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99
1976년 6월 28일 오전11시30분 JAL기편으로 세계 해비급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가 한국을 방문해 큰 이슈를 낳습니다. 이러한 빅 이벤트를 성사시킨 장본인은 재미교포 이준구(미국명 준 리 Jhoon Rhee) 사범으로 알려졌는데, 각 언론은 알리의 내한 이전부터 이준구 사범에 대한 프로필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합니다. 1957년에 도미, 워싱턴시와 인근지역에서 무려 34개의 태권도장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그는 '알리가 방한요청을 승낙한 것은 순전히 우정에 대한 보답'이라며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기도 했는데요, 이 일을 통해 '태권도 민간외교대사'로서의 위상을 단시간에 확보하게 됩니다.
출처: 경향신문 1976.6.28.
사실 이준구 사범은 이 때 처음 알려진 건 아닙니다. 사실 그는 이소룡의 인기가 무르익을 무렵인 1973년에 황인식, 황가달, 홍금보 등과 출연한 [흑권]이라는 영화로 영화계에 데뷔를 하게 되는데요, 이 당시 국내 언론에서는 '이소룡의 태권도 스승'이자 FBI, CIA 교관 등을 지낸 이준구의 주연영화라며 호들갑스럽게 홍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소룡과 이준구 사범과의 관계는 사제지간이 아닌 무도가 대 무도가의 교우관계일 뿐, 이 점에 있어서는 다소 과장이 된 셈이지요. 그럼에도 이 영화는 이소룡 신드롬을 등에 업고 무려 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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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소룡, 무하마드 알리 등 세계적인 인사들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알려지게 된 이준구 사범이 다시금 국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80년대 초. 미국인 제자인 랜디 앤더슨을 데리고 한국에 귀국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이준구 사범은 랜디와 함께 어떤 영화를 제작중에 있었는데, 그것이 오늘 소개하게 될 [돌아온 용쟁호투]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잠깐, [용쟁호투]라고요? 이소룡이 헐리우드에 정식으로 데뷔했던 바로 그 [용쟁호투]의 후속편에 이준구 사범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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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또~ 제목으로만 보자면 [돌아온 용쟁호투]는 분명 [용쟁호투]의 속편처럼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사실 이 같은 현상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 사이에 쏟아져나온 국적불명의 권격영화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인데요, 이소룡의 [사망유희]를 교묘히 연상시키는 [사망탑]의 경우나 한중합작의 [속 정무문], [불타는 정무문],[최후의 정무문] 등 이소룡 주연작의 무수한 짝퉁 속편들이 속출하게 되었지요.
불타는 정무문 ⓒ 남아진흥/최후의 정무문 ⓒ 태창흥업. All rights reserved.
근데 특이하게도 [돌아온 용쟁호투]는 태권사범 이준구의 두 번째 주연작이기도 했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랜디 앤더슨의 데뷔작이라는 점을 더욱 강조하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이 사람이 누구인고 하니 1972년 닉슨 정부가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을 비밀리에 지원한 사실을 폭로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저명 칼럼니스트 잭 앤더슨의 아들이었던 겁니다. 심지어는 잭 앤더슨 본인도 [돌아온 용쟁호투]의 국내 시사회에 아내를 데리고 참석할 정도로 기대감을 나타냈는데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아들 랜디가 로버트 레드포드나 폴 뉴먼 보다 젊기 때문에 더 유망하며 배우로서의 아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단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기의 명배우들을 가볍게 즈려밟는 발언을 해주십니다.
출처: 매일경제 1980.9.6.
그럼 [돌아온 용쟁호투]는 잭 앤더슨이 기대한것처럼 로버트 레드포드나 폴 뉴먼도 울고갈만큼의 수작이었던 것일까요? 우선 내용부터 살펴봅시다.
영화는 헤롤드(랜디 앤더슨 분)라는 서양인이 브란코프라는 이름의 남자를 찾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무엇인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듯한 그 남자는 브란코프의 제자들을 때려눕힌 뒤 브란코프가 홍콩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고 다시 발길을 옮깁니다. 사부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홍콩에 나타난 헤롤드는 브란코프와 맞붙지만 실력부족으로 떡실신이 되어 어느 의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한편 홍콩에서는 이소룡의 사부였던 이준(이준구 분)이 영화사와 계약을 맺고 촬영에 임하지만 태권도가 아닌 쿵푸연기를 강요당해 출연을 거부하다가 계약위반으로 몰려 막대한 손해배상을 해야할 입장에 놓입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장돌뱅이 펭은 이준의 태권도 솜씨를 돈벌이에 이용하려고 감언이설로 그를 설득합니다. 그렇게 돈을 벌던 어느날 이준의 태권도 묘기를 보러 홍콩 암흑가의 보스 호(한국재 분)와 그의 절친 브란코프가 나타나 준에게 큰 부상을 입힙니다. 준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헤롤드가 치료중인 의원에 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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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은 준이 벌어들인 돈을 빼돌려 도망가고 그렇게 낙동강 오리알이 된 준은 자신에게 꼭 태권도를 전수해달라는 헤롤드의 청을 받아들여 그의 스승이 됩니다. 이제 준에게 무적의 태권도를 전수받은 헤롤드는 사부의 복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인지...(아니 근데 홍콩 암흑가의 보스 호는 왜 덩달아 응징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_-)
난닝구에 추리닝 바지 차림을 한 주인공 준의 저렴한 의상은 비장한 순간에 코웃음을 자아내며, 있으나 없으나 극의 흐름에 별 도움이 안되는 만화같은 캐릭터 팽의 오도방정은 몰입을 방해하고, 애초에 영화찍으러 홍콩에 왔다가 소송에 휘말린 주인공이 암흑계의 보스를 응징하게 되는 과정역시 개연성이 너무나도 결여되어 있어 전체적인 영화의 흐름과 부조화를 이룹니다. 이준구 사범은 이 작품을 통해 태권도의 정신을 알리려 한 듯 보이지만, 글쎄요... 그런 교훈점이 별로 잘 먹혀들 만한 내용의 영화가 아닌건 분명합니다.
ⓒ ㈜현진영화사. All rights reserved. ⓒ ㈜현진영화사.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이 작품은 2만4천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며 완성도에 비해선 의외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고 심지어는 미국에까지 수출되는데요, 기록에 따르면 1980~1985년 사이, 미국에 수출된 한국영화는 [돌아온 용쟁호투] 단 한편 뿐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과 관련해서도 재밌는 일화가 있는데 제작사인 현진영화사는 수입사 측에 [돌아온 용쟁호투]를 30만 달러 (당시 2억원)에 사가던지, 싫으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똥배짱을 부립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재밌습니다.
출처: 동아일보 1981.3.9.
이 영화가 그만한 흥행가치가 있어서가 아니고 미국 시장에 내놓기가 부끄러워서, 터무니없는 고가를 제시한 것이지요. 당시 현진영화사 김원두 사장은 '작품을 내놓는데 자신이 없다. 팔기 싫은데 팔라니까 터무니없는 고액을 불러봤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측이 이 영화를 악착같이 사가려 했던 이유는 아까 언급한 잭 앤더슨이 아들의 출세를 위해 이 영화를 미국에 선보이려 했던 것이었고 더 나아가 미국에서의 쿵푸영화가 시들해지자 태권도 영화로 재미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돌아온 용쟁호투]는 1만달러에 수출 계약을 맺게 됩니다. 그렇게해서 랜디 앤더슨은 폴 뉴먼이나 로버트 레드포드를 뛰어넘는 불세출의 스타가 되었느냐구요?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로 들어가셔서 그의 초라한 필모그래피를 직접 확인해 보세요.
[돌아온 용쟁호투]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게 연출을 맡은 박우상 감독인데요, 임권택 감독 밑에서 7년 이상 조감독 생활을 한 그는 1971년 [맹인 대협객]으로 데뷔, 본인 스스로가 태권도 5단의 공인된 실력을 갖고 있었던 만큼 나름 색깔있는 액션영화를 추구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군부의 검열에 심한 염증을 느껴 197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태권도 사범 생활을 하면서 헐리우드 B급 액션물을 연출한 조금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됩니다. [돌아온 용쟁호투]는 바로 미국으로 건너간 다음 만들게 된 첫 번째 영화인 셈이지요. 이후에 박우상 감독은 [내 이름은 쌍다리], [광동관 소화자] 등의 무국적 권격영화와 더불어 [킬 더 드래곤], [닌자 터프] 같은 헐리우드 영화를 발표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연출한 [무등산 타잔, 박흥숙]이 있는데, 이것 역시 희대의 괴작이 되어버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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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무술실력을 보여주는건 이준구 사범보다는 악역으로 나온 한국재인데요, 그가 선보이는 공중 2단차기의 유려한 몸동작은 이 괴작스런 영화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씨퀀스입니다. 그 외에 7,80년대 괴작영화의 단골 출연배우인 '쌍라이트' 조춘, 김유행의 모습도 무척이나 반갑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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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인 이준구 사범은 이 작품을 끝으로 영화를 찍지 아니하였고, 태권도 사업의 육성에만 매진했는데 1993년에는 러시아 연방 최고회의에 태권도 클럽을 창설하는 등 여전히 해외의 태권도 민간외교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그에게는 스포츠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이 세기 최고의 무술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주어졌지요. 어찌보면 [돌아온 용쟁호투] 이후 영화계에서 떠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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