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줄창 찍어대는 헐리우드산 로맨틱 코미디는 어떻게 만들던지간에 본전치긴 하는 모양이다. 주연배우와 장소만 바뀔뿐 (그마저도 안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_-) 도토리 키재기 하듯 고만고만한 내용으로 적당히 관객을 웃음짓게 만들고 자기들끼리 해피하게 설렁설렁 마무리짓는 이야기는 질릴만큼 쏟아져 나왔고 그러다보니 이젠 이 장르에 대한 기대자체가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여친님들께선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만 찾는 걸.
언제 제작한다는 소리 소문도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쩍 개봉한 [로마에서 생긴 일]의 출연배우들을 보자. 주연 여배우는 크리스틴 벨이고 상대 남우는 조쉬 더하멜. 어째 조합부터가 B급스럽다. 이들이 단독주연으로 나온 영화를 본게 언제더라? 있긴 있었나? 여하튼 적당히 이쁘장하고 적당히 잘생긴 두 선남선녀의 조합이 썩 나빠보이진 않으니 내용만 그럭저럭 받쳐주면 평균은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영화는 어디까지나 배우가 아니라 감독이 만든다는 걸 잊지 말자. [데어 데블]과 [고스트 라이더]로 마블사의 원작 두 편을 아주 깔끔하게 말아 잡수신 마크 스티븐 존슨 감독이다.
예상처럼 적어도 내 관점에서 보자면 [로마에서 생긴 일]은 명백히 평균 이하의 영화다. 직장일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연애에는 잼병인 처자가 만난지 2주밖에 안된 남자와 로마에서 웨딩마치를 울리는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운명적인 사랑의 상대를 만난다는 상투적인 전개까진 그나마 봐줄만 하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주인공이 술김에 사랑의 분수에 관광객들이 던져놓은 동전을 몇 개 집어왔더니 집어온 동전의 수만큼 남자들이 꼬여들기 시작한다. 여주인공의 미션은 이 남자들 중에서 진짜 맘에 들었던 사람이 동전의 불가사의한 마력없이도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 Touchstone Pictures/ Walt Disney Studios Motion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믹한 상황이 적지 않지만 정작 주인공보다 더 튀는 조연들 덕택에 이야기의 구심점이 애매모호해 졌다. 게다가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는 밋밋하다. 뭔가 밀고 당기는 맛도 없고, 갈등구조라 할 만한 것도 없다. 물론 이 남자가 날 사랑하는게 동전의 힘 때문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여자 주인공의 심리가 묘사되긴 하는데 관객의 입장에선 그저 러닝타임을 맞추기 위한 시간끌기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12세 미만의 아이들도 예측가능할만큼 단순한 이야기의 구조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남녀 주인공이 이어질게 뻔한데, 다른 놈들은 빨리 사라져 버려! 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랄까.
남녀 배우의 연기는 그럭저럭 볼 만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매력적이진 않다. 크리스틴 벨은 이런 영화에서 원톱급 주연을 맡기엔 자신만의 셀링 포인트가 부족하며, 특히 조쉬 더하멜은 [내 생애 최고의 데이트] 이래 다시한번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하면서 그 잘생긴 외모에 걸맞지 않은 슬랩스틱 코미디까지 선보였다만 부디 다음번 만나는 영화는 [트랜스포머 3]이길 간절히 바라게 만들 뿐이다.
물론 장점도 있다. 영화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왕년의 스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 거장 존 휴스턴의 딸로 연기파 배우의 길을 걸어온 안젤리카 휴스턴이 크리스틴 벨의 직장상사로 출연하며, 제작자 겸 배우로 많은 작품을 남긴 대니 드 비토가 여주인공에게 필이 꽂힌 소세지 회사의 재벌로, 그리고 [마이아미 바이스]의 액션스타 돈 존슨은 주인공의 아버지 역으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중간에 NBA 슈퍼스타 샤킬 오닐도 까메오 출연을 하고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P.S: '로마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 영화에 헐리우드 최강 코믹 배우들이 총동원되다'란 선전 문구에 속지말 것. 로마 장면은 고작 몇분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50년전에 만든 로맨틱 코미디의 마스터피스인 [로마의 휴일]을 한 번 더 보길 권한다.
* [로마에서 생긴 일]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Touchstone Pictures/ Walt Disney Studios Motion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영화 > ㄹ'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터스 투 줄리엣 - 데이트용 영화로는 합격점 (20) | 2010.10.07 |
---|---|
로빈 후드 - 의적 아닌 구국영웅의 이야기 (29) | 2010.05.19 |
레저백 - 멧돼지 괴수물의 원조를 찾아서 (27) | 2009.07.20 |
로맨틱 아일랜드 - 진정한 주연은 보라카이 섬의 풍경 (10) | 2008.12.27 |
러블리 로즈 - 다큐멘터리적인 느낌의 베트남 영화 (8) | 2008.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