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후반, 윌리엄 랭그랜드의 장편시 '피어스 플로우먼 Piers Plowman'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I kan not parfitly my Paternoster as the preest it singeth, But I kan rymes of Robyn Hood.'
'나는 성직자처럼 완벽하게 주기도문을 외울 수는 없지만, 로빈 후드 이야기라면 잘 안다네'
이 시에 언급된 로빈 후드가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구전설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인지는 현재로서 확인할 길이 없다. 로빈 후드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전부터 대중문화 속에 침투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1440년 월터 바우어의 기록에 의하면 '1266년에 로빈 후드라는 살인자가 리틀 존을 비롯한 패거리들과 함께 활보하였고, 이들은 시정잡배들의 연극이나 발라드, 민요 속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뛰어난 활솜씨와 검술을 지녔고, 변장에도 능수능란한 로빈 후드는 폭정에 저항하고 민중을 위해 도적단을 조직한 의적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그 명성을 쌓아 왔다. 신화적 요소와 더불어 여러 무용담의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이야기인 만큼 로빈 후드 스토리는 다양한 변주를 낳았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로빈 후드와 마리온의 로맨스, 기스본의 가이와의 대결, 리틀 존과 동료들의 의적활동 등 중요한 몇몇 이벤트는 떠오를 테지만 정작 로빈 후드가 어떤 일을 계기로 의적이 되었는지, 그의 원래 정체가 귀족인지 아니면 평민이었는지, 악한 영주를 물리지고 난 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등 구체적인 발단과 결말에 대해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이렇게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대중문화 속 클래식 컬쳐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로빈 후드는 20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등장한 대중 미디어인 영화로 거듭나게 되었다. 1912년, 30분짜리 흑백 단편영화 [로빈 후드]에서 로빈 프레이저가 로빈 후드를 연기한 이래 수많은 버전의 로빈 후드가 등장했는데, 그 중 몇가지 작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The Adventures of Robin Hood, 1938
ⓒ Warner Bros. All Right Reserved.
컬러영화로 제작된 최초의 로빈 후드 영화. 제임스 캐그니가 로빈 후드 역에 캐스팅 되었으나 제작지연으로 인해 도중 하차, 결국 에롤 플린이 로빈 역을 맡았다. 로빈 후드 관련영화중에서는 걸작급의 반열에 오른 작품으로 명콤비 에롤 플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환상적인 앙상블, 호쾌한 액션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깊이있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영화 전개의 정석을 따르면서 오락영화의 모든 요소를 담은 영화로 로빈 후드 이야기의 팬이라면 필견의 작품. 윌리엄 케일리가 감독을 맡았다가 액션씬의 임팩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해 [카사블랑카]의 마이클 커티즈로 교체되었다.
Robin and the 7 Hoods, 1964
ⓒ Warner Bros. All Right Reserved.
로빈 후드의 스토리를 미국 금주법 시대로 옮겨와 리버전한 작품. 범죄도시 시카고를 무대로 남북부 마피아의 세력다툼을 골자로 한 이 작품에서는 배우겸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가 로빈(로보) 역을 맡았고 딘 마틴, 피터 포크, 빙 크로스비, 에드워드 G. 로빈슨 등 거물급 배우들이 출연했다. 표면적으로는 갱영화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코믹 뮤지컬에 더 가깝고 전반적으로 경쾌한 톤의 내용을 담고 있다.
Robin and Marian, 1976
ⓒ Columbia Pictures. All Right Reserved.
알렉산더 뒤마의 [삼총사], [사총사]를 만든 리처드 레스터 감독이 다시한번 고전극에 도전한 작품으로 숀 코네리와 오드리 햅번 같은 걸출한 스타를 등장시켜 만든 작품이다. 시기상으로는 로빈 후드의 대활약이 지나고 이미 중년을 넘긴 로빈과 마리안의 후일담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다소 코믹한 전개로 진행되지만 상당수의 로빈 후드 영화들이 비극적 결말을 배제한 것과는 달리 초반의 유쾌한 분위기와 상반되는 충격적인 결말을 담아낸 작품이기도 하다. 로버트 쇼, 리처드 해리스, 이안 홈 등 호화 캐스팅이 돋보이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아쉽다.
Robin Hood: Prince of Thieves, 1991
ⓒ Warner Bros./ Morgan Creek. All Right Reserved.
1991년 국내 극장가에는 [늑대와 춤을]을 비롯해 [꿈의 구장], [의적 로빈 후드] 등 케빈 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3편이 비슷한 시기에 걸려있었는데, 이 같은 현상을 놓고 항간에서는 '어느 극장을 가든 케빈 코스트너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여름철 최강의 블록버스터 [터미네이터 2]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었음에도 화제성 면에서는 막상막하의 위력을 보여주는 기염을 토했다. 스피디한 전개, 유머와 액션의 적절한 조화, 매력적인 캐릭터 등 역대 로빈 후드 영화 중 가장 오락적 재미가 살아있는 작품이다. 마지막 까메오로 출연하는 '그분'의 등장이 당시로선 꽤나 신선한 반전을 제공했다. 흥미롭게도 감독인 케빈 레이놀즈는 리들리 스콧의 데뷔작 [결투자들]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 있다.
Robin Hood, 1991
ⓒ 20th Century Fox/ Working Title Films. All Right Reserved.
케빈 코스트너의 [의적 로빈 후드]와 같은 해에 공개된 작품이지만 TV판 영화라는 상대적인 핸디캡 때문에 세간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작품이다. 국내에는 [적과의 동침]의 의처증 남편 역으로 잘 알려진 패트릭 버긴이 로빈 후드 역할을 맡았으며 아직 무명시절이었던 우마 서먼이 마리안 역을, 그 외에 유르겐 프록나우, 에드워드 폭스 등 개성있는 연기파 배우들이 조연으로 등장한다. 오락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떨어지지만 일부 평단에서는 케빈 코스트너의 [의적 로빈 후드]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Robin Hood: Men in Tights, 1993
ⓒ 20th Century Fox. All Right Reserved.
패러디물의 거장 멜 브룩스가 로빈 후드 이야기를 코미디로 각색한 작품. 패러디 코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작품들에 대한 지식이 많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영화매니아라면 무척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특히 [대부]의 패러디 장면은 압권. 주로 영화에서 얄미운 조연으로 등장했던 캐리 엘위즈가 타이틀롤을 맡았다.
2007년 1월, TV 시리즈 [슬리퍼 셀]의 각본을 맡았던 이단 레이프와 사이러스 보리스는 로빈 후드 영화를 위한 스크립트를 쓰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관점에서 로빈 후드의 무용담을 구성해 나갔는데, 이 초기 스크립트에서 노팅엄의 행정관은 동정적인 시각으로 그려진 반면, 로빈 후드는 다소 비도덕적인 인물로 묘사되었고 여기에 마리안이라는 여성이 끼어들면서 모종의 삼각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이 주된 플롯이었다. 이는 항간의 소문처럼 로빈 후드가 '악당으로 그려졌다'는 뜻이 아니라 좀 더 '범죄자에 가깝게 묘사되었다'는 뜻이다. 오히려 이 시나리오는 로빈 후드 민담의 초기 설정에 더 가까운 것이었는데, 아직 로빈 후드의 무용담이 구체적인 모양새를 갖춰가기 이전 시대에 회자되던 내용을 살펴보면 당시 로빈 후드는 적극적인 의적활동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도적질을 일삼는 일반적인 모습에서 다른 범죄자들 보다 그저 조금 더 젠틀한 면을 갖췄을 뿐인 인물이었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진행될 새로운 로빈 후드 영화의 감독으로 물망에 올랐던 인물은 존 터틀타웁, 브라이언 싱어, 샘 레이미 등이었으나 최종적으로는 [글레디에이터]와 [킹덤 오브 헤븐]으로 시대극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바 있는 리들리 스콧에게 메가폰이 주어졌다. 영화의 제목은 [노팅엄]. 흥미로운 사실 한가지는 리들리 스콧이 기존 로빈 후드 영화들의 팬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으로 화제에 올랐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 Reserved.
'지난 (로빈 후드)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걸 생각해내려는 중입니다... (중략. 여기에는 에롤 플린과 케빈 코스트너에 대한 비아냥이 담겨있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로빈 후드는 멜 브룩스 감독의 [못말리는 로빈 훗]입니다. 그 이유는 케리 엘위스가 무척이나 웃기기 때문이죠' - 더 타임즈 와의 인터뷰
어찌되었던 리들리 스콧의 [노팅엄]이 기존 로빈 후드의 전통적인 플롯을 따라가지 않을 것임은 자명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콧이 이단과 사이러스가 쓴 스크립트에 만족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스토리가 맘에 들지 않았다. 본래대로라면 촬영에 착수했어야 될 시점에 그는 초기 스크립트를 수정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당시 스콧이 구상했던 이야기는 노팅엄의 행정관이 로빈 후드라는 무법자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것으로서 두 개의 아이덴티티를 지닌 노팅엄의 행정관을 묘사하려고 했다. 그러나 스콧은 이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2008년 6월, [LA 컨피덴셜]의 각본을 맡았던 브라이언 헬겔랜드가 각본을 다시 쓰기 위해 투입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팅엄]은 철저하게 노팅엄의 행정관에게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었다. 스콧이 헬겔랜드에게 요청한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사자왕 리처드의 오른팔로 전장에서 활약을 펼치는 주인공은 리처드 왕의 전사후 그의 동생인 존 왕자를 보필하기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온다. 그러나 존 왕은 상당히 교활한 인물로 민중에게 과도한 과세정책을 편 탓에 나쁜 왕으로 지탄받고 있다. 노팅엄의 행정관으로 임명된 주인공은 타락한 왕과 무정부주의를 조장하는 무법자 로빈 후드의 출몰 사이에서 심한 비탄과 고뇌에 사로잡힌다.
브라이언 헬겔랜드의 시놉시스가 언론에 공개되고 난 후 본격적인 촬영작업이 시작될 무렵, 연이은 악재가 [노팅엄]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작가조합의 파업사태로 헬겔랜드의 각본이 탈고되지 않아 촬영이 지연되게 된 것이다.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각본은 영국 작가인 폴 웹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주연을 맡은 러셀 크로우는 당시 로빈 후드 기획의 컨셉에 맞는 장발을 한 채 촬영을 기다리다가 결국 그 상태로 [스테이트 오브 플레이]의 촬영에 합류하게 되었고, 마리온(이 작품에서는 일반적으로 쓰이는 Marian 이란 이름 대신 Marion 이란 이름을 채택했다)역에 캐스팅되었던 시에나 밀러는 [노팅엄]의 출연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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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버전의 [로빈 후드]에서 새롭게 조명될 인물은 바로 노팅엄의 행정관이었다. 이단 레이프와 사이러스 보리스는 행정관의 모습을 보다 호의적으로 묘사했고, 리들리 스콧은 아예 행정관의 아이덴티티를 로빈 후드와 동일시하는 컨셉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노팅엄의 행정관은 마리온에게 껄떡대기나 하는 경박한 인물로 비중이 축소되었다. (영화에서는 매튜 멕파디엔이 행정관 역을 맡았다)
촬영이 지연되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애초에 리들리 스콧이 의도한 노팅엄의 행정관은 폴 웹이 작업한 스크립트에서 그 존재감이 사라지다시피 했다. 대신 브라더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악한 왕과 선한 왕의 갈림길에 선 존 왕의 비중을 높혔고 주인공은 다시 로빈 후드로 환원되었다. 리들리 스콧은 [노팅엄]이라는 타이틀이 더 이상의 영화의 제목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전통적인 시각을 반영하도록 제목을 [로빈 후드]로 변경했다.
마침내 2009년에 촬영이 시작된 [로빈 후드]는 계속되는 여러 악재에 시달렸다. 폴 웹의 각본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촬영에 들어간 탓에 톰 스톱파드가 그 뒤를 이어 촬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각본을 써내려 가야 했다. 이같은 각본가의 잦은 변경이 오로지 주연을 맡은 러셀 크로우의 압력이라는 루머도 떠돌았다. 심지어 살을 빼라는 감독의 지시를 무시한 러셀 크로우가 리들리 스콧을 해임시키려 한다는 황당한 소문도 생겨났다. 여러 낭설이 와전되는 중에 슬픈 사건이 발생했는데, 존 왕의 어머니 역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딸, 나타사 리처드슨이 스키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는 영화에서 도중하차 했고, 대신 엘린 앳킨스가 영화에 긴급 투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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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 촬영장에서 리들리 스콧과 러셀 크로우의 모습. 두 사람의 영화는 [글레이에이터]로 시작해 이번이 다섯 번째 작품이다. 같은 감독과 배우가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함께 하기란 어지간히 마음이 맞지 않는 한 결코 쉬운일이 아닌데, 살빼라는 말에 반발한 배우가 감독의 해임을 시도했다는 소문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인지는 굳이 말안해도 알것이다..
이렇듯 잦은 각본교체, 촬영지연과 캐스팅 변경 등 가시밭길과도 같은 여정을 헤쳐나온 [로빈 후드]는 과연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 리들리 스콧의 열렬한 팬이라면 그의 작품에 거는 기대가 결코 적지 않은 바, 이제 [로빈 후드]라는 작품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영화계는 고전 속, 혹은 이전부터 자주 활용되던 영화 캐릭터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일례로 워너 브라더스의 배트맨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을 거쳐 만화 속 슈퍼히어로에서 현실 세계의 크라임 파이터로 완벽한 변신을 했으며, 가이 리치 감독은 명탐정 셜록 홈즈를 19세기의 액션히어로로 탈바꿈시켰고, 안톤 후쿠아는 아더 왕을 바돈 힐 전투의 일등 공신으로 묘사하며 [엑스칼리버]의 신화적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리들리 스콧의 [로빈 후드]는 바로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임과 동시에 최근 헐리우드의 주도적 트렌드인 '프리퀄'을 지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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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리들리 스콧은 사자왕 리처드가 이끄는 십자군 원정 부대의 공성전을 보여준다. 마치 [킹덤 오브 헤븐]을 연상케 하는 -시차상 [킹덤 오브 헤븐]과는 약 10년 정도밖엔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인트로의 스펙터클한 전개는 [로빈 후드]의 성격을 잘 대변하고 있다. 평민 출신의 궁수가 영국을 구해낸 영웅으로 발전하기까지의 기원과 과정을 리들리 스콧 특유의 선굵은 서사구조로 풀어낸 [로빈 후드]는 '의적' 로빈 후드가 아니라 '구국영웅' 로빈 롱스트라이드를 조명하며 기존 로빈 후드의 스토리를 재해석했다. 더불어 웅장한 전투장면과 서사극에 어울리는 무대, 그리고 러셀 크로우나 케이트 블란쳇, 막스 본 시도우 같은 걸출한 배우들의 연기 등 대작으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지만 반면에 이야기가 너무 장황하고, 로빈의 신분상승과 몰락의 과정이 썩 매끄럽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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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로빈 후드]의 감독은 리들리 스콧이 아니던가. [킹덤 오브 헤븐]을 보라. 그의 영화는 감독판이 나온 이후에 진정한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얘기를 남기지 않았나. 이번에 출시된 [로빈 후드] 감독판 블루레이는 50여분이 추가된 [킹덤 오브 헤븐] 만큼의 대대적인 보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총 15분 정도의 분량이 추가 되었으며 몇몇 장면들은 순서를 다르게 재편집하여 변화를 주었다. 몇몇 눈에 띄는 추가장면과 재편집씬은 다음과 같다.
1.영화 초반 공성전 직전 잠든 리처드 왕을 신하가 깨우는 장면. 무언가에 쫓기듯 잠에서 깨어난 왕이 황급히 찬물로 세수를 한다. 리처드 왕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반영하며 이는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될 왕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 하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 Reserved.
2.새로 부임한 터크 수사와 마리온의 첫 만남. 이 장면은 극장판과는 달리 시간상 로버트 록슬리가 고프리 일당에게 습격 당하는 장면의 앞쪽에 배치되었다. 감독판에서는 터크 수사와 마리온이 만나는 장면 대신에 농사일을 돕는 마리온에게 노팅엄의 행정관이 찾아와 수작을 거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 Reserved.
3.로빈 일행이 귀국하는 장면에서 로빈을 로버트 록슬리로 알고 있는 궁정 관료가 왕을 대면할 때의 예법을 상기시키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약간 멋적어하는 로빈 롱스트라이드의 표정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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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영화의 첫장면에서 마리온의 창고를 습격했던 숲 속 고아들의 무리와 마리언이 만나는 장면. 새롭게 추가된 이 장면은 극장판에서 행정관이 마리온에게 수작을 거는 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이 씨퀀스는 상당히 중요한 추가장면이라 볼 수 있는데, 영화의 마지막 해변 전투장면에서 마리온이 소년들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는 다소 생뚱맞은 장면에 대한 설득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뒤이어 고프리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이 로빈 일행의 뒤를 쫓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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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숲에서 야영을 하던 로빈 일행이 잠든 사이, 고아들이 소지품을 훔치러 오지만 이내 고프리의 하수인들이 로빈 일행을 습격하는 바람에 다급히 사라지고 이어 이상한 낌새에 잠에서 깬 로빈 일행과 고프리 일당들 사이에 격투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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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추가된 마리온과 로빈의 데이트 장면은 상당히 사랑스런 에피소드인데, 극장판에서 다소 미진했던 로빈과 마리온이 가까워지게 되는 계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암시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물웅덩이에 빠진 마을사람의 염소를 구하기 위해 마리온이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도리어 자신마저 웅덩이에 빠진다. 이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던 로빈이 웅덩이로 뛰어들자 마리온이 감사를 표하지만 정작 먼저 구해내는 것은 염소.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마리온의 표정이 압권이다. 뒤이어 노팅엄의 행정관이 이 광경을 지켜보고는 '마리온의 맨다리를 보다니 오늘은 운이 좋구만'이라며 다시 수작을 걸지만 이를 이용해 마리온은 로빈을 자신의 남편이라고 소개하며 행정관을 머쓱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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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로빈과 숲 속 아이들과의 조우씬. 사실 로빈의 굴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장면은 숲 속에서 사냥을 하던 로빈이 고아 소년들에게 린치를 당해 그들의 아지트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윽고 고아들의 아지트에 당도한 로빈은 이곳에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마리온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장면 역시 로빈 부부와 고아 소년들의 유대감에 대한 설정을 보강하는 부분으로 고프리의 마을 습격때 소년들이 마리온을 필사적으로 구해내는 장면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더불어 로빈은 이들에게 전투의 기술을 가르쳐 주겠노라고 얘기하는데, 이는 마지막 전투에 아이들이 참전하게 된 계기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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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고프리에게 습격을 받기 전 마을의 축제장면에서 약간의 삭제 및 보충씬이 있다. 우선 월터 록슬리 경과 마샬의 만남이 추가되었는데, 존 왕을 돕자는 마샬의 제안에 록슬리가 자신은 존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거절한다. 이어 월터는 마샬에게 로빈을 대면시키는데, 여기에서 마샬은 자신이 로빈의 부친을 알고 있으며 로빈의 어린시절 그를 만난적이 있음을 말한다. 이는 처음 로버트 록슬리를 사칭해 리처드 왕의 죽음을 알렸던 첫 번째 만남에서 마샬이 로빈을 유심히 쳐다 본 것이 실은 그가 로버트를 사칭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로빈을 마샬이 본 적이 있기 때문임을 암시한다. 이 추가씬은 다음 장면에서 록슬리경이 로빈의 과거를 들려주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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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존 왕 앞에서 로빈이 일장연설을 한 뒤 마샬이 로빈에게 노팅엄의 습격 사실을 말하는 장면. 로빈의 부친이 위대한 분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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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고프리 일당의 마을 습격장면에서 약간의 추가 장면. 고프리의 잔당들을 사로잡은 로빈이 필립왕의 상륙지를 심문하는 장면이 추가되었는데, 여기에서 '글레디에이터 출신(-_-)'인 로빈의 냉혹한 면모와 출중한 활솜씨가 드러난다.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 Reserved.
이상이 [로빈 후드] 감독판에서의 주된 변화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얼개를 완전히 바꿔놓은 [킹덤 오브 헤븐]과는 달리 기본적인 플롯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드라마적인 부분과 이야기의 세밀한 이해도를 높히기 위한 추가 장면과 편집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사실상 감독판으로서의 메리트가 크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극장판과 감독판을 고르라고 한다면 필자는 단연 감독판을 택하겠다. 물론 이번에 출시된 [로빈 후드] 블루레이에는 감독판과 극장판이 모두 수록되어 있으니 관객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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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감독 출신의 작품인 만큼 리들리 스콧 영화에서 비주얼이 차지하는 요소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로빈 후드]의 화질은 암부 노이즈나 그레인 현상을 거의 느낄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런 화질을 자랑한다. 슈퍼 35mm 필름 프린트를 AVC MPEG-4 코덱의 풀 1080p급 화면으로 디지털 트랜스퍼한 본 작품은 날아가는 화살과 동시에 손에 맺힌 땀방울이 튀는 장면까지 세밀하게 포착하는 디테일한 영상미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원본 사이즈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 Universal Pictures. All Right Reserved.
5.1 DTS-HD 트랙이 뿜어내는 파워풀한 음향도 만점이다. 대사의 전달도 명확하고, 영화 전반에 흩어져 있는 소리의 조각들을 혼합해 이를 다시 분리해 내는 솜씨는 가히 레퍼런스급이다. 조용한 대화의 순간이나 박력있는 전투장면 모두에서 사운드의 우수함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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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isk로 출시된 [로빈 후드] 블루레이는 서플먼트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우선 그동안 DVD 및 블루레이 출시에 꽤 많은 관심을 보였던 리들리 스콧이 이번에는 음성 코멘터리에 참여하지 않았다. 거기에 2 Disk DVD에 포함되어 있는 1시간짜리 메이킹 다큐 'Rise and Rise Again'이 블루레이에는 빠져 있고, 13분에 달하는 삭제장면 또한 포함되어있지 않다. 본 블루레이 판본에 수록된 부가영상은 The Art of Nottingham 뿐이다. The Art of Nottingham에 수록된 서브메뉴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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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e-Vis/ Storyboards: [로빈 후드]의 스토리 보드.
● Production Design: 12세기 영국의 모습과 프랑스식 도성, 그리고 숲속의 풍경 등 주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 디자인에 대한 스케치.
● Costumes: 의상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
● Behind the Scenes Photos: 촬영장의 모습을 담은 자료사진.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어중간한 평가를 받은 [로빈 후드]는 관객들에게 있어 거장의 평작으로 기억되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이 기대한 로빈 후드의 의적활동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로빈 롱스트라이드라는 생소한 인물의 영웅 만들기에 치중한 터라 굳이 노팅엄 행정관의 재해석이라는 흥미로운 컨셉을 버리고 영화의 방향을 선회한 이유에 대해서도 다소 의문점이 생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가 [다크 나이트] 이후에야 재평가 받을 수 있었듯, [로빈 후드]의 가치는 향후 스콧 감독이 속편을 내놓느냐의 여부에 따라 상당히 다른 평가를 얻을 가능성이 큰 작품이다. 특히나 감독판을 통해 드라마의 디테일한 구성을 강화하면서 의적 로빈 후드의 탄생에 설득력을 부가한 점은 보다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감독의 의도를 능히 짐작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속편을 기다리는가를 묻는다면 필자는 단연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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