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87
USA 케이블 네트워크 사에서 기획을 시작한 [에어울프]의 시즌 4는 애당초 잔 마이클 빈센트가 계속 주연으로 검토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요인이 발목을 잡게 되는데요, 하나는 J.M. 빈센트의 출연료가 너무 높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의 사생활 문제였습니다. 한때 [죠스]의 후퍼 역으로도 고려된 적이 있는 J.M. 빈센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잠재력을 지닌 차세대 스타로서 꽤나 각광받는 헐리우드 배우였습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진 해크먼 주연의 [허망한 경주 (Bite the Bullet)]를 보면 반항적인 이미지의 그를 만날 수 있는데, 이런걸 보면 메이저급 영화에 편입될 만한 자질이 충분했지요.
그렇지만 [에어울프] 촬영 당시 잔 마이클 빈센트는 심한 알콜중독 상태였으며 약물남용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작사는 J.M. 빈센트의 출연 계약을 포기하고 그를 시즌 4의 첫회에만 출연시키는 대신 주연 캐릭터 4인방을 모두 교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습니다.
ⓒ Universal City Studios. INC. All rights reserved.
[에어울프]로 연기인생의 정점을 찍었던 잔 마이클 빈센트. 하지만 [에어울프]의 방영중단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빈센트 자신이었다. 당시 그는 회당 20만 달러라는 미국 TV드라마 사상 최고의 개런티를 받은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사실은 CBS측에 점차 제작비의 압박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빈센트 자신에게도 독이 되었다. 그는 심각한 알콜중독에 빠져들었으며, 시즌 3의 촬영기간 중 술에 취한채 촬영에 임하는 사태도 종종 발생했다. 결국 시즌 4에 합류하는데 실패한 빈센트는 이후 급속한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의 개런티는 쥐꼬리만큼 줄어들었으며 그나마 출연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극장에 걸리기도 전에 비디오로 직행하는 작품들이었다. 안타깝게도 1996년에 발생한 자동차 사고로 그는 세개의 척추골 손상을 입었으며 목소리도 심각하게 망가져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사실상 잃고 만다.
덕분에 시즌 4의 첫회에서 시청자들은 등짝만 보이다가 폭발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도미니크의 대역과(원래 도미니크는 어네스트 보그나인이 맡았었는데, 그래도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가 이 따위 황당한 역할로 출연할 리가 없었죠) 그 여파로 중태에 빠지는 호크, 그것도 모자라 외국으로 급발령났다고 코빼기도 안보이는 아키엔젤,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 케이틀린 등 도무지 감당 안되는 갑작스런 상황이 버라이어티하게 벌어지는 비람에 시청자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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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세인트 존 호크(베리 반 다이크 분)인데요, 네 바로 [에어울프]의 전 시즌 내내 동생인 스트링펠로우가 찾아다녔던 친형이 되겠습니다. 근데 베트남에서 실종되었다던 인간이 오랫동안 미 정보부 소속 위장요원으로 활동해 오다가 사로잡혀 소련군 용병 비밀 수용소에 있는 것으로 나옵니다. (이 말인 즉슨 아키엔젤이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스트링펠로우를 실컷 부려먹기 위해 구라를 쳐왔다는 얘기 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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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부 비밀조직인 'the FIRM'은 시즌 4로 오면서 '컴퍼니'로 바뀌며 이 기관에서 S.J. 호크의 구출작전을 감행해 구출에 성공합니다. 미국으로 송환된 S.J 호크는 동생 스트링펠로우와 극적으로 상봉하지만 이내 동생은 숨을 거두고 말지요. 이렇게 해서 이전 [에어울프]의 잔재를 말끔히 털어낸 시즌 4는 컴퍼니의 흑인 책임자와 웬 어리버리한 백인 하나, 그리고 S.J 호크와 도미니크의 조카딸이 한팀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듯 [에어울프] 시즌 4는 처음부터 저예산 냄새가 풀풀나는 작품입니다. 무명 배우 4인방(그중 3명은 캐나다 배우)을 주연배우로 전격 캐스팅한 채 저렴한 제작을 위해 세트장마저 캐나다로 옮겨 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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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은 전편에 쓰였던 조종석 세트를 옮겨다 사용해 내부 촬영을 하는 대신, 에어울프의 비행씬이나 전투씬은 모조리 지난 시즌의 Footage를 재활용하는 가공할만한 편집 신공을 펼칩니다. 일례로 시즌 4에서 그나마 가장 재밌었던 'Salvage' 라는 에피소드에서는 에어울프를 위협하는 스콜피온이라는 또 하나의 헬기가 등장해 맞대결을 펼치는데, 사실 이건 시즌 2의 'Firestorm' 에피소드에 등장했던 에어울프 II 와의 대결을 그대로 재활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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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소품비용을 아끼고자 미사일이 날아가는 장면은 필름상에 그림으로 그려넣어 대신했고, 이러한 어색함은 가뜩이나 필름 짜깁기에 짜증이 난 시청자들을 더욱 황당하게 만듭니다. 결국 싸구려 정신의 극치를 보여준 시즌 4는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24개의 에피소드를 끝으로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고 맙니다. [에어울프]의 팬들은 시즌 4를 시리즈로 인정하지 않겠다며 분통을 터트렸지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TV 드라마로서는 너무나도 허무한 결과였습니다. MBC에서도 워낙 반응이 안 좋았던 까닭에 에피소드 전량을 방영하지 않고 도중에 끝을 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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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에어울프] 시즌 4의 비주얼이라든가 배우들의 무성의한 3류 연기는 확실히 눈뜨고 못봐줄 만한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각본까지 엉망이었던 건 아닙니다. 사실 어떤 에피소드는 꽤 미래지향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서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꽤 쓸 만한 것들이 더러 보이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은 워낙 발로 만든 완성도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휘하지 못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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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즌 4의 종영 후 에어울프의 실제 촬영에 쓰였던 Bell-222기는 소품을 다 제거한 채 독일에 팔려나가 구호 활동에 쓰이게 되었는데요, 1992년 악천후 때문에 추락하는 바람에 탑승자 3명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맙니다. 시대를 풍미한 메카닉 액션 드라마의 뒷이야기로서는 참 씁쓸한 결말이지요.
WP-Photo: Oliver Eickhoff
한때 [에어울프]와 쌍벽을 이뤘던 [전격 Z작전]의 경우 최근 리메이크 되어 방영되었으나 오리지널보다 못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고, [에어울프]도 곧 리메이크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긴 합니다만 제발 시즌 4의 악몽만큼 형편없는 리메이크가 아니길 바랄뿐입니다.
에어울프 시즌 4 - 추억의 외화는 그렇게 사라져 갔다 (1부) 바로가기
본 리뷰는 2009.9.17. Yahoo의 메인 페이지 '말많은 이슈' 코너에 소개되었습니다.
* [에어울프 시즌 4]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Universal Studios. INC.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에어울프 프로모션 스틸(ⓒ Universal City Studios. INC.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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