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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김형배 화백하면 [로보트 태권브이]나 [황금날개], [똘이장군] 등 김청기 애니메이션의 코믹스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엄밀히 말해 ‘로보트 태권브이’ 코믹스판의 원조는 김승무 작가라고 할 수 있지만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으로 정면승부를 펼친 김형배 화백에게 판정패를 당한 이후 이 시리즈의 주도권은 김형배 화백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유려한 화풍과 뛰어난 구성력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김형배 화백은 결국 ‘로보트 태권브이’로 인기를 얻어 한국 만화계를 대표하는 SF만화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바벨 3세’나 ‘최후의 바탈리온’ 같은 아류작과 더불어 ‘로보트 태권브이’ 캐릭터 사용에 대한 분쟁 덕분에 오늘날 김형배 화백의 만화 중 정상적인 방법으로 접할 수 있는 작품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비단 김형배 화백 개인에 한정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작품을 구하기 위해 암시장처럼 변질되어 버린 코베이 경매사이트나 뒤적거리고 있어야 하는 현실은 참으로 개탄스럽기 그지없다.

어찌되었든 얼마전 김형배 화백의 작품 중 기억에서도 가물가물한 어떤 작품 하나를 구하게 되었으니 바로 ‘은빛기사: 신비의 우주검객 눈부신 활약’이란 작품이다. 다이나믹 콩콩 코믹스의 짝퉁 디자인 같은 유니콘 코믹스에서 출간했고 다소 긴 제목이 왠지 낯익다 싶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소년동아일보에 1985년 9월 23일부터 연재를 시작해 총 539회로 막을 내린 '은빛기사 브이’의 단행본이다.

ⓒ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은빛기사 브이’는 우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우주대마왕 데블의 일당과 우주여신 코스모스로부터 초능력을 선사받은 은빛기사 브이의 대결을 그린 전형적인 슈퍼히어로물로서 여기서 주인공 은빛기사 브이의 본명은 고스트 훈인데, 이는 훗날 ‘고독한 레인저’ 등 김형배 화백의 작품세계에서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신성검으로 불리는 일종의 라이트 세이버로 악당들을 상대하며, 변신모드에서는 산소헬멧 없이도 우주공간에서의 비행이 가능하다.

ⓒ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혹시 ‘은빛기사 브이’라는 제목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브이가 데리고 다니는 애완로봇 피노의 모습만큼은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눈은 앞마리로 덮혀있고 둥근코를 가진 이 로봇은 평상시 태엽으로 작동하는 구식 로봇에 불과하지만 고스트 훈의 변신과 동시에 그의 사이드킥으로 탈바꿈한다.  

ⓒ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군데군데 코믹한 요소들도 있지만 전체적인 이야기의 전개는 치밀하면서도 진지한 느낌을 지니고 있으며 세계관도 꽤나 방대한 편이다. 그러나 유니콘 코믹스에서 출간된 단행본 ‘은빛기사: 신비의 우주검객 눈부신 활약’은 539화 분량의 모든 에피소드를 담고 있지는 않다. 데블의 수하인 텐터클과의 결전 바로 직전에서 끝이 나며 때문에 여주인공은 마돈나와 샤를르롯데 까지만 등장하며 후반부에 등장하는 사베지와 악당 오즈마, 그리고 최종보스 데블과의 대결은 이 책에 실려있지 않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신성검’이란 제목으로 번역된 일본 해적판 만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역력하지만 ‘은빛기사 브이’는 오랜 기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슈퍼히어로물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서 한국 만화계에도 다양한 장르물이 활발하게 창작되고 있던 시절의 소중한 유산이자 이미 '황금날개'를 통해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의 서사구조를 보여준 김 화백의 장기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반쪽짜리 에피소드만을 담고 있는 단행본 ‘은빛기사’는 그마저도 절판된지 오래라 김형배 화백의 팬들에게 있어 희귀한 아이템이 된지 오래다. 언젠가는 온전한 분량이 담긴 단행본으로 다시금 팬들의 추억을 되살려주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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