 어벤져]까지 [어벤져스]의 떡밥이 아주 깨알같이 뿌려질 수 있었던 건 이 영화들이 온전히 마블의 통제하에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덕분에 [아이언맨 2]같은 경우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어벤져스]의 예고편격으로 전락하는 실수도 범했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대를 위한 소의 희생쯤이야. 쯧.
기대가 큰 건 사실이었지만 불안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각 영화들에서 타이틀롤을 맡아온 개성강한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좋은데, 이들의 영역을 고르게 분배하고, 이야기가 삐걱거리지 않게 균형을 잡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요. 아무리 내공깊은 감독이라 할지라도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스 웨든의 감독 선임은 최적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익히 알려진데로 그는 [엑스맨]의 감독으로 고려된 바 있을 만큼 히어로물의 열광적인 마니아이기 때문입니다. (‘난 괴수물에 별로 흥미가 없다’며 장르물을 우습게 보다가 시덥잖은 망작이나 찍어댄 한국의 모 감독과는 결정적인 차이죠)
결론부터 말해 [어벤져스]는 진정한 의미의 히어로물입니다. 오해는 마세요. 이 영화와 [다크 나이트]를 동일선상에 놓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크 나이트]는 히어로물의 장르적 영역을 뛰어 넘어 논해야 할 중량감 있는 걸작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히어로물의 탈을 쓴 범죄 느와르죠) [어벤져스]는 슈퍼히어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말하자면 장르물로서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입니다. 아마 마블 코믹스의 팬들이라면 매 순간마다 숨이 꼴깍꼴깍 넘어갈 거라고 확신해요.
ⓒ Marvel Enterprises, Marvel Studios . All rights reserved.
[어벤져스]가 기존 마블 영화들을 본 관객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조스 웨든은 그렇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유연한 연출을 보여줍니다. 각 캐릭터가 지닌 개성, 과거, 그리고 그들의 약점까지 모두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았고, 속된 표현처럼 ‘쩌리 캐릭터’로 전락할 법한 인물들을 적시적소에 배치에 모두 구제해 냅니다. 특히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노출 빈도가 극도로 낮았던 호크아이 같은 경우는 초반부터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심어줍니다.
토니 스타크의 껄렁거리는 유머는 여전하며, 팀의 리더로 적합한 캡틴 아메리카의 모범생적인 이미지, 토르의 압도적인 파워나 첩보원 특유의 심리전을 구사하는 블랙 위도우의 새로운 모습, 후반부에 경이적인 활약상을 펼치는 헐크 등 뭐하나 버릴게 없이 영화는 꽉 찬 느낌입니다. 덕분에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으로 늘어지긴 했지만 (조스 웨든은 원래 3시간짜리로 편집을 했다 하더군요. 삭제된 장면들에선 캡틴 아메리카의 비중이 큰 편인데 이는 DVD출시때 공개될 듯) 러닝타임의 2/3를 채우는 액션의 홍수로 인해 조금도 지루해할 틈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화려한 볼거리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영화 속에는 충분히 공감할만한 드라마도 녹아있습니다. 특히나 팬서비스를 위한 눈요기 수준이 아니라 히어로들의 개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충돌과 조화, 궁극적으론 히어로가 힘을 합해 연합작전을 펼치는 진정한 팀플레이의 묘미야 말로 다른 여타의 히어로물이 갖지 못한 [어벤져스]만의 진정한 재미입니다. 중간중간 빵터지는 유머의 향연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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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쉬운 점도 없진 않습니다. 악역인 로키의 감정선을 조금 더 잘 살렸더라면 영화의 가벼움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텐데, 태생적인 어드벤티지를 제대로 부각하지 못해 막판에는 히어로 영화사상 가장 굴욕적인 악당으로 남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어벤져스 팀과의 밸런스를 맞추기엔 로키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너무 빈약해보인다는 점이 단점으로 남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쿠키영상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속편에서 더욱 강력한 악당으로 대치되면서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되었던 에드워드 노튼의 부재는 아쉬움과 만족감이 반반입니다. 아쉬움이라면 배우의 교체로 인해 [인크레더블 헐크]와의 완벽한 연결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겠고, 만족이라하면 의외로 마크 러팔로 버전의 헐크가 무난하게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아니, 오히려 오히려 역대 브루스 배너로 따지자면 가장 그럴듯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이로서 마크 러팔로가 등장하는 헐크 영화도 한번 보고 싶어졌네요.
무려 4년을 기다린 퍼즐조각들은 만족스런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영화사상 초유의 크로스오버이자, 히어로물의 정점에 선 얼티밋 에디션, [어벤져스]의 출발은 매우 순조로워 보입니다. 비록 지향점은 다릅니다만 이로 인해 2012년에 격돌할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삼파전 양상은 영화 외적인 기대감을 낳게 하는군요. 행복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P.S (스포일러 있습니다)
1.정말이지 빵빵터지는 유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머조차 결코 허투루 만든게 아닙니다. 가령 캡틴 아메리카가 내기돈으로 10달러를 닉 퓨리에게 건네는 장면은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캡틴의 성격 자체가 매우 모범생적이고 고지식하다는 것을 관객에게 심어주기 위한 설정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조스 웨든이 꼼꼼하다는 뜻이죠.
2.쿠키씬에서는 속편에서 타노스와 데스가 메인 빌런으로 등장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로키 하나 등장한 것 만으로도 멘하튼을 초토화시켰는데, 과연…
3.포털을 통해 외계종족이 지구로 침략한다는 설정은 작년의 [트랜스포머 3]와 거의 유사합니다. 그러나 설득력에 있어서나 재미에 있어서는 비교가 안되더군요. 그만큼 영화의 흐름과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4.콜슨 요원… 정말 안타깝습니다. 원래부터 그렇게 의도된 것이었는지, 조스 웨든이 내린 특단의 조치였지는 몰라도 그렇게 희생양이 되다니… 너무 슬퍼요. 콜슨 요원을 주연으로 한 스핀오프나 하나 만들어 주지..
5.스탠 리 영감님.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 주시고, 원조 헐크인 루 페리노는 이번 작품에서 무려 대사까지 있습니다. 근데 그 장면이 너무 웃기는 씬이라.. 지못미 로키. ㅎㅎㅎ
6.닉 퓨리의 오른팔인 마리아 힐 역의 배우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태드, 모레나 바카린, 제시카 루카스 등이 물망에 올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코비 스멀더스가 캐스팅되었죠. 그저 감사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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