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필자는 영화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즉흥적으로 시사회에 참석할 때가 있다.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거나 뜻하지 않게 시사회 티켓이 주어졌을 경우다. 물론 영화의 장르라던가 누가 출연하는 작품인지 정도는 대충 포스터만 봐도 감이 오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플롯조차 모른채 감상에 임할 때가 종종 있다. 재밌는건 의외로 이런 상황에서 기대치 않은 작품을 발견할 때가 있다는 것인데 이번에 관람한 [매직 아워]도 바로 그런 영화였다.
얼마전 소개한 드라마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히로인 아야세 하루카가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 선택한 영화인 [매직 아워]는 전형적인 일본 코미디의 엉뚱함이 돋보이면서도 영화를 다 보고나면 행복한 기분이 될 수 있는 작품이다.
ⓒ 2008 フジテレビ 東宝. All rights reserved.
보스의 애인 마리(후카츠 에리 분)와의 밀애현장을 조직원들에게 현장을 들킨 빙고(츠마부키 사토시 분)는 지하실로 끌려가 실컷 얻어터진 후에 마리와 함께 산채로 수장될 위기에 처한다. 그러다 문득 조직에서 환상의 킬러라 불리는 ‘데라 토가시’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에 착안, 자신이 데라 토가시를 데려 오겠다고 약속한다.
문제는 빙고가 데라 토가시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는 거다. 애당초 '환상의 킬러'라 불리는 토가시가 그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낸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어쨌든 빙고는 보스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심하던 중, 무명 배우를 섭외해 데라 토가시의 대역을 시킨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물론 배우 당사자에게는 비밀로 한채 보스와의 대면장면을 촬영의 일부라고 속이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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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적합한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데뷔한 이래 만년 3류배우 신세인 무라타(사토 고이치 분)였다. 적당히 킬러스런 마스크,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는 배우이면서 연기력도 어느정도 받쳐주는 무라타는 신인 감독의 독립영화에 주연으로 섭외된다는 기대감에 제의를 수락해 빙고의 지휘하에 얼토당토 않은 킬러 연기에 몰입하게 되는데... 과연 빙고는 언제까지 보스를 속이고 무라타에게 이 역할을 맡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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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터 무비와 코미디가 뒤섞인 플롯의 구성부터가 무척이나 작위적인 [매직 아워]는 실제 상황을 영화 촬영으로 착각한 무명 배우의 진지한 연기가 주는 과잉의 부조화적인 웃음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특히 전설의 킬러와 마주하고 있다고 착각한 조직의 보스와 데라 토가시인척 행세하며 나이프를 핥아대는 무라타와의 대면 장면이야말로 관객들의 예상을 초월하는 포복절도의 시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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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매직 아워]는 국내에 얼굴이 알려진 아야세 하루카나 츠마부키 사토시를 전면에 내세운 배급사의 홍보와는 달리 사토 고이치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한데, 만년 3류 배우의 애환과 연기에 대한 갈망, 그리고 상황파악을 못하고 혼자 진지한 그의 모습를 보노라면 저런 훌륭한 배우가 있다는 사실을 왜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물론 이는 필자만의 생각일뿐 사토 고이치는 [화이트 아웃]이나 [바람의 검, 신선조] 등 국내에 소개된 영화 중 상당수에 출연한 배테랑 배우다)
전반적인 영화적인 분위기는 1997년작 [미스터 맥도날드]와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편 모두 미타니 코키 감독의 작품이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영화광이었던 미타니 코키 감독의 작품은 자신이 존경하는 빌리 와일더의 작품속 세계관과도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그는 과거 고전 영화들에 대한 풍부한 오마주를 선사하고 있으며, 이 작품이 고(故) 이치가와 곤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인 것도 미타니 코키의 영화사랑에 대한 좋은 증거다. (영화속에는 이치가와 곤 감독의 [검은 10인의 여자]와 [101마리의 달마시안]에 대한 오마주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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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캐스트만 10명 남짓으로 등장 인물이 그리 많지 않은 만큼 주,조연의 연기 또한 누구하나 버릴 것 없이 제 몫을 다하고 있으며, 연극적인 상황에서 인간 군상의 다양한 모습을 이끌어내는 감독 특유의 영리한 연출이 빛을 발한다. 이에 더해 [킬 빌 Vo.1], [이노센스]의 미술감독 다네다 요헤이가 프로덕션 디자인을 담당한 가공의 항구 도시, 수카고의 동화적이면서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세트장의 분위기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배우로서의 행복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과 더불어 무대뒤의 숨은 공신들인 스탭들의 노고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갖는 마지막 장면은 '매직 아워'라는 주제에 걸맞는 훌륭한 엔딩이다. 물론 극의 플롯 자체는 영화가 끝날때 쯤엔 이런 엉터리가 어딨냐 싶을 정도로 현실성을 잃어가며 엉망이 되어 버리지만 뭐 어떠랴. 영화를 보는 내내 미칠 듯이 웃을 수 있는 기회를 한순간이라도 제공한다면 코미디 영화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갖춘 셈이니 말이다.
P.S: 원래 [매직 아워]는 136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다. 시사회 상영때 틀어준 건 111분짜리 버전. 문제는 111분짜리버전이 일본을 제외한 해외 배급용 인터네셔널 버전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다면 136분짜리 영화로 영등위 등급판정을 받은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영등위에 올릴땐 일본 내수용으로 심사받고, 개봉시에는 해외배급용으로 개봉한다는 소린가?
ⓒ 영상물등급위원회. All rights reserved.
덕분에 관객들은 고전영화 [페이퍼 문] 혹은 우디 알렌의 [스윗 앤 로다운]을 오마주한 후카츠 에리의 노래 장면이나 그 밖의 중요한 몇몇 장면들을 통채로 놓쳐 버리는 사태가 벌어지게 생겼다. 이러니 영화 매니아들이 극장서 영화볼 맛이 나겠냐고.
* [매직 아워]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2008 フジテレビ 東宝.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자료: [매직 아워] 등급판정결과표 (ⓒ 영상물등급위원회.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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