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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머슬 - 다이나믹 프로의 해적판 만화 '아이반호 2세'를 아십니까?

페니웨이™ 2011. 12.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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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꿈도 못꿀 이야기지만 1980년대만 해도 해적판 만화를 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드래곤볼] 이후 무차별하게 쏟아져 들어온 5백원짜리 포켓판 만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전설적인 클로버문고의 인기가 시들해질 즈음해 국내에서는 메이저급 만화업계인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가 그 자리를 대치해 갔다. 흥미롭게도 다이나믹 프로의 작품들 중 대다수는 ‘한국인’ 작가의 이름을 건 일본 만화의 해적판이었다.

대표적인 만화가가 성운아였는데, 마에카와 다케시의 [쿵후보이 친미]를 그대로 배낀 [쿵후소년 용소야] 시리즈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놀라운 건 성운아 작가의 이름으로 출간된 작품이 [쿵후소년 용소야] 뿐만이 아니라 다테이시 케이타 원작의 [초인 킨타맨]을 배낀 [쿤타맨], 후지코 F 후지오 원작의 [퍼맨]을 도용한 [무적소년 빠삐용], 심지어는 국내의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개작된 [마징가 제트] 시리즈도 있었으니 그리는 작품마다 엄청난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그림체가 변화무쌍했던 이 만화가에 대한 정체는 지금까지도 무수한 설을 낳으며 미스터리처럼 남아 있다. (P.S1 참조)

ⓒ 다이나믹 프로. All rights reserved.


그 외에도 [권법소년 한주먹] 시리즈로 성운아와 쌍벽을 이뤘던 전성기, [우주해적 코브라]의 이상석, [소년 권법자]의 양정기 등의 작가들이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의 판매고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물론 이 작품들이 결국에는 일본의 원작만화를 무단으로 도용해 출판한 무판권 도작이라는 것이 나중에서야 밝혀졌지만 1980년대 후반 청소년들의 문화생활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성운아-전성기 양강 체제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한번 작품을 내는 작가들의 인기작도 있었으니 바로 김신일 작가의 이름으로 출판된 [격투기 로보트 아이반호 2세]도 그 중 하나다.

ⓒ 다이나믹 프로.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거대로봇들이 벌이는 프로레슬링을 소재로 삼았는데, 그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이 작품에서는 [로보트 태권브이]나 [투장 다이모스]처럼 조종석에 들어간 격투사의 동작이 그대로 로봇에 전달되는 모션 트레이스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아울러 로봇에게 가해지는 데미지는 격투사의 신경체계에 그대로 전달되는데, 그 수준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간혹 로봇이 받은 충격이 한계치를 넘어 실제로 부상을 입히는 ‘역전위증후군’이 발생되기도 한다.

주인공 한광일의 아버지 한라문은 아이반호에 탑승해 58전 무패의 세계 챔피언 오딘과 대결을 벌이는데 아이반호와의 싱크로율을 규정치 이상으로 높인 결과, 역전위증후군이 발생해 오딘의 필살기 황제의 단두대에 걸려 목이 부러지는 참사를 당하고 만다. 이 광경을 목격한 한광일은 로봇 격투사로 성장해 아이반호 2세의 조종사가 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 작품은 원래 [마징가 제트]의 원작자로 유명한 나가이 고가 1983년 코단샤를 통해 연재했던 [아이언 머슬 アイアンマッスル]을 무단으로 출판한 해적판이다. 원작인 [아이언 머슬]은 총 5권으로 출간된 작품으로(1988년과 1997년에는 각각 3권짜리 단행본으로 재출간) 국내에서는 이중 1,2권을 묶은 [격투기로보트 아이반호 2세]와 4,5권을 묶은 [아이반호 2세 대 격투기 로보트군단]으로 각각 나뉘어 발행되었다.

ⓒ 永井 豪. All rights reserved.


1,2권의 내용은 한라문(본명 하가네 유지로)의 사고와 한광일(본명 하가네 코이치)의 성장과정, 그리고 오딘의 제자 부메랑(본명: 데이빗 엘만)과의 대결을 초반부까지 다뤘고, 4,5권의 내용은 배틀로얄 방식의 태평양 토너먼트전으로 부메랑의 복수에 불타는 의형제 헐크(본명: 잭 고드먼)가 조종하는 킹콩(갓 고렘)과의 혈전, 그리고 토너먼트 우승을 이루는 과정까지를 담았다.

따라서 국내에 출시된 아이반호 2세 판본은 원작의 3권에 해당하는 분량이 통째로 날아갔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부메랑의 폭주와  그가 조종하는 황금뿔(더 루시펠)의 실체, 그리고 이를 제압하는 아이반호 2세의 활약이 담겨있다. 어찌보면 작품 전반의 리얼리즘적인 성향과는 대조적으로 초현실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데다 소년만화로서는 다소 부적합한 암울한 색채라서 삭제된 것으로 보이며, 국내판에서는 부메랑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난동을 피우다가 경찰에게 사살된 것으로 처리되었다. 뭐 상당히 교묘한 수법이긴 한데, 의외로 그럴듯하게 넘어가서 삭제판의 완성도가 더 높아 보이는 착시현상까지 보여준다. 그 밖에 나가이 고 특유의 성인장르적 취향이 드러나는 부분들은 수정, 삭제가 이뤄져 국내에서는 온전히 소년만화로 탈바꿈했다.

[아이반호 2세 대 격투기 로보트군단]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건 황제 오딘과의 결전이 이뤄지지 않은채 도전은 계속된다… 뭐 이런식으로 급하게 마무리 된 점인데, 몇 년을 기다렸건만 끝끝내 후속편은 나오지 않았다. 어렸을땐 그 이유가 무척이나 의아했었지만 실제로는 원작인 [아이언 머슬] 역시 동일한 결말이었기 때문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수많은 복선과 설정들을 뒤로 한 채 이토록 서투른 마무리를 지은 이유는 아마도 [아이언 머슬]이 연재 당시 기대만큼의 인기를 끌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며 그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아이언 머슬]은 나가이 고의 원작중에서 마이너한 그룹에 속한다. 오히려 본 작품은 국내에 ‘아이반호 2세’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해 들어오면서 훨씬 더 많은 인기를 누리는 아이러니를 낳았으니 참으로 인간만사 새옹지마다. 만약 김신일이라는 유령작가의 이름으로 미친척하고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냈더라면 원작을 뛰어넘은 걸작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PS:

1.성운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실체가 없는 유령작가라는 설이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쿵후소년 용소야] 이후 다른 작품들에 용소야의 얼굴을 같다 붙여 개작한 [나인볼황제 용소야], [유도황제 용소야], [축구도사 용소야]와 같은 타 시리즈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실존하는 작가라는 주장도 있는데, 일각에서는 조원기-엄희자 작가의 문하생인 이성운이라는 설도 있으며, 또는 개작 및 표절을 전담하는 일련의 무명작가집단을 통칭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찌되었든 다이나믹 프로에 몸담았던 관련자의 실제 증언이 없는 한 진실은 저 너머로…

2

ⓒ 永井 豪. All rights reserved.

본 작품에는 옥에 티가 하나 있다. 해적판의 실수였나 싶었는데, 원본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오류다. 원래 킹콩(갓 고렘)의 처음 등장씬에서는 왼쪽 그림처럼 다리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본격적인 등장씬에선 탱크처럼 캐터필러를 장착한 기체로 묘사된다. 아마도 나가이 고 자신도 처음부터 킹콩의 디자인에는 특별한 설정을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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