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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난다. 아마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라고 생각되는데, 제법 가난했던 시절이지만 어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세종문화회관까지 가서 지금은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어떤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주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새끼 북극곰 한 마리가 눈덮힌 비탈길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굴러 내려오는 장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인상깊게 봤던 탓인지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다시 한번 보겠다고 떼를 쓰며 어머니를 난처하게 했던 기억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아기 북극곰의 사랑스런 모습을 정말 스크린에서만 봐야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북극이 녹고 있기 때문이다.


School children ask Interior Dept. to protect polar bears in Washington


지구온난화에 대한 경고는 아무리 강조한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BBC 방송국의 역작 [살아있는 지구]나 엘 고어의 정치적 역량이 십분 발휘된 [불편한 진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11번째 시간] 등 해외의 많은 환경 다큐멘터리들은 재앙으로 치닫는 지구의 자멸적인 위기상황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으나 아직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여기에 한 목소리를 보탠 것이 작년 12월, MBC 창사 47주년 특집으로 제작된 3부작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이다. 방영당시 12.1%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TNS미디어코리아 자료)하며 국산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알린 이 작품은 국내 최초로 시네플럭스라는 항공 전문 촬영 장비를 사용해 9개월간의 촬영기간, 제작비 총 20여억 원을 투입해 규모면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BBC 방송국의 [살아있는 지구]가 매끄러운 편집을 거쳐 극장판 [지구]로 재탄생 한것처럼 이제 [북극의 눈물]은 TV방영본을 81분짜리 극장판으로 축약시키고 보다 완성도를 높혀 다시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 MBC/실버스푼/MBC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북극의 눈물]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사라지는 빙하 때문에 먹이를 찾지 못해 굶어죽어가는 북극곰과 일각고래를 잡아 생활해가는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들의 이야기, 그리고 툰드라 지역을 횡단하는 순록떼. 이렇게 각기 다른 생명체들이 삶의 터전과 생활방식을 잃어가는 과정을 통해 온난화의 실질적 피해를 묘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내용이라 하겠다.

애당초 [북극의 눈물]은 기존의 해외 다큐멘터리처럼 과학적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나 예술작품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시각적 감흥에 초점을 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적인 특유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화면과 거친 촬영기법이 특징을 이루는데, 이를테면 고래나 바다코끼리의 사냥과 해체작업이 여과없이 보여져 유혈낭자한 고어적 화면이 한가득 펼쳐지기도 한다. 따라서 전체관람가의 작품치고는 제법 강도가 센 생생한 원시적 살육의 현장이 거북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 MBC/실버스푼/MBC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이렇게 선혈가득한 장면의 문자적인 잔인성보다 더 잔인한 것은 문명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선진국들의 이기심과 온실가스방출에 대한 무책임스런 태도가 아니던가. 오히려 이들은 문명의 소리없는 폭력으로 인해 최종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는 당사자들에 불과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바로 [북극의 눈물]이 보여주는 현장감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자 차별적인 시도다.

물론 아쉬움도 남는다. 국민배우 안성기의 나레이션은 유명 연예인이 작품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거리임에 분명하지만 나레이터와는 다소 동떨어진 톤의 목소리가 관객에 따라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미 [지구]의 나레이션을 맡은 장동건이나 [홈]의 오세훈 시장의 경우에서도 드러났듯 극장판 다큐 만큼은 이제 전문성우에게 맡겼으면 하는 생각이다.

또한 3부작을 극장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의 편집도 썩 매끄럽지 못하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으나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내용의 전환이 다소 부자연스럽다. 의도적인 현장감 부여의 목적 때문인지 비주얼의 완성도 보다는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급급한 흔적도 몇몇 군데에서 보인다. 다만 TV판 다큐멘터리를 극장판으로 확장하는 시도가 이제 초보적인 단계인 만큼 [북극의 눈물]은 그 의욕과 열의에 있어서 충분히 칭찬할 만하다.

ⓒ MBC/실버스푼/MBC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현재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6위, 배출량 증가율 1위로서 지구온난화에 있어 심각한 도의적 책임에 봉착해 있다. 이제 온난화는 더 이상 북극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이 시점, [북극의 눈물]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는 작품이다. 적어도 나는 내 아들에게 영화에서가 아니라 실제 살아있는 아기 북극곰의 재롱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나 이런 작은 바람도 이젠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듯 하다.


* [북극의 눈물]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BC/실버스푼/MBC프로덕션.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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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이트세이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과연 엘 고어가 지구 온난화를 얘기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는 그저 정치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성기의 내레이션은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조금 옆길로 새는데 전 안성기의 연기가 싫어요. 말하는 것도 그렇고. 이 사람은 해리슨 포드가 그러는 것처럼, 역할에 녹아드는 게 아니라 역할을 자기에게 맞춰요. 문제는 그게 다 거기서 거기인 인물로 보인다는 거.

    2009.10.19 11:05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9.10.19 11:08
  3. 나이트세이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하나 더... '헛딛여' → '헛디뎌'

    2009.10.19 13:08
  4. happyway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지난 금욜 봤는데요. 디지털이라 그런지 화면 가득히 북극의 풍광이.. 시간가는 줄 모르겟더라고요. 눈과 마음을 정화한 느낌! 그런데 한국 다큐의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네요..

    2009.10.19 13:58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북극의 풍경만 놓고보면 해외 다큐쪽이 화면빨은 더 좋습니다. 저는 오히려 [북극의 눈물]의 투박한 느낌이 한국적이라 더 좋았어요^^

      2009.10.20 09:28 신고
  5. 시그너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들어 환경 다큐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군요.
    분명 인류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경고를 해도 인류는 결국 파멸로 걷고 있는거 같네요. (이런 생각을 하면 정말 섬뜩합니다.)
    페니웨이님께서 어릴적에 보았다는 그 '데굴데굴' 다큐가 무었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

    2009.10.19 14:27
  6. Termin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V 방영했던 거 혹시 BD로 나오지 않을까 하면서 DVD 안 지르고 버티고 있는데
    이제 그만 기대를 접고 DVD로 구입해야 하나 생각이 드는군요. 크

    2009.10.19 14:47 신고
  7. 윤예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 온난화는 환경파괴로 인한 것인지, 자연적인 현상인지, 저는 아직 판단을 잘 못하겠네요.

    다만 환경파괴의 초점이 온통 '아직 선후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지구 온난화에 쏠리는 현상은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환경파괴와 선진국의 정치꾼들, 대자본들의 연관성을 살펴보려면 그냥

    인도네시아 등의 열대우림 벌목 현장 찍어서 내보내면 상황 종료라고 생각합니다.

    2009.10.19 19:12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이긴 합니다. 오히려 지구온난화와 온실가스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다큐도 나온적이 있지요. 학계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답니다. 중요한건 인류의 자원낭비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겁니다. 온난화가 아니더라도 자원의 고갈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2009.10.20 09:30 신고
  8. 로얄분체교감유전자코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구'는 정말 감명깊게 봤는데 '북극의 눈물'은 아직 못 봤네요.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현실입니다.
    세계에서 주류가 되고 싶어하는 몇 몇 나라들 때문에 지구 전체가 피해를 보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산화탄소 배출 1위 미국은 교토의정서에 가입도 안 하고 있으니 세상이란게 정말 부조리 투성이 같습니다.
    그런데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 1위는 중국 아닌가요?

    2009.10.21 02:45
  9. spaw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걸 보니 올해 제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이 있습니다. 고 마이클 크라이튼의 '공포의 제국'이라는 책인데 이걸 읽고 도대체 어떤 주장에 손을 들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2009.11.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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