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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전사 건담 연대기 No.4














1988년, 한국에서는 올림픽이라는 개도국 최대의 이벤트로 온 나라가 들떠있던 시기. 돌이켜보면 요즘 같은 인터넷 세대들이 이해하지 못할 궁색한 문화생활을 즐기던 것이 필자 세대의 학창 시절이다. 당시의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문화라 봤자 주간지 '아이큐 점프'를 통해 처음으로 정식 연재되기 시작한 만화 '드래곤 볼'과 유수의 해적판 만화책들, 그리고 일부 부유층(?) 매니아 녀석들이 은밀히 빌려주던 복사판 비디오 테잎 정도였다. 항간에는 오로지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본없이' 보기위해 일본어를 독학한 천재들도 있다는 전설이 들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최초의 국내 자체제작 TV 애니메이션인 [떠돌이 까치]가 공중파를 통해 방영되었다.

ⓒ 創通/ サンライズ All Rights Reserved.


한편 같은 해, 일본에서는 애니메이션계를 뒤흔들 만한 작품이 등장했는데, 무려 9년이나 지속되어 온 '우주세기 건담'(정확히는 1년전쟁 스토리)에 종지부를 찍은 작품, [역습의 샤아]가 그것이다. 연령층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ZZ건담]의 악몽을 뒤로한 채 토미노 감독이 선택한 카드는 [퍼스트 건담]의 라이벌, 샤아와 아므로의 마지막 대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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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의 두 라이벌, 샤아와 아므로의 최후의 결전

 

이같은 계획은 [ZZ건담]의 방영도중에 결정되었는데, 샤아 아즈너블이 [ZZ건담]의 오프닝에는 등장하면서도 시리즈가 끝날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만약 [역습의 샤아]가 계획에 없었더라면 필자가 기대해 마지 않은 하만 칸 vs 샤아의 리턴매치를 [ZZ건담]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ZZ건담]의 다음 이야기인 [역습의 샤아]는 TV판이 아니라 극장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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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으로 선보인 [역습의 샤아]. '너는 아직 진짜 건담을 모른다'는 도발적인 문구가 메인 카피였다. 

 

 

반면에 1988년의 일본 극장가는 다른 만만찮은 작품들도 줄줄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전통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가 만든 [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 그리고 오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 같은 대작이 그것이었다. 따라서 [역습의 샤아]는 기존 팬들의 욕구를 충족 시킴과 동시에, [ZZ건담]에서의 오명을 씻고 극장 흥행도 성공해야 하는 여러 가지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기동전사 건담]의 극장판 3부작과는 달리 [역습의 샤아]는 기존의 TV을 편집한 '재활용'이 아닌, 순수한 의미에서의 '첫번째 극장판'이었기에 제작비의 회수부담과 동시에 2시간짜리 단일 이야기로 전체 내용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었다.

 

 



[역습의 샤아]는 건담 사상 가장 파격적이고 진지한 작품으로 선을 보였다. U.C 93년, 일년전쟁으로부터 14년이나 흐른 시점으로 설정한 시대배경은 어른이 된 초창기 건담팬들의 정서에도 쉽게 동화되었으며 세월의 무상함을 알려주듯 중년이 된 두 주인공 아므로와 샤아의 연륜이 화면가득 묻어나오는 진정한 '리얼 로봇 애니메이션'이었던 것이다. [ZZ건담]의 우스꽝스러운 유머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반대로 [Z건담]의 특징을 이룬 암울한 분위기가 상영시간내내 작품 전반을 지배한다. 아마 토미노 감독은 이제야 내가 나아갈 건담의 방향을 잡았다는 듯, 거침없이 '학살의 토미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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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습의 샤아]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우주세기 1년전쟁의 결말이라는 것 이상이다. 선라이즈 최정예의 애니메이터가 총동원되고 가이닉스의 기술지원을 받아 메카닉 작화를 보강하면서도 일체의 하청작업을 배제한 작품의 퀄리티는 지금봐도 대단하다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이후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퀄리티 자체를 업그레이드시킨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게다가 아주 일부분이긴 하지만 당시로선 최첨단 기술인 CG도 도입되었다니 이 작품이 가진 선구자적 위치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또한 TM Network가 부른 주제가 'Beyond the time'은 그해 내내 각종 차트를 석권하는 저력을 보여주어 향후 아니메에서 주제가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 創通/ サンライズ All Rights Reserved.
캐릭터-메카닉 디자인, 작화, 스토리, 음악 등 당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역습의 샤아]가 모든 팬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특히 타이틀롤을 맡은 샤아 아즈너블이란 캐릭터는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많은 논쟁거리였다. 사실 '우주세기 건담'에 있어서 샤아가 가진 인기는 그 어떤 주인공보다도 월등한 것이어서 애당초 그를 매력적인 '악역'정도로 설정해 놓은 토미노 감독조차 의아해 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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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역습의 샤아]에서 보여준 샤아의 모습은 기존의 이미지와 사뭇 다른 것이었는데, 이를테면 느끼하게 올백으로 넘긴 '아저씨'필의 헤어스타일이라던가, '개똥철학'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지온재건의 이상향, 게다가 라라라 슨의 일로 괴로워 하면서도 퀘스 파라야를 전장의 도구로 이용해 과오를 되풀이하는 비윤리적인 모습은 그간 '매력남 샤아'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일부 샤아의 팬들 사이에선 '고의적인 샤아 죽이기'라는 악평을 들어야 했으며, 더욱이 아무로와 샤아가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암시하는 엔딩씬의 충격은 [Z건담]에 이어 또한번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극장판 [역습의 샤아]는 이렇게 우주세기 건담 제1세대의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마무리 짓게 되지만 이를 분기점으로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또다른 흥미를 자아낸다. 알다시피 건담 시리즈는 애니메이션 외에도 소설과 코믹스로도 계속 출간되어 왔는데, [역습의 샤아]의 경우는 두 개의 다른 설정을 갖게된다. 그 이유는 소설판 '역습의 샤아'가 2개의 다른 스토리를 가지고 출간되었기 때문인데, 놀랍게도 두 편 모두 토미노 감독이 저술한 오리지널이다.

 

ⓒ 富野由悠季/ アニメ―ジュ-文庫 All rights reserved.
[역습의 샤아]의 원안이 된 '기동전사 건담 -하이 스트리머' 3부작

 

그 중 '기동전사 건담 -하이 스트리머'는 극장판 [역습의 샤아]의 원작이 된 소설로서 아므로를 비롯한 각 인물들을 중심으로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한편의 소설은 '벨토치카 칠드런'이다. '벨토치카 칠드런'은 원래 '하이 스트리머'를 토대로 쓰여진 극장판의 초기 원고를 출간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벨토치카 칠드런'을 [역습의 샤아]의 원안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역습의 샤아]는 '하이 스트리머'에서 나왔다).

 

ⓒ 富野由悠季/ 角川 スニ―カ―文庫 All rights reserved.
또다른 분기점을 이루는 3부작 '벨토치카 칠드런', '섬광의 하사웨이', '가이아 기어'

 

따라서 극장판 [역습의 샤아]에서 사용된 설정과 '벨토치카 칠드런'사이에선 몇가지 차이점을 보이며 바로 이 때문에 [역습의 샤아]에서 또다른 분기점을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벨토치카 칠드런'의 또다른 엔딩으로 인해 이어지는 소설이 바로 '섬광의 하사웨이'인데, 극장판 [역습의 샤아]에서 가장 얼빠진 캐릭터인 하사웨이 노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후속편이지만 안타깝게도 극장판 [역습의 샤아]와는 설정상의 문제로 인해 영상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섬광의 하사웨이'는 샤아의 클론, 아프란시 샤아를 주인공으로 한 '가이아 기어'로 이어지며 이 책을 끝으로 토미노 감독이 쓴 문고판 일년전쟁의 역사는 마무리 된다.

Designed by 森木靖泰/ ⓒ 角川 スニ―カ―文庫 All rights reserved.
'벨토치카 칠드런'에 등장하는 설정상의 기체, '하이뉴 건담'과 '나이팅게일'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두 주인공의 죽음, 그리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지온의 이름과 함께 우주세기를 열었던 건담 스토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같은 끝맺음으로 인해 토미노 감독은 [퍼스트 건담]시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이제 새로운 세대의 건담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창작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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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결과는 어찌되었건간에, 토미노 감독이 이끌었던 4부작의 건담이야기([ZZ건담]을 제외하고)는 매우 만족스러웠으며 그 실험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매니아들과 열혈팬들을 양상하는 등 일본 아니메 시장의 전체적인 판도를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비록 토미노 감독의 1세대 건담은 결말을 맺었지만, 건담을 보고 자란 수많은 아이들이 자라서 나중엔 1년전쟁의 외전(사이드 스토리)이 속속들이 제작되었고, 이는 토미노 감독의 건담에서 아쉬웠던 여러 부분들을 차례로 보충해 나가 '건담 월드'를 더욱 살찌우는 계기가 되었다. 건담의 전설은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새로이 시작된 또다른 건담의 모습을 확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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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노 감독의 [역습의 샤아]에 대한 애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 [건담 이볼브]의 5번째 에피소드에 토미노 본인이 직접 참여해 또다른 스토리의 [역습의 샤아]를 연출하였다. 짧지만 CG로 리모델링 된 명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 [역습의 샤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創通/ サンライズ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건담의 이미지 사용에 관한 설명은
이곳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참고 스틸: 기동전사 건담 -하이 스트리머 (ⓒ 富野由悠季/ アニメ―ジュ-文庫 All rights reserved.), 벨토치카 칠드런, 역습의 하사웨이, 가이아 기어(ⓒ 富野由悠季/ 角川 スニ―カ―文庫 All rights reserved.), 건담 이볼브(ⓒ 創通/ サンライズ /Bandai. All Rights Reserved.), 아키라(ⓒToho Co. Ltd.) 반딧불의 묘, 이웃집 토토로(ⓒ Studio Ghibli, Inc.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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