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ㄹ

레저백 - 멧돼지 괴수물의 원조를 찾아서

페니웨이™ 2009. 7. 20. 09:56
반응형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최근 개봉한 [차우]는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형 괴수물이라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또 한가지 반가운 사실은 이 작품이 '멧돼지'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많은 맹수들을 놔두고 하필 멧돼지라니... 곰이나 사자, 악어 같은 짐승을 소재로 한 작품은 봤어도 멧돼지는 처음이 아닌가 하실 분들도 분명 계셨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멧돼지가 등장하는 괴수물의 원조는 따로 있다. 1984년작 [레저백]이 그것이다.

[레저백]은 [하이랜더 1,2]로 잘 알려진 러셀 멀케이 감독의 영화로서, 말하자면 그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셈이다. (일부에선 [레저백]이 러셀 멀케이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1979년작 [Derek and Clive Get the Horn]로 이미 장편영화 데뷔를 마친 상태였기에 틀린 얘기다) 호주 태생으로서 유명 뮤지션들의 뮤직 비디오를 담당했던 MTV 감독인 러셀 멀케이가 크리쳐물로 상업영화에 도전했다는 건 다소 의외이지만 한때 헐리우드의 유망주로서 기대를 모으던 그의 감각적인 연출을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그는 듀란듀란의 'Hungry Like The Wolf'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다가 이것이 제작자의 눈에 띄어 [레저백]의 연출을 맡게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언젠가도 얘기한바 있듯이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신뢰성이 의심스런 것들이 많다. 최근 [차우]의 개봉에 맞추어 관련 정보를 검색하기 위해 웹서핑을 했더니 참 가관이다. 멧돼지가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차우]가 리메이크작이라면 [딥 블루 씨]는 [죠스]의 리메이크란 말인가?


[레저백]은 호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소년이 멧돼지에게 끌려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소년을 돌보던 할아버지는 아동 살해 및 유기혐의로 심문을 받고 풀려나지만 이 사건의 원흉인 정체불명의 멧돼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다.

2년 뒤, 동물 보호운동가인 한 미국여성이 마을에 도착해 캥거루 불법 도살에 대한 취재를 시도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그다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유달리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두 형제에게 의심을 품은 이 여성은 어느날 두 형제가 운영하는 캥거루 공장을 몰래 촬영하다 발견되어 봉변을 당할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어디선가 나타난 멧돼지가 그녀를 습격하고, 형제들은 도주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UAA Films/ Western Film Productions/ Anchor Bay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현지 경찰들은 이 사건을 단순 실종으로 처리하지만 뉴욕의 약혼자가 소식을 접하고 마을에 도착, 약혼녀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는 멧돼지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노인을 만나게 되고, 이 사건에 캥거루 공장의 두 형제와 멧돼지가 모두 관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이, [레저백] 역시 멧돼지의 존재에 올인하는 정통 크리쳐물이라기 보다는 미국에서 온 이방인과 마을 사람들의 대립에 보다 큰 비중을 둔 스릴러물에 가깝다. 저예산 공포영화의 특징인 피범벅 고어 분위기와도 거리가 멀다. 물론 멧돼지가 등장하는 순간만큼은 CG가 없던 시절의 아날로그 특수효과가 사용되었음에도 제법 긴장감이 넘치며, B급 공포물로서의 아기자기한 재미에 충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UAA Films/ Western Film Productions/ Anchor Bay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다소 김빠지는 내러티브가 문제이긴 하나, [레저백]의 진가는 비주얼에서 드러난다. MTV 감독 출신답게 러셀 멀케이가 연출한 비주얼의 스타일리쉬한 감각은 이런 B급영화에는 과분하다 싶을만큼 현란하고 환상적이다. 더군다나 [매드맥스 2], [영 건], [늑대와 춤을]의 촬영감독 딘 샘러가 촬영을 맡은 덕분에 두 사람이 연출해 낸 화면의 시너지 효과는 기대한 것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았다. (훗날 딘 샘러는 괴작 [슈퍼 마리오]에 비공식적으로 연출에 참여한 이후, B급 액션물 [파이어 스톰]과 스티븐 시걸이 주연한 [패트리어트]의 감독을 맡았으나 생각처럼 연출자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UAA Films/ Western Film Productions/ Anchor Bay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레저백]의 진정한 가치는 영화의 전체적인 수준과 비교해 과분할 정도로 환상적인 비주얼이다. MTV 출신의 러셀 멀케이와 훗날 [늑대와 춤을]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거머쥔 딘 셈러의 촬영솜씨가 어우러진 드림팀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레저백]은 B급영화치고 디테일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쓴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일례로 이 작품을 위해 풀사이즈의 애니메트로닉(실물 사이즈의 로봇) 멧돼지를 무려 25만 달러를 투입해 제작했으나, 이 멧돼지가 영화에 등장하는 씬은 고작 1초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보여준 사막지역의 황량한 분위기는 얼마전 러셀 멀케이가 감독한 [레지던트 이블 3]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어 여전히 녹슬지 않은 면모를 보여주었으나, 한때 헐리우드의 유망주로서 주목받던 멀케이의 필모그래피 중 [하이랜더]를 빼면 그닥 내세울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도 [레저백]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게 된 원인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1980년대 외화 시리즈에 제법 자주 얼굴을 비췄던 그레고리 해리슨의 핸섬한 모습을 감상하는 건 이 영화의 또다른 묘미이지만, 역시 [레저백]의 가장 큰 의미는 [죠스]로 분수령을 맞이한 괴수물의 다양한 자가증식이 결국 멧돼지라는 소재까지 다다랐다는데 있다. 뭐니뭐니해도 [레저백]은 최초의 멧돼지 어드벤쳐물이니까.

P.S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세신영상. All rights reserved.

제목이 [레저백]이라는 것이 의문을 품는 분이 계실줄로 안다. [Razorback]의 발음기호대로 하자면 [레이저백]이 맞으나, 국내 출시사의 오기 관행으로 인해 [레저백]이 되고 만 케이스.


* [레저백]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UAA Films/ Western Film Productions/ Anchor Bay Entertainmen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