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감독의 감수성 짙은 드라마 [헐크]가 실패했던 요인은 '슈퍼히어로'를 메인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브루스 배너의 개인사를 비극적으로 조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헐크를 끌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관객들은 주인공 '헐크'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았으나 [헐크]의 주인공은 헐크가 아닌 브루스 배너였다.
슈퍼히어물로서 액션의 비중을 최소화하고 드라마를 강화하는 쪽을 택했던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리턴즈]가 흥행에서 된서리를 맞았던 것은 [헐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객들은 고뇌하는 영웅의 인간적인 모습도 좋아했지만 적어도 그 활약상이 두드러지게 표출되길 원했다. 결국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로서의 슈퍼히어로물은 드라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볼거리'와 '액션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헐크]의 신통찮은 반응에도 불구하고 차기작 [인크레더블 헐크]가 나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뜻밖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마블사의 히어로들이 득실거리는 판국에 굳이 흥행에 실패한 캐릭터를 다시 끌어내었다는 건 다분히 큰 모험이기 때문이다.
1.이안의 [헐크]를 지우다 |
[인크레더블 헐크]는 처음부터 이안 감독의 [헐크]의 속편이 아님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감독은 [트랜스포터]로 폼나는 액션을 보여주었던 루이스 르테리어가 맡았으며 주인공도 에드워드 노튼과 리브 타일러로 전격 교체되었다. 실제로 [인크레더블 헐크]는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에 무려 1시간 이상의 시간이 걸렸던 [헐크]와는 달리 회상을 통해 과거의 일들을 함축적으로 기술하면서 스피디한 전개를 보여준다.
또한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이안 감독의 설정을 거의 무시하고 있으며, 단지 [헐크]과의 유일한 연계점이라면 남미의 한 정글에서 숨어지낸다는 점 뿐이다.
2.액션성의 강화 |
[헐크]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슈퍼히어로로서 헐크의 활약상이 거의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영화의 드라마적 요소를 치켜세웠던 일부 팬들에 있어서도 클라이막스 부분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원성이 자자하였는데, 이번 [인크레더블 헐크]는 그러한 우려를 한방에 날려 버리듯 초반부터 꽤나 정신없이 몰아붙인다.
ⓒ Marvel Enterprise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특히나 [인크레더블 헐크]에서는 '어보미네이션'이라는 악당이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가 헐크에게 몸빵으로 대적할 만한 유일무이한 캐릭터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액션과 박진감의 강화는 [인크레더블 헐크]를 차별화시키는 가장 큰 요소라고 볼 수 있다. 헐크와 어보미네이션의 대결씬은 앞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아이언맨]의 클라이막스를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3.TV판으로의 회귀 |
[인크레더블 헐크]는 꽤나 영리하다. 이안 감독이 '헐크'의 재해석이라는 전재하에 원작과 TV판 모두를 자신의 스타일로 이해하고 적용한 반면 이 작품은 TV판의 향수를 자극하는 몇몇 장치들을 재활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브루스 배너가 감마선을 스스로 쬐면서 해골모양이 드러난다든지, 헐크로 변신할 때 배너의 눈을 클로즈업하는 샷, TV판의 아련함을 자극하는 '외로운 남자의 테마'를 OST로 사용한 것, 원조 배너박사 고(故) 빌 빅스비의 깜짝 등장, 신문기자 잭 맥기의 출연 등 어떻게 보면 [인크레더블 헐크]는 TV판 [두 얼굴의 사나이]를 계승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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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도망자'의 캐릭터에 딱 어울리는 에드워드 노튼의 브루스 배너 또한 TV판에서 빌 빅스비가 연기한 배너 박사와 (체격면으로나 외모상으로도) 오버랩되는 설정이다. 실제로 루이스 르테리어 감독은 TV판 헐크의 열렬한 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헐크의 외모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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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 고무인형같은 질감에 초롱초롱 아이의 눈동자 같은 착한 눈의 언벨런스가 돋보였던 이안의 '강호동' 헐크와는 달리 [인크레더블 헐크]의 헐크는 제대로 모습을 되찾은 듯 하다. 척보기에도 분노게이지가 하늘을 찌를듯한 야성의 힘이 팍팍 느껴지는 마스크, (헐크를 연기했던) 루 페리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연상케하는 근육질의 몸매의 표현력은 확실히 전작을 훨씬 뛰어넘는 사실감을 보여준다. 물론 전반적인 CG 캐릭터 자체가 실사부분과 동떨어져있다는 느낌을 주긴하는데 이는 차기작에서 분명히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5.[어벤저스]의 포석 |
무엇보다도 [인크레더블 헐크]는 마블사의 '드림 프로젝트', [어벤저스]를 위한 포석이 분명한 작품이다. 초반부 인트로에 잠깐 스쳐가는 닉 퓨리의 이름이나 스타크 인더스트리, 슈퍼솔저 프로젝트, 그리고 '그분'의 등장 등등 [어벤저스]를 위한 떡밥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블사의 히어로들이 총집결된 [어벤저스]를 볼 날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에 전율마저 느껴질 정도다.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 마블사의 슈퍼히어로들.. 다음에는 아마도 [캡틴 아메리카]가 합류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6.총평 |
[인크레더블 헐크]는 여름철 블록버스터로서, 또한 슈퍼히어로물로서 방향성을 제대로 잡은 작품이다. 2시간 내내 지루함없이 이어지는 헐크의 활약상은 이안의 [헐크]에서 실망했던 관객들을 확실히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또한 풍부한 까메오의 등장도 [인크레더블 헐크]의 장점이다. 앞서 말한 빌 빅스비와 루 페리노 등 원조 헐크의 깜짝 출연은 물론 원작자 스탠 리와 마지막 '그분'의 등장까지 다양한 까메오의 출연을 감상하는 재미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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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안 감독의 [헐크]가 내심 맘에 들었던 관객이라면 루이스 르테리어의 화려한 [인크레더블 헐크]는 다소 못마땅할지 모른다. 드라마는 확실히 전보다 후퇴된 감이 없지 않으며, 진지함이 결여되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건 이번 작품이 헐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과거사야 어찌되었든 관객들은 유년시절의 상처로 비틀거리는 브루스 배너 보다는 화가나서 표효하는 헐크를 더 보고 싶어할테니 말이다.
* [인크레더블 헐크]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Marvel Enterprises/Universal Pictures.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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