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에 있어서 견공의 존재는 남다르다. [벤지]나 [베토벤]같이 아예 인간보다 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들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정작 영화속에서 개가 죽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미국인들의 '개 사랑'은 유별나다.
어찌보면 [하치 이야기]는 이런 미국인들의 애견코드에 충실한 영화처럼 보인다. 주인이 죽은 후에도 10년간 기차역에 매일같이 마중나와 결국 나중에는 동상까지 만들어진 충견의 이야기이니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에 딱맞는 작품이 아닌가. 하지만 [하치 이야기]가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는 사실은 의외임과 동시에 막연한 불안감을 안기는 것도 사실이다.
ⓒ Sony Pictures Entertainment (SPE) Worldwide Acquisitions Group. All rights reserved.
원래 [하치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1920~30년대 일본의 경직된 보수적인 사회다. 더군다나 개와 교감을 나누는 사람은 나름 상위층의 격조높은 삶을 살아야 했던 신분의 대학교수였고, 오갈데 없는 사람들이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는 마당에 개에게 쏟는 애정의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다.
원작의 감동이 특별했던건 10년간 기차역에 마중을 나갔던 하치의 불가사의한 충성심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과거의 일본 사회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원작에서 주인공 하치가 주인이 사망한 이후 변변한 새주인을 맞이하지 못하고 노숙견으로 전락해 온갖 수난을 겪는 것도 당시 개에 대한 일반적인 가치관이 오늘날보다 훨씬 뒤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원작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면 [하치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헐리우드가 원하는 애견영화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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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리메이크만의 장점도 있다. 1987년 원작영화의 완성도가 뛰어나긴 했지만 다소 건조한 느낌에다 무엇보다 하치 역을 맡았던 아키타 견의 뻣뻣한 연기가 옥의 티였던 반면, 헐리우드판 [하치 이야기]는 그런 단점을 보완함과 동시에 (실제로 하치를 연기한 동물배우 라일라는 제작진들 사이에서 ‘아키타계의 메릴 스트립'으로 불렸다 한다) 미국인들의 입맛에 걸맞게 달콤한 느낌으로 각색되어 상업적 요소를 강화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일반적인 가족영화로서 즐기기에는 그다지 큰 무리가 없는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영화로 만족할 거였다면 굳이 일본원작을 들여와 무리하게 리메이크를 할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실력파 감독 라세 할스트롬이 메가폰을 잡고, 그와 함께 [혹스]에서 한차례 손발을 맞췄던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아 제법 보기좋은 구색을 갖추었음에도 이 작품이 북미시장에서 개봉도 못해보고 DVD로 직행했던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원작에서 중요한 곁가지들을 과도하게 쳐낸 리메이크작 [하치 이야기]는 리메이크로서도 애견영화로서도 어딘지 부족한 작품이 되어 버렸다.
* [하치 이야기]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Sony Pictures Entertainment (SPE) Worldwide Acquisitions Group.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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