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에서 개봉한 [토일렛]을 보러 회사가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원래는 정말 함께 가고 싶은 분이 있었는데, 상영시작이 저녁 8시라 표는 내가 예매한다해도 도저히 밥먹고 자시고 할 타이밍이 나오질 않을 것 같아서 부득이 혼자 가야만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광화문에 도착하니 7시 40분. 주변엔 왜이리 그 흔한 김밥천국도 보이질 않는지... 근처의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이라도 급히 먹을려는 찰나, 지인 블로거분께 전화가 와서 잠시 통화를 하고 허겁지겁 먹는둥 마는둥 스폰지 하우스에 들어갔습니다.
다행이 늦지는 않아서 좌석에 앉자마자 영화가 시작되더군요. [토일렛]의 리뷰는 담주 중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토일렛]은 [카모메 식당]으로 '슬로우 라이프 무비'의 이정표를 제시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신작입니다. 워낙 국내에도 탄탄한 매니아층을 형성한 감독이어서 객석이 꽉 찼더군요. (그런데 제 옆좌석은 한자리가 비었더랬습니다. 좀 아깝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기대하고 고대하던 오기가미 나오토 감독과의 GV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지금껏 한국에서 나오토 감독의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초대되어 감독과의 GV 시간을 가졌었는데, 그만큼 한국의 팬들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으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을 만났습니다.
GV는 약 40분 가량 진행되었는데, 그때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질 만한 질문과 답변이 더러 있었습니다. 가령 이번 [토일렛]에서도 [카모메 식당]처럼 음식에 대한 교감을 다루는 내용이 나오는데, 한 관객이 나오토 감독님도 음식을 잘 하는 편이냐고 묻자, 자기 남친이나 남편될 사람은 음식을 좀 잘 만드는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대답으로 자신은 음식에 재주가 없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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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상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식사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는 가족'이라고 간단히 대답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대답안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있더군요. 당장 저만해도 가족과 같이 저녁을 먹는 시간이 부쩍 줄었으니 말입니다.
아, 저도 나오코 감독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원래는 그녀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우 모타이 마사코에 대해서 물어볼 참이었는데, 바로 전에 어떤분이 물어보셔서 다른 걸 질문했지요. 사실 영화를 보면서 어딘지 낯익은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감독님의 작품들에는 공간적인 이동이 그리 많지 않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로케이션 장소를 선정하는 것도 꼼꼼하게 검토할 것 같다. 이번 [토일렛]에서 촬영지를 캐나다, 아마도 토론토를 택한 것으로 보이는데, 특별히 캐나다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오코 감독은 이런 취지의 대답을 하셨죠.
'내 영화가 빵 터지는 웃음은 없어도 소소한 유머들을 종종 사용하는데, 그러한 유머를 다른 언어로 표현했을 때도 관객에게 통하는지 확인하고 싶어 전체 대사를 영어로 설정했다. 그러다 보니 북미쪽 로케이션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캐나다, 서부쪽은 왠지 좀 쓸쓸한 느낌이 들었지만 동부쪽은 오래된 옛날 가옥들도 많고 정겹다는 느낌이 들어서 토론토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는데, [토일렛]을 보면 극중에 '핀란드'를 몇 번인가 언급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핀란드는 감독의 전작 [카모메 식당]의 배경이 된 곳이죠. 그래서 핀란드가 감독에게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는데, 이 부분은 영화의 내용과 관련이 있어서 굳이 지금은 밝히지 않겠습니다만 영화의 설정 중 일부는 핀란드에서 [카모메 식당] 촬영당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하네요.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과의 GV 동영상 일부 (어두워서 초점을 잘 못맞췄네요)
아무튼 언제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운 GV가 끝나고 스탭분들과 나오코 감독이 퇴장하자 잽싸게 뒤따라 나가서 준비해 간 [카모메 식당] 디지팩 한정판 DVD에 싸인을 받았습니다. 악수도 했구요. 제 싸인펜을 그냥 가지시려고 하시길래 돌려달라고 하는 객기도 부려봤습니다. ㅡㅡ;;
이렇게 해서 아마 올해 마지막이 될 유명 인사와의 만남이 끝났습니다. 알고보니 나오코 감독이 저보다 나이가 조금 위인 누님 뻘이시더군요. 헐... 아직 마흔도 안되셨는데, 이렇게 삶을 조용히 성찰하는 느낌의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참 존경스럽습니다.
P.S: 올해는 가만있어보자.....연초부터 박찬욱 감독을 만나고,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도 만나고, 안젤리나 졸리 레드카펫 행사도 보러 가고, 오기가미 나오토 감독도 만나고... 꽤 많이 만났군요. 뭐 시사회나 각종 행사장에서 연예인들은 많이 봤습니다만..... 언제 한번 포스트로 정리해 '올해 만난 연예인들' 해서 올리든지 해야겠습니다. 아, 며칠전에 내한한 시고니 위버 여사를 못만난게 한이로군요. 집에서 10분거리에 있는 신라호텔에서 강연을 했던데... 너무 아쉽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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