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릴레오] 리뷰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난번 [갈릴레오]의 리뷰에서도 밝혔듯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카와 마나부 시리즈'는 작가 개인에게도 대단히 뜻깊은 작품이다. 일본 장르 소설계의 대가이지만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 하나인 나오키상 수상에서 번번히 탈락의 고배를 마시다가 마침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것도 시리즈중 하나인 '용의자 X의 헌신'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게이고가 '용의자 X의 헌신'에 대해 '내 스스로도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이다'라고 할만큼 원작의 완성도는 단연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은 드라마 [갈릴레오]의 캐릭터 구성과 배우, 스탭의 힘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낸 작품으로서 일본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총 370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유카와 마나무 시리즈의 캐릭터 파워를 더욱 확고히 만드는데 성공했다.
ⓒ Fuji TV Network/AMUSE/S.D.P/FNS. All rights reserved.
드라마의 버전의 [갈릴레오]와 극장판인 [용의자 X의 헌신]은 몇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범인을 처음부터 밝히고 시작하는 도서추리방식의 플롯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반전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게다가 엄친아급 만능 캐릭터, 유카와 교수의 상대는 대학시절 동기였던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로서 기존의 범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두뇌싸움을 전개해 나가며 의외로 고전한다. 따라서 범인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본 전제와 드라마에 비해 두배가 늘어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결말로 향하는 긴장감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드라마의 특징인 경쾌한 분위기가 극장판에서는 많이 희석되어 있다는 것도 한가지 차이점. 오히려 대체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진지하며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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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용의자 X의 헌신]은 추리물이면서도 범죄사실보다는 한 남자의 연정과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용의자 X의 헌신]이 가진 또하나의 미덕이자 단점일 수 있는데, 극악무도한 악당이 아니라 우발적 범행을 덮기 위한 공범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은 범인의 심리상태에 대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장점이 되지만 오히려 단순명료한 정통 추리극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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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츠미 카오루(시바사키 코우 분)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진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원작 자체가 이시가미와 유카와의 양자대결 구도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갈릴레오 3부작'에서 우츠미 카오루 보다는 쿠사나기 슌페이가 메인급 캐릭터에 가까웠다는 것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바꿔 말하면 [용의자 X의 헌신]은 원작에서 다소 변형된 드라마 [갈릴레오]와 원작 '용의자 X의 헌신'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캐스팅은 사실 드라마 [갈릴레오]에 비하면 화려한 느낌이 덜하지만 [런치의 여왕]으로 잘 알려진 츠츠미 신이치가 실질적인 주인공인 이시가미 역을 맡아 고독한 허무주의자의 느낌이 팍팍 풍기는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또한 츠츠미 신이치와 [비기너]에서 손발을 맞췄던 마츠유키 야스코도 오랜만에 같은 작품에 출연해 신이치의 상대역인 야스코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물론 [갈릴레오]의 오리지널 맴버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두 등장하는 것도 [용의자 X의 헌신]을 보는 또다른 재미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우에노 주리와 노다 메구미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유카와 마나부와 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이미 불가분의 관계라고 해도 무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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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만화, 소설 등의 원작이 일본에서 영화화 되지만 그 중에서 건질 만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용의자 X의 헌신]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 톱 클래스의 자리에 놓아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특히나 드라마를 통해 각 캐릭터의 특성과 매력을 파악한 관객들이라면 그 재미는 남다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면에서 인기 드라마의 여세를 몰아 극장 영화로 확대해가는 일본의 컨텐츠 시장은 참으로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P.S: 시사회를 마치고 극장문을 나서면서 옆에 있던 한 여성관객이 하는 말, '기대하고 봤는데도 기대 이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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