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 마리로 조그만 밭을 일구면서 살아가는 한 농부가 있다. 식구는 많고 가난하지만 하루 종일 땀흘려 일하며 재배한 곡식과 채소로 그들은 굶지 않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실제로 농부네 가족은 자신들의 삶이 그다지 불만스럽지도 않다. 그러다가 어느날 농부는 밭을 갈던 중 땅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것은 출처를 알 수 없는 황금 덩어리이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열 개는 족히 넘는 듯 하다. 이제 농부의 가족은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땀흘려 일할 필요가 없다. 소가 필요없어지자 그들은 항상 먹고 싶었던 고기를 먹기 위해 자신들의 소를 잡는다. 황금을 팔아 대궐같은 집을 짓고 최고급 승용차에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과 오디오를 갖춘다. 이것저것 사고나니 황금이 거의 떨어졌지만 근처의 땅을 좀 더 파자 몇 개의 황금이 더 나온다. 그것으로 그들은 호화로운 식사와 여흥을 즐긴다. 아이들은 물쓰듯 돈을 써대기 시작했고, 아내와 남편도 예외는 없다.
이제 슬슬 남은 황금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농부는 다시 땅을 파본다. 그러나 황금은 없다. 설마 싶어 여기저기 땅을 파헤치고 이것만으로 안되자 중장비를 동원해 자신의 밭을 바닥까지 깊숙히 파내보지만 황금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농부의 가족들은 돈맛을 알았다. 예전의 그 고생스럽던 생활은 이제 꿈도 꾸기 싫다. 씀씀이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찰이 없자 이들은 카드를 긁기 시작하며 이윽고 카드는 한도액을 초과해 연체되기 시작했다. 집이 차압당하고 집안의 물건들이 저당잡히는 와중에서도 농부와 그 가족들은 설마 우리집이 없어지겠냐는 생각으로 사치를 멈추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모든걸 잃었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밭을 갈며 자급자족하던 농부의 생활로 돌아갈 수도 없다. 소는 이미 자신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소화된지 오래됐으며, 땅은 황금을 찾느라 파헤쳐져 농사를 지을 밭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자 그대로 그들은 '망했다'.
ⓒ Elzévir Films/Europa Corp. All rights reserved.
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렇게 멍청한 가족이 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하는가? 물론 그럴 것이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이라면 절대 위의 농부처럼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과연 저게 남의 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지만 그렇지가 않다. 우리 인간 모두는 지구라는 거대한 집에 거주하는 거주민이다. 집 주위엔 땅이 있고 그날그날을 먹고 살 만한 천연 자원의 혜택이 널려있다. 비록 고생스럽지만 이러한 자원-태양, 물, 흙-을 통해서 우리는 먹을만큼은 얻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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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00년대 인류는 땅속에 묻혀있던 검은 '황금'을 발견했다. 석유의 발견과 사용은 생활의 패턴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람들은 더는 강렬한 태양아래 살갗을 태워가며 일하지 않아도 먹을 수 있고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석유를 이용하는 기계를 발달로 인해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곡식이 과생산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렇게 생산되는 곡물의 상당수는 인간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이 잡아먹기 위해 키우는 소의 사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소들이 비만에 걸릴 정도로 먹고 또 먹어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갈 동안 지구촌 한구석에선 하루끼니를 먹을 수 없어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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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지구촌 시스템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리석은 농부처럼 절제하지 못하는 인류의 현재 모습이다. 석유가 마냥 뿜어져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한계점까지 끌어올려 소모하고 있다. 그 결과 온난화라는 치사적이 재앙이 닥쳤다. 인류는 불과 50년 남짓한 사이에 지구를 너무나도 혹사시켰다. 바다의 어선들은 말 그대로 '씨를 말리는' 정도의 수준까지 샅샅히 그물로 훑어내고 있으며, 생산의 극대화를 위해 단일품종경작에 매달린 인류는 비옥한 토양을 사막으로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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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줄어드는 밭을 확보하고자 숲과 습지대가 개간되었으며 이는 또다른 자연의 물순환 시스템을 파괴해 버렸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물순환의 파괴는 곧 죽음을 뜻한다. 그 징조는 벌써 여러 지역과 나라에서 드러나고 있다.
[불편한 진실], [11번째 시간], [지구], [북극의 눈물] 등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환경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 수 있듯 갈수록 심각해져가는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과소비 풍조로 인한 자원고갈에 대한 호소는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지만 이를 위한 변화의 움직임은 사실 미미하다.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개봉된 다큐멘터리 [홈]은 우리의 '가정'인 지구를 영영 잃어 버리기 전에 제발 마음을 고쳐먹고 소박한 생활로 돌아가 자연에 순응하라는 간곡한 호소를 하고 있지만 역시나 공감은 가면서도 막상 개개인의 가진 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역설하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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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치와 편안함, 풍요로움의 맛을 알아 버린 인류는 그들의 안락함을 포기할만큼 박애주의자들이 아닌 것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언젠가는 부딪힐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는, 인류의 과소비 풍조는 이미 폭주를 시작해 멈출줄을 모른다. [홈]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지만 그 실천방법과 호소력에 있어서는 무력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수많은 데이터들과 자연파괴의 증거를 제시한다한들 결론적으로 이 위기를 타계해 나갈 유일한 방법은 인류의 '사랑'뿐이라는 비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홈]은 이전의 다른 다큐멘터리보다 더욱 강력한 충격요법으로 인식의 전환을 시도해 보려하지만 절대다수의 무지한 사람들은 지구가 멸망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아니, 설사 머리로는 이해한들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고 그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이 다큐멘터리를 감상할 수밖에 없다는 편이 맞겠다. 그래서 이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정작 국내 관객들에겐 큰 호응을 얻을 수 없겠다는 사실을 생각히니 마음이 더 아프다.
P.S: 오랜만에 휴가를 내어 연휴를 보내던차에 [홈]의 개봉사실을 알고 예매사이트를 기웃거렸으나 근처에는 압구정 CGV하나밖에 상영하는 곳이 없더라. 별로 즐겨 찾는 상영관은 아니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 극장을 찾았건만 아뿔사. 도대체 왜 이걸 '더빙'해서 상영하는 것인가? 기왕 더빙할거면 전문성우나 하다못해 유명배우([지구]때는 장동건이라도 썼지)라도 쓰던가. 영 찜찜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 TV를 보고 있는데, SBS에서 극장과는 달리 전문 나레이터가 더빙한 [홈]을 방영하는 것이 아닌가? 알고봤더니 [홈]은 전세계 동시에 극장 및 DVD발매, 인터넷, TV방영이 동시에 이루어진 이벤트성 다큐멘터리였던 것이다. 어쩐지... 상영관이 하나밖에 없더라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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