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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 의적 아닌 구국영웅의 이야기

페니웨이™ 2010. 5. 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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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수많은 감독과 배우들에 의해 재해석된 '로빈 후드'의 이야기는 아마도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 이유는 로빈 후드라는 인물이 폭정에 항거하고 민중을 위해 싸웠던 대리만족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불공정과 빈부의 차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대중들은 힘들때마다 로빈 후드 같은 영웅이 스크린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무법자의 이름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지 않는 상류층의 사람들을 맘껏 혼내주는 모습에 열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이어지고, 한국에서만해도 '양극화'라는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소위 빈익빈 부익부의 쏠림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 시점, 리들리 스콧은 다시한번 로빈 후드의 이야기를 꺼내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타이밍으로 보자면, 맞다. 대중들이 시대를 초월한 거물급 의적의 활약상을 기다려 온건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 [로빈 후드]는 어딘지 다르다. 영화의 첫장면은 사자왕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 원정 부대의 공성전으로 시작되는데, 그 스펙터클의 규모로 보면 액션물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전쟁영화에 가깝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글래디에이터]로 서사극 장르의 신기원을 이룩한 리들리 스콧은 이 작품을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에서 이어지는 이른바 에픽 3부작으로 만들 속셈인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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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로빈 후드]는 기존의 로빈 후드 스토리와는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그간의 로빈 후드가 왕실의 재산인 사슴을 사냥한 죄로 범죄자가 되어, 숲속에서 무법자 동지들을 규합해 폭정을 일삼는 관리들을 약탈하고 민중들에 편에 서는 의적으로 활약하다가 결국에는 노팅엄의 영주를 끌어내리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 된 것에 반해, 이번 [로빈 후드]는 실제적인 의적으로서의 활약상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주로 귀족으로 여겨져던 로빈 후드는 이번 작품에서 작위를 받지 못한 사병의 신분으로 등장하며, 심지어 (나쁘게 말하면) 탈영과 신분 사칭을 하는 군범죄자로 묘사된다. 달라진건 로빈의 연인 마리안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이미 귀족집안의 아들과 결혼을 한 유부녀이며, 남편의 사후, 일면식도 없던 로빈과 위장 결혼을 하게 되는 사이다. 리틀 존을 비롯한 동료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규합된 동지가 아니라 탈영을 함께 시도하는 전우로 그려지며,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마리안의 시아버지, 록슬리 경이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크다.

이렇게 달라진 캐릭터들로 알 수 있듯 [로빈 후드]는 '의적' 로빈 후드가 아닌, '구국의 영웅' 로빈 롱스트라이드에 관한 이야기다.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그가 어떻게 셔우드숲의 로빈 후드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최근 헐리우드 영화의 트랜드에 걸맞는 일련의 '비긴즈' 시리즈의 룰을 따름으로서 로빈 후드의 기원을 재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을 위해 일어선 의적 로빈이 아니라 다분히 급진적 정치성향을 지닌 운동권 인사로서의 로빈은 어딘지 낯설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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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따라서 [로빈 후드]의 로빈은 선량한 백성들을 위해 봉기하는 대리만족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지 못한다. 어딘지 [킹덤 오브 헤븐]의 연장선에 놓인듯한 느낌의 [로빈 후드]는 평범한 궁수가 영국을 구해낸 영웅으로 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리들리 스콧 특유의 선굵은 서사구조로 풀어내고 있으며, 그가 왕으로부터 버림받아 의적이 된 시점에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로빈 후드]의 웅장한 전투장면과 서사극에 어울리는 무대, 그리고 러셀 크로우와 케이트 블란쳇 등 걸출한 배우들이 뿜어대는 화면내의 포스가 영화 전반을 훌륭하게 장식하고 있긴 하지만 아기자기한 잔재미가 떨어지고,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게 전개되다보니 로빈의 신분상승과 몰락의 과정 자체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망나니 존 왕이 한순간 영국을 위한 선한왕이 되기로 결심했다가 끝끝내 민심을 저 버리고 로빈을 적으로 간주하게 되는 일련의 설정들은 꽤나 흥미롭지만 이마저도 너무 급하게 마무리 된 느낌이어서 어딘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전체적으로 볼때 [로빈 후드]는 리들리 스콧 방식의 재해석이 비교적 잘 반영된, 대작의 호칭이 어울리는 서사극이지만 [노팅엄]이란 제목으로 기획되어 노팅엄의 영주가 로빈 후드로 활동하게 된다는, 컨셉으로 치자면 영국 중세시대의 '배트맨' 같은 설정으로 원작을 재해석할 예정이었던 본 작품의 원래 계획대로 만들어졌다면 보다 더 흥미로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P.S: 최근 악역 전문배우로 급부상한 마크 스트롱. 암만 봐도 앤디 가르시아랑 닮았다. -_-


* [로빈 후드]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Universal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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