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하자면 필자는 이 영화를 이미 4년전에 우연한 기회에 접했다. 북미지역에서 개봉한지 벌써 4년이나 지난 이 영화를 지금에 와서야 개봉하는 이유가 의아하긴 해도 작품의 외형만으로 보자면 [바비]가 상당히 관심을 끄는 영화임은 부인하지 않겠다. 개인적인 취향이나 편차의 문제는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정치적인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평균 이상의 재미가 보장되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통령의 음모]나 [J.F.K] 같은 작품들은 아직도 내 방 DVD 장식장의 한가운데에 고히 모셔두고 있을만큼 즐겨보는 영화다.
하지만 일련의 정치스릴러물(그것도 미국의)에 흥미를 느끼는 관객이 나말고 몇이나 더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역시나 [바비]는 이 영화의 장르 외에도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사실, 즉 어지간한 영화들의 원톱급 주연으로도 손색이 없는 어마어마한 수의 스타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실제로 아카데미 수상에 빛나는 안소니 홉킨스나 헬렌 헌트 같은 명배우는 물론이거니와 샤론 스톤, 린제이 로한, 샤이아 라보프, 애쉬튼 커처 등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기에도 벅찰 만큼 [바비]의 캐스팅은 화려하다.
© Weinstein Company. All rights reserved.
그러나 사공이 많을수록 배가 산으로 간다 했던가. 이렇게 초호화 캐스팅을 선택한 이유가 감독의 자기 과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영화의 구성자체는 무척이나 산만하다. 심지어 영화의 타이틀인 '바비'라고 불렸던 로버트 F. 케네디(바비는 R.F.K의 애칭)의 비중은 거의 없다. R.F.K 암살사건이 영화의 주 스토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한참을 빗겨나간다. 애당초 이 작품은 정치스릴러와는 거리가 먼 영화다.
[바비]는 1968년 바비가 암살될 당시 미국 LA 엠버서더 호텔의 풍경에 포커스를 집중한다. 그 곳에 있었던 22명의 서로 다른 일과를 번갈아가며 비추는 이 작품은 1960년대 미국인들의 일상을 통해 R.F.K의 암살이 그들의 가슴에 얼마나 큰 구멍을 만들어 놓았는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려 한 듯 보인다. 이민자들이 겪는 차별의 아픔, 저소득층의 고충, 마약에 빠져드는 히피족 등 영화 속 각각의 캐릭터가 대변하는 미국사회의 총체적 난관은 그 문제들을 바로 잡으려 했던 바비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풀어야 할 과제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막판에 툭 튀어나오는 애도의 감정만으로는 그저 동정심 이상의 감정이입을 관객에게서 이끌어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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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이 아닌 다양한 캐릭터가 고른 비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기억을 돕고자 낯익은 스타들을 기용한건 나름 이해가 가지만 아쉽게도 각 배우들이 가진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더 큰 문제는 영화가 가진 의도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객들은 1960년대 미국인들의 정서를 공감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차라리 이 작품의 개봉 타이밍이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연거푸 떠나 보냈던 작년이었더라면 그나마 더 낫지 않았을까.
노장배우 마틴 쉰의 아들이자 찰리 쉰의 형으로, 이제 배우로서는 하향길에 접어든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모처럼 영화인 집안 출신의 연줄을 총동원해 예술영화 감독으로 발돋움하려는 야심을 드러냈지만 [바비]는 그 외형만큼 화려하게 빛나지 않는다. 그저 화려한 얼굴마담들을 보는 재미와 바비에 대한 미국인들의 향수와 애착만으로 이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리려 한 과욕의 결과다. 이렇게나 경이로운 캐스팅이 성사된 작품을 앞으로 다시 볼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니, 극장문을 나서는 순간 남는 감정은 '아쉬움' 뿐이다.
* [바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einstein Company.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바비 - 에밀리오 에스터베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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