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사태 이후 헐리우드 오락 영화의 소재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가장 두드러진 점은 '테러'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와 또하나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혹은 정당성이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웬만큼 영화를 본다 하는 리뷰어들의 글에는 각 영화와 9.11의 연관성을 이끌어 내는 문장이 들어가 있기가 일쑤고 실제 그 영화가 그렇게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상당수 헐리우드 영화들은 9.11 사태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물론 필자는 영화의 표면 아래 깔린 심층분석을 해낼 능력도 없으며 딱히 그런 리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개봉을 앞둔 [이글 아이]는 분명히 포스트 9.11 시대의 헐리우드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중동의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인물과 주변 사람을 51%의 확신만으로 몰살시키는 [이글 아이]의 오프닝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과잉대응도 불사하는 미국인들의 극단적 이기주의를 상징하고 있는데, 과연 이 작품은 미국의 오만함이 가져온 테러리즘의 확산과 패권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어떤 시각을 제시하고 있을까?
1.밀도있는 액션과 빠른 템포 |
오프닝 뒤에 장면이 전환되면서 전개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관객들은 [이글 아이]가 유수의 헐리우드 영화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우선 전작인 [디스터비아]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오마주했던 D.J. 카루소 감독은 이번 [이글 아이]에서도 히치콕의 명작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밑그림으로 삼아 그 위에 하이테크 스릴러의 요소들을 덧칠했다.
ⓒ DreamWorks SKG. All rights reserved.
한 평범한 사내가 국가적 규모의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다는 음모론적 플롯의 모양새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 가깝게는 [아이, 로봇]과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출발해 멀게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까지 참고하며 여러 장르물의 설정들을 그대로 차용했다. 어찌보면 [이글 아이]는 독창성이라고는 전혀없는 진부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카루소 감독은 밀도높은 액션씬에 숨막힐 듯 전개되는 빠른 템포로 관객들이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적어도 전반부 1시간의 흐름은 근래에 개봉된 어떤 스릴러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은 서스펜스를 선사하며, 화끈한 액션에 있어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2.뒷심이 부족한 후반부 |
전반부의 1시간이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과정이었다면 아쉽게도 후반부의 1시간은 그 에너지가 서서히 소모되어가는 과정이다. 초반에 너무 많은 것을 들어부운 나머지 남아있는 내용물이 얼마남지 않게 되었고, 앞으로 30분이면 끝날 것 같던 내용이 1시간이나 이어지면서 영화는 서서히 헛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워낙에 비현실적이면서 과장법이 지나치게 사용한 영화다보니 관객에게 '이건 뭔가 이상해'라는 틈을 허용하면 그 틈새는 더욱 커 보이기 마련이다. 사실상 [이글 아이]의 플롯은 그만하면 충분히 짜임새가 있는 편이지만 아쉽게도 90분이면 충분했을 내용을 2시간으로 늘어뜨리면서 전반에 벌어놓은 점수를 깍아먹고 말았다.
3.스필버그의 황태자, 샤이아 라보프 |
스티븐 스필버그의 총애를 받는 신예 샤이아 라보프는 [트랜스포머],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이어 이번이 스필버그 사단과의 3번째 작품이다. 젊은 배우치고는 꽤나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은 행운아인 셈이다. 문제는 [트랜스포머] 까지만 해도 신선했던 그의 이미지가 벌써부터 질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을 의식해서인지 이번 작품에서 라보프는 수염을 기르고 나름 터프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느라 꽤나 노력한 것이 눈에 보이지만, 여전히 어리숙하며 수다스런 그의 고정적인 이미지는 꽤나 강렬한 것이어서 쉽사리 떨쳐 버리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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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게 아니라 라보프의 인기나 연기력에 대한 평가에 거품이 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제는 스필버그의 황태자가 아니라 배우로서의 라보프가 되기 위해 변신을 시도해야 할 때다. 흥행 성공이 보장된 [트랜스포머2]에 출연중인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후의 행보에 있어서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롱런할 수 있을 듯.
4.자기 반성적 태도의 한계 (*주의: 보는 관점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
분명 [이글 아이]는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자기 반성적인 태도와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공포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으려 한 시도가 엿보인다. 이는 단순히 외부적인 요인과 중동 지역에 대한 반감으로 희석시키려는 여타의 미국 우월주의 영화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결론에 가서 결국 아무도 이러한 사태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러한 오류 마저도 미국 스스로가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식의 결말은 어쩔 수 없는 미국 영화의 한계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차라리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층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5.하이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 |
평범한 성인 남자가 하루에 CCTV에 찍히는 횟수는 대략 140회, 휴대전화 보급률은 92.2%, 인터넷 보급율 65%로 세계 1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하이테크놀로지의 수혜국이다. 앞으로 점점 더 기계와 컴퓨터가 인간을 대신해 통제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 확실한 이 시점에서 [이글 아이]가 조명하는 하이테크의 부작용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과장된 것이라 하더라도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감시하고 통제하며 나에 대한 정보를 기록한다는 것, 그것도 오래되는 언젠가는 잊어 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반 영구적인 보존력을 지닌 감정없는 컴퓨터의 메모리에 내 모든 정보가 저장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 벌써부터도 개인정보 유출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대두되는 시점에서 [이글 아이]에서 감지되는 하이테크놀로지에 대한 공포는 보이지 않는 실체인 테러리즘보다 더욱 위협적이고 위험한 존재로 다가서고 있음을 암시한다. 단순한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단순히 흥미거리로 한번 보고 잊어 버리기에는 소위 '흠좀무'한 것이 사실이다.
6.영화속 명장면 |
초반 40분경에 펼쳐지는 카 체이싱은 [본 얼티메이텀]과 [밴티지 포인트]에 이어 또 한번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장면이다. 특히 전반적으로 [이글 아이]의 액션씬은 대단한 박력을 선사하는데 CG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아날로그 액션을 풍부하게 사용한 것이 그 비결인 듯. 가급적 극장에서 관람하실 분은 사운드 시설이 잘 갖춰진 극장에서 관람하시길 권한다.
7.총평 |
[이글 아이]는 제법 훌륭한 오락영화다. 관객을 사로잡는 흡입력이 있으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풍부한 오락적 재료들이 가득하다. 거기에 과거의 영화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짜맞춘듯한 소재의 재활용 시도 역시 꽤나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결말의 진부한 부분과 다소 늘어지는 듯한 러닝타임, 그리고 한정된 범주에 머무는 캐릭터의 평면성 정도다. 스필버그가 참여한 작품에는 여지없이 등장하는 가족주의 예찬론도 영화의 성격과는 다소 엇박자를 이루는 감점요소다.
아직은 D.J. 카루소 감독이 마이클 베이를 대신할 만큼의 내공을 갖추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시도되는 히치콕 스타일의 현대적 변주라는 점은 아직까지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지금까지의 결과를 놓고 보건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 [이글 아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DreamWorks SKG.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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