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책을 살펴보기에 앞서 '인문학'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자. 위키피디아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인문과학(人文科學, 영어: humanities)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
뭔가 거창하면서도 포괄적인 느낌이다. 간단히 말해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학문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 전반에는 인문학의 개념을 들이댈 수 있다. 하다못해 B급 슬래셔무비나 에로영화에도 감독의 사유와 의도가 담겨있을 터다. 그것이 1%가 되었든 99%가 되었든 간에 생각없이 만든 결과물은 없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에 대해 분석적인 접근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굳이 없어도 되는 1%의 의미를 찾아낼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일 뿐이다.
얼마전 유명 애니메이션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이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분석서가 꽤 많이 출판되었는데, 한때의 붐에 그친 것인지 요즘은 애니메이선 관련 책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데 실로 오랜만에 나왔다.
이 책에서는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진격의 거인],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는 [원피스], 등가교환의 법칙을 각인시킨 [강철의 연금술사], 내게 열혈근성을 되찾아준 [천원돌파 그렌라간] 등 항간의 화제가 된 주요 작품들에서 인문학적인 의미를 고찰해낸다. 가령 저자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 '진보'의 가치를 찾아낸다. 우주의 생존과 보존을 위해 인간의 진보의 가능성을 억압하고 공격한 안티 스파이럴과 이러한 억압에 저항한 인류의 대립구도가 이 작품의 문제의식이라고 말한다.
또한 [진격의 거인]은 자기의 영달을 추구하는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평가한다. 거인과 싸우는 기술이 뛰어난 이들일수록 거인과 싸우려 하지 않고 자기 안전만 추구하는 모순이야말로 현대의 우리 사회와 닮아 있음을 꼬집고 있다.
[애니메이션에 빠진 인문학]은 이러한 작품들 속에서 다양한 담론들을 꺼내어 이를 비평가들의 현학적이고 거창하게 포장된 문장이 아니라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글쓰기로 담아놓았다. 비단 작품에 대한 분석과 인문학적 요소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리뷰나 블로그 운영의 작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이 글쓰는 방법을 배우기에도 좋은 참고서다.
더불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접해봤을 법한 작품들 속에서 과거와 현대인의 삶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통찰하는 작가의 글솜씨가 맛깔나게 다가온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얼마나 많은 애니메이션들이 단순히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 취급을 받아가며 멸시받고 업신여김을 당했던가. 그런 세월을 뒤로 한채 이렇게 하나의 문화로서 그 문화속의 인문학적 해석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는 면에서도 본 책의 시도는 값진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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